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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07. 2019

습작

아흔여섯번째

 태풍이 북상할 당시에는 자습을 하고 있었다. 학원 자습실은 여느 때처럼 창백한 조명이 켜져 환했다. 왼쪽 모서리에는 창문이 있었다. 꽉 틀어 막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창문이었다.


 불과 얼마 전 원장은 학원 건물 전체에 있는 창문에 고정형 암막 블라인드를 달았다. ‘창문 밖 풍경을 보느라 학생들이 집중을 못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학생들은 그런 원장의 조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심화수학을 담당하는 강사도 ‘저렇게까지 할 필욘 없는데’하고 투덜거렸지만, 그야 그 강사에게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피우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지 학생들을 가엾게 여겼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원장의 조치에 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창문 밖 풍경이라 봤자 별 다른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맑은 날 내리쬐는 햇빛이나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 우천의 빗방울과 바람에 흔들리는 길가의 나무들, 그리고 이따금씩 건물 곁을 스쳐 날아가는 이름 모를 새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학원에 등록된 모든 학생들은 눈이 뻑뻑할 적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턱을 괴고 있다가 담당강사에게 지적받는 일도 잦았다. 입시 성적이 다음연도 매출을 좌우하다시피 하는 재수종합학원 입장에서는 시각적 자극을 원천차단 하는 것 외에 마땅한 대안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한들 너무한 일인 건 변함없지만. 


 “풍속이 매미 때보다 세다던데”


 자습실에 앉아있던 학생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블라인드 너머로 쉬이이익, 스치는 소리가 났다. 방금 그 말이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라는 듯이.


 원장이라고 불어 닥치는 태풍의 음성까지 막을 순 없었다. 기출문제집이며 학원교재의 종잇장을 넘기는 소음, 볼펜촉과 샤프심이 표면에 부딪히면서 내는 모스신호가 바람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았다.


 오후 두시 반께 태풍의 기세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건물 바깥으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우수수 빠져 흩어지는 것 같았고, 건물에 붙은 거대한 천막이 뜯겨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었다. 우산이 뒤집혀 헛걸음질치는 어느 아주머니의 비명과 저 멀리서 창문 같은 게 깨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학생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자습실 창백한 불빛 밑에 앉아 공부를 이어갔다. 바람이 얼마나 불든 간에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이. 아랑곳하는 체도 않고 고개를 내리깔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된 것이 불과 어제였다. 수능은 고작 백 일도 남지 않았다. 이맘때의 수험생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다. 평소 여유가 넘쳐흐르던 녀석들도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 한 마디 꺼내지 않는다. 긴장하는 건 학생들만이 아니다. 고등학교 주변은 물론이거니와 재수학원 복도부터 상담실까지 거의 모든 공간의 공기가 무겁게 내리깔린다. 


 어젯밤 입시컨설팅 사무소를 다녀온 엄마는 서울권 명문대학교들의 입시설명회 일정을 확인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예배 가는 주일과 설명회 날짜가 겹친다며 투덜거리는가 하면, 자정 넘어 학원에서 돌아온 날 앉혀두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빈도도 부쩍 늘었다.


 “절대 삼수는 안 된다. 그나마 한 번 더 기회를 얻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이야. 너도 알지?”


 “네, 그럼요” 나는 일부러 시선을 딴 데 두고 대답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말고 새겨서 들어. 목사님이 너 위해서 특별히 기도도 해주셨으니까. 먼젓번처럼 배탈 나거나 해서 제 실력 발휘 못할 일은 없을 거야. 나머지는 다 네 몫이고…… 믿음을 갖고 부단히 노력해야 해야 해. 논술 준비는 틈틈이 잘 하고 있지?”


 “네”


 “그래. 그럼 앞으로 좀 더 신경 쓰고…… 그러게 너도 미리부터 내신관리를 해놓으면 좀 좋았겠니? 뭐든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하는 건데. 조만간 태풍도 들이 닥친다 그러잖아. 우리교회 목사님이 얼마나 걱정을 하셨는지 기도를 엄청 하셨어. 아이고 하나님, 하나님 은총 가운데 있는 모든 분들이 무탈하게 이번 태풍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가내 평안히 유지가 되고 교회도 안전하게, 시련을 딛고 일어나서 더 번창하게 해달라고. 또 부디 우리 아이들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엄마는 한동안 말을 이었다. 나는 늦은 저녁을 먹다 말고 방에 돌아갔다. 그 때문인지 어젯밤은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새벽 네 시까지 기출문제를 풀다가 책상에 쓰러져 잤다.     


 주말자율학습이 끝나고 자습실 밖으로 나왔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학원복도를 따라 걸으며 작게 웅성거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비상계단을 타고 학원건물을 걸어 내려갔다.


 내려가는 비상계단 층계참에 작은 창문이 열려있었다. 하기야 비상계단 창문까지 막을 필요는 없었겠지. 창밖으로 가까운 도로, 인도를 따라 멀쩡히 꽂혀있는 가로수들이 보였다. 또 수백수천 개들의 크고 작은 건물들과 아파트 단지들이 줄을 서서 앉았다. 태풍은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불그스름한 노을이 산 위쪽 하늘과 성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으레 하던 대로 자습을 마치고 나왔다.


 학원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목은 자그마한 재래시장이었다. 엄마가 다니는 교회는 시장 바로 옆 블록을 통째로 차지하고 섰는데, 거기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던 첨탑이 태풍으로 고꾸라져 시장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상가 건물의 상회 하나와 그 앞에 불법주차 돼있던 승용차 한 대가 완전히 으깨졌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무너진 상회 내외는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미리 대비를 해놓은 참이었다. 당일은 마침 작정하고 쉬기로 한 날이라 부부 모두가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올해 고삼인 딸은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중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뭐가 불행이고 뭐가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풍에 교회 첨탑이 무너질 거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교회건물 자체가 지은 지 꽤 됐던 탓에 보수공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몇 있었다. 다만 최종결정권자인 목사님은 ‘믿음으로 쌓아올린 교회는 어떤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법이다’라는 말로 넘어가곤 했던 것이다.



 십 몇 년째 가게를 꾸려온 입장에선 속이 터질 법도 했다. 다만 독실한 교회 신자였던 부부 내외는 ‘시련을 통해 새롭게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며 오히려 감사하다는 반응이었고, 목사님은 적잖이 흡족해하셨다는 후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이번 태풍으로 큰 시련을 겪은 목사님을 위해 기도를, 더 높은 첨탑을 짓는 한편 겸사겸사 확장공사를 한다는 교회를 위해 백만 원의 십일조를 했다. 정말이지 나는 태풍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태풍의 눈>, 2019. 9



<태풍의 눈>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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