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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23. 2019

습작

백다섯번째

 지긋지긋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교사로서의 첫 근무지가 그런 깡촌일 줄이야 상상하지 못했다. 전교생을 모두 모아도 스무 명이 안 되는 그런 학교가 아직도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웠다. 떠올려보면 대치동의 어느 자그마한 보습학원조차 수업 한 번에 마흔 명 넘는 학생이 들어왔었는데…… 도시와 시골의 격차는 계속 벌어져서, 어느덧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선 실감할 수 없는 영역에 접어든 모양이었다. 


 나는 지쳐있었다. 매일같이 바글바글 끓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제멋대로인 부모와 친구 그리고 잘나가는 대학동기들의 근황에 진력이 났다. 교원자격을 취득하자마자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먼 지방에 발령되길 희망한 건 그런 맥락에서였다. 생각해보면 그땐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다는 기분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들을 가르치는데 남은 평생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운명적인 서사를 앞에 두고 작은 발버둥이나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다만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던 내게 시골생활이란 난생 처음 보는 것들뿐이었다. 수많은 당혹감 앞에서 표정으로나마 의연해야하는 교사의 입장이라는 것도 진이 빠졌다. 그러다 가끔은 그 좁아터졌다는 대한민국조차 터무니없이 넓은 세상처럼 느껴져서, 갑갑한 옷차림의 나와 그런 나보다 한참은 어린 아이들 다섯 명이 전부인 열 평짜리 교실에 압도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사람은 과연 적응의 동물이었다. 처음 한 달은 지옥 같았지만 다음 달에는 아주 짜증나는 정도에 그쳤고,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이따금 교실 창문으로 날아 들어오는 각다귀에도 꽤 의연히 대처할 수 있게 됐다.


 교무실에서 잔업을 끝내고 나올 즈음엔 으레 해가 지는 중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쪽 바닷가로 향했다. 학교 아래쪽으로 난 길로 이십 분쯤 걷다보면 좁은 돌계단이 나왔다. 그 돌계단을 타고 조심조심 내려가면 야트막한 모래해변이 펼쳐졌다. 거기 서서 수평선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이며 홍염에 물든 구름조각들을 지켜보는 것이 내 가장 특별한 취미라 할 수 있었다.


 해변에서 그 아이를 마주한 건 정확히 다섯 번째 방문에서였다. 처음에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나만의 보물처럼 여겨졌던 그 바닷가라는 장소며 해가 질 무렵의 그 황홀한 풍경까지 마침내 뺏기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내게 먼저 다가와서 인사하지 않았더라면, “여기 노을이 참 예쁘죠, 선생님”하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 그림자가 내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아이인줄도 모른 채 내내 미워하고 말았을는지 모른다.


 “어, 너 신비구나. 누군가 했더니…… 네 집이 여기 근처니?” 나는 어쩐지 계면쩍은 말투였다. 주말을 빼면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는 얼굴인데도, 그런 시공간에서 마주쳐보니 아주 처음만나는 것처럼 생경했다. 


 “네. 여기서 삼십 분 쯤 걸으면 우리집이에요” 신비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삼십 분이면 꽤 먼데”


 “걸어보면 얼마 안 멀어요. 그리고 여기 바다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까요”


 “하긴 그런 것 같아” 


 “선생님” 신비는 고개를 바다 쪽으로 한 채 말했다. “선생님은 왜 여기에 왔어요?”


 “……응?” 나는 순간 얼어붙어서 대꾸했다. 왜 여기에 왔냐니. 너무 새삼스러운 나머지 살면서 그런 질문을 처음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여기 다시 오셨는지 궁금해서요”


 “왜 다시 왔냐고?”


 “네”


 “일단 시작해버리면 멈출 수 없으니까 그렇지”


 “그런가요?” 신비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선생님은 학교에서 뭘 배우시나요?”


 “나는 이제 배우는 게 없어. 가르쳐야하는 입장이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군요” 신비는 조금 아쉽다는 듯이 맞장구쳤다.


 “굳이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여기서 배웠지”


 “여기서요?”


 “응. 전엔 몰랐거든. 빨간색이 이렇게 예쁜 색 일줄은”


 “아” 신비의 눈이 휘둥그레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저는 매일 보느라 저게 빨간색인 것도 까먹고 있었어요”


 “그러니?” 나는 실없이 물었다. 


 신비는 아무 대답도 없이 바다를 쳐다보다가, “이만 가볼게요. 동생이랑 라면 먹기로 했거든요” 하곤 그길로 사라져버렸다. 


 그 뒤로도 우리는 몇 번이나 그 해변에서 마주쳐 얘기를 나눴다. 덕분에 나는 신비의 아버지가 뱃일을 하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또 얼마 전에는 어머니가 신비와 일곱 살배기 남동생을 놔두고 베트남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중학교까지는 의무야, 신비야”


 “알고 있어요” 신비는 무릎을 감싸고 앉아 있었다. “그래도 동생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선생님은 신비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는데”


 “왜요?”


