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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03. 2019

습작

아흔세번째

 나는 개다. 이름은 아직 없다. 강아지 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당연히 부모가 어떤 개인지도 모른다. 내 등부터 귀와 눈에 이르기까지 검은 얼룩이 있는 것으로 봐서, 검은 색이나 흰 색 털을 가진 개가 아닐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작은 항구가 있는 동네였다. 시골이라기엔 사람이 꽤 많았고, 도시라기엔 퍽 촌스런 구석이 있었다. 항구에서 차로 오 분쯤 되는 거리엔 광장이 있었다. 나는 그 원형 광장에 붙은 건물 일층의 레스토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이 부모 역할을 대신했다. 어떤 면에선 엄청난 행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떠돌이 개라고 한들 평범한 인간만큼 많은 음식을 구해다줄 순 없기 때문이다. 당시엔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인간들에게는 항상 음식이 있었다.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 다 먹지 못해 내다버리기까지 했다. 요리사들은 내다버릴 음식을 이리저리 손질해 내게 던져주곤 했다.


 인간이 건네주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이 기가 막혔다. 나는 주는 음식 대부분을 잘 받아먹는 편이었다. 먹어치우지 못한 찌꺼기들은 끝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인간들은 썩어가는 모습을 볼 바에 차라리 버리는 쪽을 택한다. 적어도 내가 볼 땐 항상 그랬다.


 강아지였던 나는 어느 날 개가 됐다. 요리사와 레스토랑 주인 내외, 그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들은 ‘이제 다 큰 개가 됐으니 제 몫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 문득 성장한 존재로 대우받는 것이, 공식적으로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 좋았다. 쥐나 좀도둑을 쫓으며 나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다만 슬펐던 건 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이며 쓰다듬는 손길이 부쩍 드물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나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주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차에 수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애옹”


 고등어 무늬를 한 고양이가 주방 입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새벽녘 주방은 모든 불이 꺼져 어두컴컴했다. 고양이의 호박색 눈이 깜빡이며 움직였다. 전날 요리사들이 정성껏 저며 놓은 생선토막을 노리는 것 같았다.


 어디로 들어온 걸까? 고양이씩이나 되는 덩치로 쥐구멍을 드나들었을 리는 없다. 나는 기척을 숨기며 몸을 일으켰다. 조심스레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 다음 크게 짖어 혼내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애써 접근하고 보니 고양이도 생선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대관절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내가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하고 생각할 즈음 환풍구가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들이 드나들 만큼 크고 네모난 구멍이었다. 주방에 언제 저런 게 생겼지? 환풍구 막이는 그제까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잘도 이런 통로를 찾아내서는…… 고양이놈들……’


 나는 그 큼지막한 환풍구에 꽉 끼어 겨우 걸어갈 수 있었다. 그동안 몸집이 어지간히도 커졌군. 하기야 나는 이제 어엿한 개니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먼지 가득한 환풍구를 가로질렀다. 깜깜한 통로 속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그 고양이놈의 냄새를 쫓아 계속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통로 저 끝자락에서부터 침침한 빛이 흘러나왔다. 고양이는 그 구멍으로 빠져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끝에 다다라 걸음을 재촉했다. 빛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해서, 어느 순간 확하고 시야에 펼쳐졌다. 가로등불빛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곳이었다. 칙칙한 골목이 가로등 불빛을 반사해 누르스름한 색을 띠었다. 


 “애옹―”


 먼발치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난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이 소리의 근원을 향해 달렸다. 환풍구를 통과해오면서 털에 붙은 숯검정이며 먼지더미 같은 것들이 밤공기에 실려 날아다녔다. 


 숨이 찰 때까지 뛰었지만 골목은 끝나지 않았다. 고양이와 생선냄새는 도중에 끊겨버렸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동물적 육감에 의지하면서 날이 샐 때까지 동네를 누볐다.


 잠에서 깨자 동네는 한낮이 돼있었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골목 안쪽으로 불어들었다. 주변에 바다가 있었다. 밤새 도둑고양이를 쫓아다니다 항구 근처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놈이 훔쳐간 건 주방장이 유독 아끼던 생선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별 도리도 없었다. 냄새가 끊긴 걸 보니 가는 길에 몽땅 먹어치웠을 공산이 컸다. 


 ‘이쯤해서 돌아가야겠다. 너무 멀리 와버렸어’ 


 아무쪼록 난 최선을 다했다. 비록 놈을 잡진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얻은 결과에는 항상 의미가 있다. 매일같이 혼나는 막내 요리사가 했던 말이다. 놈은 언젠가 주방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레스토랑에 들어왔지만, 삼 년 동안 한 거라곤 재료 손질과 설거지뿐이라는 모양이었다. 그런 주제에 ‘당장 내일 주방장이 못 되더라도 상관없어.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면 말이야’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난 녀석이 언젠간 진짜 주방장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내가 볼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살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나는 두 번 다시 주방에 돌아갈 수 없었다.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당최 모르는 골목들뿐이었다. 지나쳐온 길에 얼마나 많은 갈림길이 있었는지는, 뒤늦게 돌아갈 때가 돼서야 알게 된다.


 이토록 복잡한 길을 마음껏 오고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자 하는 곳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얼마나 행복한 존재들일까.


 그로부터 몇날며칠 길을 헤맸는지 모른다. 밤을 다섯 번쯤 지나보낸 뒤로는 세는 것조차 포기했다.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전에, 당장의 허기를 채울만한 것들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쓰레기통을 뒤졌다. 배수구로 흘러나오는 퀴퀴한 물을 핥아 마셨다.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여느 떠돌이 개와 고양이들처럼 말이다.


 골목에선 하루하루의 수확이 달랐다. 다 썩어빠진 생선뼈를 건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 것도 찾지 못해 주린 배로 잠드는 날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다. 우연히 발견한 환풍구를 알아보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내가 오래전 빠져나왔던 그 구멍은 검은 쇳덩이로 단단히 틀어 막혀 있었다. 가로등 불빛은 여전히 침침한 노란빛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런 사실에도 전혀 슬프지 않게 돼버린 내 모습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떠돌이개가 돼버렸다. 가지런히 윤기가 흐르던 털은 군데군데 빠져 땜빵이 생겼다. 오동통하게 살이 올랐던 배도 그새 쪼그라들어 갈비뼈가 드러나 보였다. 먹을 게 넘치는 주방보다는 어두침침한 뒷골목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불현듯 나는 먼 곳을 바라봤다. 음식 냄새가 새어나오는 환풍구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길로 터덜터덜 걸어 떠났다. 어딘가 다른 쓰레기통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운명의 발견>, 2019. 9




<운명의 발견>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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