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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21. 2019

습작

백네번째

 “자. 이제 올해도 사분의 삼이 지나갔습니다. 날씨가 풀려 무더워지기 시작한 게 불과 얼마 전 같은데, 어느새 하늘이 높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가하면 아침저녁으로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요” 아나운서는 사뭇 명랑한 톤으로 말했다. “새로운 계절을 맞아 시민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장의 이수지 리포터 연결해볼까요. 이수지 리포터?”     


 “네. 이수지 리포터입니다” 화면이 전환되자 곧바로 리포터의 모습이 나타났다. 정갈한 가을 옷차림에 머리가 큰 마이크를 들고 서있다. “……저 역시 2018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은 게 엊그제같이 느껴지는데요. 시청자 여러분들이 연초에 세운 계획들은 잘 돼가고 있는지, 또 불과 세 달여밖에 남지 않은 이번 해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에 대해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김진호 (32, 직장인)     


 “글쎄요…… 올해에 딱히 이렇다 할 계획은 없었고요. 굳이 하나 꼽자면 저축을 좀 해서 주위사람들처럼 해외라도 한 번 나가고 싶었는데, 물가도 오르고 경조사로 돈도 많이 나가고 하다 보니 여태껏 일만 했던 것 같습니다. 소망은 그냥, 올해 들어 유독 어머니 몸이 편찮아 지셨거든요. 남은 세 달 동안 몸조리 잘 하셔서 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새해를 맞고 싶습니다”     


▶ 이수희 (26, 취업준비생)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이번 해에 준비를 잘 해서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는 게 목표였는데 아직은 많이 힘든 것 같아요. 주위친구들이나 동기들이 사회생활 시작하는 거 보면 좀 조바심도 들고 걱정도 되고…… 집에 계신 부모님한테도 미안해요. 그래도 아직 올해가 다 간 건 아니니까, 남은 세 달 동안 열심히 해서 첫 월급으로 빨간 내복 사드리고 싶어요”     


▶ 최상백 (70, 서울시 종로구)     


 “저야 뭐 나이도 먹었고 큰 바램이랄 게 있겠습니까? 다른 양반들처럼 자식내외가 잘 되길 바라는 건데, 요즘 영 흉흉하고 안 좋은 상황으로만 계속 가니까 많이 힘들어보입디다. 이번 추석에도 일한다고 얼굴도 못 비치고. 앞으로 얼마나 더 볼지도 모르는데. 해 넘어갈 때 돼선 좀 풀려가지고 얼굴이나 자주 볼 수 있으면 딴 건 필요도 없지……”     


▶ 박미영 (43, 주부)     


 “아이가 고삼이거든요. 이제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밤늦게까지 고생하고 돌아오는 모습 보면 엄마로서 속이 상하고 그러죠. 그래도 그런 고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남은 기간 동안 잘 준비해서 좋은 결과 얻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우리 딸 파이팅!”     


▶ 정소현 (19, 고등학생)     


 “수능은 다가오는데 성적이 점점 떨어져서요. 더 열심히 안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원하는 대학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하고 싶은 것들 많이 해보고 싶어요”     


▶ 성재준 (9, 초등학생)     


 “음, 어…… 안녕하세요. 저는 성재준이고요. 초등학교 이학년이고요……”     


 “아아~ 그렇군요” 곁에 선 리포터가 상체를 숙이고 말했다. “그럼 우리 재준이는 앞으로 뭘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어, 제가…… 친구들이랑 물로켓을 쐈었는데 제일 못했거든요? 저만 상장을 못 받아서. 그래서. 좀 더 연습해서 친구들보다 더 높게 올라가고 싶어요. 계속 연습할 거에요” 아이가 말했다.     


 “그럼 내년에는 뭘 하고 싶어요?” 리포터가 친절히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없어요. 동영상도 찍고 딴 친구들처럼 유튜브도 하고 싶은데 엄마가 하지말래서” 

    

 “되고 싶은 건 없어요? 장래희망은?”     


 “음…… 저는……” 아이는 잠깐 어물대다가 대답했다. “초등학교 삼학년요”      

    

<상향평준화>, 2019. 9





<상향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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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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