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곱번째
세상에는 멍청한 사람이 너무 많았죠
으레 위대해 보였던 것들이 낮아지고
머리의 핏기가 조금이나마 가실 때쯤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때 내가
너무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과 물건들
어떤 면에선 견디기 힘들만큼 바보고
길가에 나돌아 다니는 화상들 허접들
하나같이 추하고 한심한 존재라는 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랐다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차게 식어 버리고
미련한 노력으로 가엾은 삶이나 찾는
그럴듯한 줏대도 없이 마구 흔들리는
마음 같은 갈대들이 너무너무 싫다고
갈대밭 한가운데서 큰 소리로 말했죠
하기야 그렇습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닮아진 너희와 닮아갈 나도 빠짐없이
갈대로 태어난 운명은 도리가 없어서
영원토록 아름드리나무는 될 수 없죠
단지 뒤늦게 알았을 뿐이에요 당신들
사방으로 비와 바람 부는 세상에서는
마음 따라 흔들려야만 살 수 있단 걸
가끔 호구처럼 때때로 멍텅구리 같이
속으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는 무지
힘없이 흔들리는 갈대도 산 위에서는
꿋꿋이 참고 버티며 사는 억새들이죠
그러니 잊지 마세요 고개 숙일지언정
마음만은 늘 높다란 산마루에 올라서
곧게 뿌리박은 곳 우직하게 지켜내고
세찬 소나기에도 부러지지 않는 이유
오늘도 못내 흔들리는 황금빛 갈대밭
우리네 마음과 꼭 닮았기 때문이지요
<갈대밭 억새들>, 201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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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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