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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25. 2019

습작

백여섯번째

 “솔직히 이 삼촌은 안타까워. 네가 학창시절 때 얼마나 공부를 잘 했냐? 그 좋은 대학 들어가서 졸업할 때만해도 내가 그랬다고. 우리 조카가 공부머리하며 눈동자까지 똘망똘망한 게 꼭 날 닮았다고 동네방네 자랑했다니까” 삼촌은 식당 건물 뒤꼍의 화단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변호사나 판검사…… 적어도 의사가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기자 나부랭이나 하다가 백수가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여기 촌구석 식당까지 알바나 뛰러 올 줄은 더더욱 몰랐지. 참 세상 모를 일이라니까!”


 “에이, 말씀을 뭐 그렇게 하세요. 백수가 아니라 이직하는 거라니까요. 다른 언론사로……” 나는 멋쩍게 대꾸했다. 


 “야, 임마! 뭔 말을 그렇게 하기는? 안타까워서 그런 거 아냐. 그러게 삼촌말대로 좀 유망하거나 기반이 탄탄한 방향으로 갔어야지. 그런 머리를 쓸데없는 기사 쓰는 데나 낭비해서. 기레기라는 소리나 듣고…… 형님이 얼마나 속 터져 했어? 뭘 저지를 거면 걱정하는 부모님 생각도 좀 해가며 저질렀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게 뭐 그렇게 될 줄 알았나요? 애당초 그런 의도로 낸 기사도 아니었고”


 “어휴, 이걸. 대꾸라도 안 하면……” 삼촌이 못내 담배를 꼬나물었다. 


 “의대는 성적이 안 됐고, 법대는 이제 로스쿨을 가야하는데…… 그게 돈이 한두 푼 드는 거 아니잖아요. 어정쩡한 각오로 돈낭비 할 바에야 그냥 뜻있고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맞다고 생각 했어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고등학교도 못 나온 내가 너랑 말싸움해가지고 체급이 되겠냐?”


 “그래도 삼촌보다 말 잘하는 사람 별로 못봤어요. 기자 나부랭이 하면서도”


 “또, 또. 입에 발린 말 하고 있어. 안 그래도 일당은 알아서 챙겨준다니까?”


 “네. 알겠습니다”


 “참내. 사회 나와서 애가 더 약아지기만 했지…… 언제 돼야 밥값할래?”


 “밥값이라뇨? 저 놀고 있는 거 아니에요. 퇴직금도 받았고, 실업급여도 꼬박꼬박 나오는데…… 그냥 집에 있기 갑갑해서 일이라도 하러 나온 거죠” 어쩐지 나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절반은 거짓말이었다.


 “제기랄. 자기 밥값하면서 산다는 게 다 뭐냐? 니가 기자생활하면서 뭘 느꼈는지는 내가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꼭 최고가 될 필요는 없어. 반드시 큰 물에서 놀아야하는 것도 아니란 말이야”


 “용 꼬랑지보단 뱀 대가리가 돼라, 뭐 그런 얘기죠?”


 “얼씨구! 뱀 대가리는 아무나 되는 줄 아냐? 대부분은 뱀 대가리도 못돼. 뱀은 지가 보고 지가 판단해서 잘 먹고라도 다니지. 까놓고 보면 팔 할이 그냥 피라미야. 어디 동네 고인 개물에서나 허우적대다가 죽는 게 고작 아니겠냐?”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결론은, 그래. 자기 분야에서 먹고 살만큼만 하라는 거야. 네가 등에 업고 있거나, 나중에 업게 될 것들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만 말이야. 그게 내가 생각하는 ‘밥값’이야. 너야 기자회견도 다니고, 국회인지 뭔지도 드나들고, 여기저기 대단한 사람들 많이 봐왔겠지?” 삼촌은 말을 끝마치고 담배를 한 모금 했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은 꽤 많이 봤죠” 내가 말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 따위 신경도 안 써. 퍽이나 대단해, 그게? 정말로 대단한 건 자기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기반을 다져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일 년을 버티고, 십 년을 버티고, 그래서 우리 예쁜 딸 등록금까지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대단해. 사람이 꼭 큰물에서 놀아야할 필요 있나? 우리가 태생이 피라미라고 쳐. 그런 주제에 큰물에 나가면 어떻게 되겠어? 무지막지하게 큰 잉어든 가물치든 하여튼 뭐가 됐든 더 큰 놈들한테 잡아먹힐 뿐이지. 주제파악 못하는 대가라는 건 바로 그런 거야. 나도 봐라, 쓸데없이 주식놀음 해보겠답시고 설쳤다가 아직까지 빚이 일억인가 남아있어. 그나마도 이 가게하면서 꾸준히 갚아 와서 그 정도 남은 거지. 나는 붕어로 태어난 주제에 잉어만큼 클 수 있을 줄 알았던 거야. 나 따위도 큰물에서 놀면 알아서 큰놈이 될 줄 알았던 거라고”


 “좀 슬픈 얘긴데요, 그건”


 “……용의 머리? 웃기지 말라고 해. 붕어에겐 붕어의 삶이 있는 거야. 바다가 아니라 작은 개천에도 물고기는 사는 법이고.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 너 보기엔 그럴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내가 이 나이먹고 식당이나 운영하는 주제에 허세나 존나 부린다고. 안 그러냐?”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저는 단지……” 나는 또 다시 변명하려 들었다.


