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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09. 2019

습작

아흔일곱번째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것 중 하나가 ‘귀찮다’는 말입니다. 그야 우리가 살아가면서 귀찮은 일이 한 두 개가 아니니까요.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 출근하는 것도, 일주일간 쌓여서 냄새나는 설거지를 하는 것도, 땡기는 담배 사러 집 앞 편의점에 나가는 것도, 어떨 땐 배고파 밥 먹는 것도 다 귀찮게만 느껴지곤 해요.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겁니다. 그런데 귀찮다는 말이 정말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란 쉽지 않아요. 너무 일상적인 언어라서 그런 걸까요? 기자님은 귀찮다는 말의 뜻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변호사가 말했다. 초췌한 인상이었다. 취재 카메라들이 플래시 불빛을 쏟아내자, 핼쑥한 얼굴윤곽이 한층 더 도드라져 보였다.


 “……” 기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소형 마이크를 포토라인 앞에 갖다 댄 채 그대로 서있었다.


 “뭐,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발음을 천천히 해보면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죠. 많은 어휘들이 그렇습니다만……” 변호사는 정장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귀찮다는 말이 ‘귀하지 않다’는 말이 쪼그라들어서 생긴 말이라는 사실 말이에요. 귀하지 않다. 귀치 않다. 귀찮다. 이렇게 변해온 것이 지금에는 ‘쓸데없이 거추장스럽고 까다롭다’는 의미를 갖게 된 셈입니다. 사전에 찾아보셔도 돼요. 정말이니까요. 귀찮다의 ‘귀’ 자가 귀할 귀라는 한자어라는 걸 아는 분들은 정말 많지 않죠. 가만히 듣고 보면 웃긴 말입니다. ‘그건 귀찮아’라고 말하는 건, ‘그건 내가 맡기엔 충분히 귀하지 않은 일이야’라고 말하는 거니까요. 내가 뭐 세상에서 귀하디귀한 일만 골라 할 만큼 거룩한 인간도 아닌데. 안 그래요?”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기자가 말했다.


 “아, 바쁘신 분들을 모아놓고 이상한 소리를 했군요.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 원래는 엄청 긴 이야기인데…… 제 친아버지는 일찍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얼굴도 기억이 안나요. 어머니는 절 데리고 재혼한지 일 년쯤 지나서 병으로 가셨고요. 그래서 저는 피한방울 안 섞인 새아버지와 단 둘이 자랐어요. 가정 형편은 형편없었습니다. 부자父子가정이긴 했지만 부자富者는 아니었던 거죠. 하하. 새아버지는 일일노동자였습니다. 공사현장을 전전하셨는데 툭하면 저를 귀찮은 놈이라고 부르곤 했어요. 다른 욕은 안 하셨는데 그 말만큼은 워낙 자주 하셔서, 저는 어련히 제가 귀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자라게 됐습니다.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건 아주 나중에 알게 됐지만요”


 “결론을 말해!” 누군가 소리 질렀다. 변호사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잠깐 바라봤다. 


 “……제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공사현장에서 다리를 크게 다치셨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다리를 다치면 공사장에서 일 같은 건 할 수 없죠. 그런데도 제 학비며 원서비용 같은 걸 대주려니 작업반장이라는 사람한테 싹싹 빌 수밖에 없었고요. 그렇게 다치신 뒤에도 몇 번 일을 하시겠다고 나가셨습니다. 평생 해왔고 할 줄 아는 일이라곤 그거밖에 없으셨으니까. 그런데 몸 상태가 상태다보니 현장에 도움은 안 되셨던 모양이에요. 하루빨리 공사를 끝내 대금을 받아야하는 건설사 입장에선 아버지가 엄청나게 귀찮은 존재였겠죠. 그래서 아버지가 절룩거리면서 나타날 때마다 밥값에 차비까지 해서 만 원씩 쥐어주고 집에 보냈답니다. 전 그걸 아버지가 어떻게 일해서 벌어온 돈인 줄 알고 있었고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냥 걸어도 왕복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매일 그런 다리로 왔다 갔다 했다는 걸요. 겨우 도착해봤자 듣는 소리라곤 ‘넌 귀찮은 인간이니까 이거 받고 돌아가라’는 얘기뿐인 데도요. 정작 그 돈으로는 밥도 안 먹고 버스도 안 타셨죠. 머잖아 아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습니다. 하필이면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어요. 딱 하나 남겨놓은 편지에는 ‘사는 게 귀찮아 먼저 간다’고만 써놓으셨죠. 그때까지 겨우 버티셨던 거에요. 하나밖에 없는 애새끼 학교는 졸업시키고 가겠다고. 그게 새아버지의 인생이었습니다. 귀찮은 자기 자식을 조금이라도 더 귀하게 만들어보겠다고, 하루하루 더 귀찮은 존재가 되다가 끝내 사라지셨어요. 전 그때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처럼 귀찮은 존재가 되겠다고. 우리처럼 귀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귀하지 않은 일을 대신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요”


