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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18. 2019

습작

백세번째

 빛의 도시가 밤하늘 아래 펼쳐졌다. 강줄기는 도심을 향해 달렸다. 가로등 불빛이며 건물에서 삐쳐 나오는 빛들이 그 위를 타고 흘렀다. 


 강 하류에 위치한 돌다리였다. 차로 십 분쯤 더 가면 자그마한 항구가 나왔다. 초저녁부터 버스킹을 하는 무명 밴드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다리를 건너 지나는 사람들까지 강 아닌 바다의 냄새를 맡았다. 근처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다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시를 향해 걸어 사라졌다. 빛은 오직 도시에서만 눈에 띄었다.     


 제법 많은 커플들이 강변을 따라 산책하고 있었다. 추레한 인상의 밴드는 저녁이 다 지나갈 무렵까지 노래를 계속했다. 아무도 모르는 자작곡들이었다.     

 

 “오늘도 아를의 밤에는-

 그림처럼 별이 빛나지만

 금화처럼 빚은 그대로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머리 너머로 펼친 별바다처럼-

 흐르고 싶은 마음 멈춰만 있네

 그대로 멈추네 그대로 쌓이네

 그대가 떠나고 그대로 남았네……”     


 보컬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낡은 앰프에선 이따금 노이즈가 새어나왔고, 사람들은 몇 초쯤 곁눈질만 하다 대부분 지나쳐갔다. 그럼에도 버스킹은 꿋꿋이 이어졌다.


 어느덧 밤이 깊었다. 기껏해야 다섯 명 정도가 밴드의 열띤 연주와 보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밴드의 모습은 저녁까지만 해도 퍽 선명했지만, 밤이 내려앉자 알아보기 힘들만큼 희미해졌다. 강 표면에 비치는 불빛덕분에 그들의 윤곽선만 겨우 보였다.


 마지막 노래가 끝났다. 맨 앞에 서있던 보컬이 마이크 스탠드를 분리해 케이스에 넣었다. 반면 뒤쪽에 늘어선 베이스나 드러머는 정리하는 기색 없이 그대로 있었다.


 보컬은 덥수룩한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드러머 뒤꼍 난간에 기대놓은 접이식 의자를 갖고 나왔다. 


 “자…… 그동안 저희 노래를 들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보컬이 잡아 편 의자에 걸터앉아 말했다. 좀 전까지 노래하던 목소리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저희가 준비한 노래는 방금 게 마지막이고요……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케이스에 든 게 아직 만 몇 천 원 뿐이라서. 죄송합니다”

 보컬은 말을 끝마치고, 큼큼, 하며 목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주위에 몇 명 앉아있던 관객들은 그동안 자리를 떴고, 그 가운데 두 명은 케이스에 꾸깃꾸깃한 지폐 한 장씩을 넣고 사라졌다. 


 “아, 아-” 곧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보컬이 노래했다. “……여수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돌연 밴드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다리를 지나는 사람은 물론 다리 건너편 길을 걷던 사람들까지 발길을 멈췄다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그 노랫소리에는 어딘가 구슬픈 면이 있었다. 머잖아 바다 쪽에서 밤바람이 불어 닥쳤다. 밴드를 에워싼 수십 명의 관객들은 제각기 노랫가락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야, 저 보컬 목소리 대박 좋지 않아? 여기 너무 낭만적이야” 


 “글쎄. 난 좀 개성이 없어 보이는데”


 “으음, 그런가?”


 “요즘 버스커들은 허구한 날 저런 노래들만 불러대잖아. 독창성도 없고, 철학도 없고. 그럴 거면 음악 같은 걸 왜 하는지 몰라. 맨날 똑같은 거 할 거면 공무원이나 할 것이지 말이야……”


 “하긴 그래” 지나가던 커플이 말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대화를 끝내기 무섭게 뒤돌아 떠났다.


 일이 끝날 무렵 케이스엔 십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차있었다. 밤이 깊었지만 여수도 밤바다도 아니었다.    


      

<별 하나 없는 밤에>, 2019. 9




<별 하나 없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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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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