 “됐어! 조카가 삼촌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니 자유지. 그런데 그거 알아? 여기 동네 식당 중에 우리가 제일 잘 나간다는 거. 우리 식당이 이 동네 정육식당 중에서도 제일 잘 나간다니까. 못 믿겠으면 지나가는 아저씨 잡아서 물어봐도 돼. 하긴 제일 잘 나간다고 딱 꼬집어 얘긴 할 수 없어도…… 나름 단골도 많고, 매달 종업원들 월급 안 밀리고, 원가 다 빼고 따져도 남은 돈으로 가끔 여행도 다니지. 올해는 와이프랑 딸이랑 같이 강릉도 가고, 거기서 몇 만 원짜리 대게도 사먹었어. 다른 게 행복이 아냐. 그런 게 행복인거지. 나는 그런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어. 그저 너무 늦게 알게 됐을 뿐인 거야. 그러니까……” 삼촌은 앉아있던 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반쯤 탄 담배꽁초는 바닥에 비벼 껐다. “너는 너무 늦게 깨닫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네가 어느 정도의 그릇인지. 너무 너를 과대평가 하느라, 강박적으로 꿈과 이상을 쫓아가느라, 뭐가 널 정말 행복하게 하는지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거라고. 내 말 알겠어? 이것마저 꼰대라고 여기면 더 말 안하고”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나는 퍽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진심으로 절 걱정해주셔서 그런 말씀 하시는 거 알아요. 고마워요, 삼촌”


 “그래, 그럼 다행이고…… 이제 일 하러 들어갈까?” 삼촌은 손에 묻어있던 담뱃재를 툭툭 털었다. 


 “네” 내가 말했다. 가게 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공사현장이 하나둘 정리되는 시간에 맞춰서, 우리는 막걸리 재고를 확인하고 테이블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나는 삼촌의 식당에서 한 달 반쯤을 더 일하다가, 서울소재의 한 경제신문사에 기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때 ‘일 다 가르쳐놨더니 다시 글이나 쓰러간다’면서 궁시렁대던 삼촌은 재취업 기념이랍시고 최신형 노트북을 선물로 보내왔다.      




 그로부터 일 년 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는 삼촌의 부고를 전해 듣자마자 반차를 냈다. 빈소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초췌한 인상의 숙모 그리고 올해 막 열 살이 된 여자아이가 상복을 입고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내 사촌동생은 친부의 죽음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다. 어디 하나 슬픈 기색도 없이 그저 엄마가 시키는 대로 꾸벅꾸벅 인사나 하기 바빴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사촌을 두고 ‘에고, 이 불쌍한 것’ ‘어린 것이 가엾게도’ 하며 저마다 눈을 글썽이곤 했다. 당장 그 아이가 느끼지 못하는 슬픔이라는 것이 일종의 빚이며, 어쩌면 평생에 걸쳐 갚아야한다는 사실을 알고들 있다는 듯이.


 믿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삼촌의 말이 맞았다. 삼촌은 붕어였다. 붕어긴 했지만 나름대로 멋진 붕어였다. 붕어가 붕어답게 살아가는 법을 알았고, 더 비대해질 필요가 없음을 알 정도로 영리한 붕어였다. 그러나 그토록 영리했던 삼촌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그 커다란 놈들이 동네 개울과 웅덩이마저 죄다 차지하려 들 줄은.


 나는 빈소 구석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꺼내 일을 시작했다. 모두가 슬픈 가운데. 눈치도 없이.     


[ 요식업에 종사하던 40대 가장의 자살…… 외식 프렌차이즈의 ‘마구잡이식 확장’ 이 골목상권 숨통 조여……_ ]     


 그때 쓰기 시작한 글은 일주일도 안 돼 완성됐지만, 온라인이나 지면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주요 광고주인 요식업계와 분쟁이 생기면 골치가 아프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이윽고 기존의 업무로 되돌아갔다. 삼촌이 사준 노트북은 여전히 내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식당이 없었다. 내가 일을 그만두더라도. 언제든 도망쳐 일할 수 있는 식당이 없었다. 더 이상 단 한 곳도 남아있지 않았다.          


<낙수효과>, 2019. 9




<연못 안 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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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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