 “그야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가서 어엿한 어른이 되면 좋으니까”


 “대학교를 나오면 어른이 되나요?”


 “그건 아니지” 내가 말했다.


 “그럼요?”


 “그래도 먹고 살려면 대학을 나와야지. 먹고 살려면……” 나는 부모님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 먹고 살려면. 그래야 동생도 돈 걱정 없이 살 거고. 널 보고 열심히 공부할 거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지”


 “……무서워요”


 “뭐가?”


 “중학교에 가는 거요. 거기서 새로운 애들을 만나는 것도요. 여기 바다랑 선생님도 다시 못 보게 되는 것도, 전부”


 “다시 못 보게 되는 게 어딨어? 시간 내서 보러오면 되지”


 “시간이 없어져서 그런 게 아니에요. 눈에서, 마음에서 멀어지니까 그런 거죠”


 “……” 나는 말문이 막혔다. 바다가 벌겋게 오른 구름을 삼키고 있었다. 


 “선생님. 그럼 있잖아요” 신비가 날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저도 선생님처럼 될 수 있나요? 중학교가서, 공부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졸업하면요”


 “나처럼 될 필요는 없어. 왜 나처럼 되려고 해?”


 “선생님은 멋지니까요. 전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아니. 신비야, 너는 네가 돼야해”


 “아뇨. 전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될 수 있다고 해주세요. 네? 저한테 용기를 주세요”


 “그건 거짓말이야” 내가 말했다. 신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을은 먼동에 걸려 거먕빛으로 물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신비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시골아이들은 시간개념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지만, 신비만큼은 결석은커녕 지각도 한 번 하지 않던 아이였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아침조례가 끝나자마 부리나케 전화를 들었다. 신비는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집으로 전화해도 받는 사람 없이 뚜-뚜-하는 신호음만 반복해 울렸다. 


 그날 오전수업을 어떻게 끝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학교를 뛰쳐나가 마을택시를 잡아탔다. 신비의 집은 차로도 제법 거리가 있는 동네에 있었는데, 겨우 골목구석에 있는 주소를 찾아냈지만 인적이 없어 휑했다.


 한편 방모서리에 금방이라도 등교할 듯 챙겨놓은 책가방을 보자 별의 별 생각이 다 치밀었다. 때맞춰 동료교사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곧바로 경찰에 실종신고를 넣을 뻔 했다.     


 “선생님…… 누나는 괜찮아요? 이제 피 안 나요?” 병원 로비에 앉아있던 신비의 동생이 울먹거렸다. “우리 누나 죽는 거 아니죠? 같이 집에 갈 수 있어요?”


 “누나는 괜찮아. 피는 계속 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나는 몸을 숙여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누나가 걱정돼서 119에 전화한 건 잘했어. 같이 들어가서 누나랑 인사할까?”


 마침 간호사가 신비의 팔에 꽂혀있던 링거주사를 뽑고 있었다. 동생은 곧장 환자복 차림의 신비에게 달려가 안겼다. 나는 그 모습을 꽤 흐뭇한 얼굴로 지켜봤다.


 “어때? 첫 경험의 소감은”


 “음, 글쎄요. 조금 막막해요. 앞으로 평생 이런 걸 겪어야한다니……” 신비는 동생의 등을 쓸어 만지며 말했다.


 “뭐, 평생은 아니고 몇 십 년쯤이지. 그래도 매번 응급실에 실려 오진 않을 거야. 또 이렇게 놀라지만 않으면 말이야. 아하하!”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놀리지 마세요”


 “신비야, 신경 쓸 필요 없어. 누구나 처음엔 그런 법이니까. 하긴 나도 병원신세까진 안 졌지만” 곁에서 지켜보던 간호사도 거들었다. 


 “아, 진짜!” 신비가 더럭 신경질을 냈다. 간호사는 나와 웃음기 가득한 표정을 교환하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우리도 곧 퇴원수속을 마치고 병원을 나와 걸었다. 


 “……선생님, 여쭤볼 게 있는데” 신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계속 하다보면 익숙해지나요? 이것도”


 “아니. 그런 사람도 가끔 있긴 하던데, 난 아니더라고”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거짓말은 하기 싫었다. 


 “그렇군요”


 “왜, 또 막막하니?”


 “아뇨. 이젠 그냥 좋게 생각하려고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니까” 신비가 말했다.


 “이제 보니까 꽤 의젓하네. 동생 앞이라서 그런가?”


 “그런 건 아니고요…… 선생님이 말하셨잖아요”


 “내가? 뭘?” 나는 대뜸 놀라서 물었다. 


 “빨간색이 그렇게 예쁜 색인 줄 몰랐다고요”


 “……”


 신비의 대답에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 하늘이 높게 푸르렀다. 중천에 떴던 해는 그사이 조금 기울었고, 몇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주위를 빨갛게 물들이고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나날이 배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홍연>, 2019. 9





<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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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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