 “그래서 계속 하겠다는 겁니까?” 곁에 마이크를 들고 서있던 기자가 질문했다.


 “계속하고말고요. 이게 제 일인데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겠죠. 일찍이 형사님들, 검사님들이 저한테 말씀하셨던 것처럼, 왜 변호사씩이나 돼서 그렇게 귀찮은 일들만 골라서 하냐고, 이미 지나간 일을 꺼내 와서 귀찮은 상황을 만드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사법시험씩이나 통과해놓고 질리게 삽질이나 하고 자빠졌냐고요. 그런데 저한테 이런 질문은 시간낭비일분더러 의미도 없습니다. 애초에 저는 귀찮은 인간에게서 난 귀찮은 인간이거든요. 저와 달리 귀하게 태어나신 분들은 좀처럼 이해를 못하시는 모양들이지만”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세요?” 또 다른 기자가 물었다.


 “제가 옳기는요.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이제는. 뭐가 옳고 뭐가 그른 지를요. 인간이 옳나요? 그럼 인간을 옭아매는 법은 옳지 않나요? 법 위에 있는 헌법은 대체 얼마나 옳은 건가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저는 한낱 인간일 뿐이니까요. 다만, 뭐가 옳다 그르다 대신에 귀찮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귀찮은 인간입니다. 법은 사람에게 귀찮은 것이고요. 전 귀찮은 인간으로서 귀찮은 법을 다룰 뿐입니다. 그저 사법부만큼은 스스로를 귀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저는 그게 웃겨요. 제 고귀함을 지키기 위해 다른 국민들을 귀찮은 존재로 만든다면, 세상에 그만큼 하찮고 귀찮은 사법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헌법수호나 정의사회구현 같은 거창한 사명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냥 저는 귀찮은 일개 국민으로서, 귀하지 않은 것들을 위해 귀찮은 일들을 할 따름입니다” 


 변호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앞으로 걸어 나갔다.      


-     


 수 년 전, 서울역 인근 로터리에서 여대생이 괴한의 습격을 받고 성폭행당한 뒤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발견당시 시신은 참혹하게 훼손된 상태였는데, 피해자가 불과 한 달 전 명문대에 진학한 새내기 여학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다만 사건 자체가 인적이 뜸한 새벽시간에 벌어졌거니와 주변 CCTV나 목격자, 이렇다 할 증거도 없어 경찰은 범인 특정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던 중 느닷없이 유력용의자로 체포된 것이 김씨였다. 역 주변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쉰두 살 김씨는 범행일체를 자백했고, 검찰은 김씨를 살인, 강간 및 사체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의 국선변호사는 당시 담당 경찰관들이 허위자백을 강요한 정황을 포착,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김씨는 징역 이십 년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되고 말았던 것이다.


 “변호사님은 제가 귀찮지도 않으십니까?” 김씨가 면회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변호사를 향해 물었다. “가뜩이나 다른 일도 많으실 텐데……”


 “저는 원래가 귀찮은 인간인데요. 뭘, 새삼스럽게” 변호사가 말했다. “아, 다리 편찮으신 건 요즘 어떠세요? 좀 괜찮아지셨나요?”          



<귀찮은 변호사>, 2019. 9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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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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