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Sep 27. 2019

습작

백일곱번째

세상에는 멍청한 사람이 너무 많았죠     


으레 위대해 보였던 것들이 낮아지고     


머리의 핏기가 조금이나마 가실 때쯤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때 내가     


너무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과 물건들     


어떤 면에선 견디기 힘들만큼 바보고     


길가에 나돌아 다니는 화상들 허접들     


하나같이 추하고 한심한 존재라는 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랐다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차게 식어 버리고     


미련한 노력으로 가엾은 삶이나 찾는     


그럴듯한 줏대도 없이 마구 흔들리는     


마음 같은 갈대들이 너무너무 싫다고     


갈대밭 한가운데서 큰 소리로 말했죠     


하기야 그렇습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닮아진 너희와 닮아갈 나도 빠짐없이     


갈대로 태어난 운명은 도리가 없어서     


영원토록 아름드리나무는 될 수 없죠     


단지 뒤늦게 알았을 뿐이에요 당신들     


사방으로 비와 바람 부는 세상에서는     


마음 따라 흔들려야만 살 수 있단 걸     


가끔 호구처럼 때때로 멍텅구리 같이     


속으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는 무지     


힘없이 흔들리는 갈대도 산 위에서는     


꿋꿋이 참고 버티며 사는 억새들이죠     


그러니 잊지 마세요 고개 숙일지언정     


마음만은 늘 높다란 산마루에 올라서     


곧게 뿌리박은 곳 우직하게 지켜내고     


세찬 소나기에도 부러지지 않는 이유     


오늘도 못내 흔들리는 황금빛 갈대밭     


우리네 마음과 꼭 닮았기 때문이지요               




<갈대밭 억새들>, 2019. 9





<갈대밭 억새들>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만쟈'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그림이 걸린 방에는 방향제가 필요없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작업도 후원하고, 당신만의 공간에 멋진 그림도 한 점 걸어두세요.  


아래 링크에서 다음 작업을 미리 후원해주시면, 이 작업을 더 오랫동안 지속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http://bit.ly/2MeKVLL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