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인데 마카롱이나 사 먹는 이유
'X만 원이면 국밥이 몇 그릇인데'라는 댓글이 요즘 들어 자주 보인다. 모 커뮤니티 등지에서 나온 유행어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모양이다. 물론 진심으로 다는 댓글은 아닐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90년생은 삼시세끼 국밥만 먹어도 될 정도로 입맛이 단순하지 않다.
나는 세대를 떠나서 한국인 자체가 맛에 있어 꽤 까다로운 사람들이라 생각하는데, 부모님 세대에게 유독 '까다롭지 않은 입맛인 척'하는 경향은 있는 것 같다. 대학생시절 모 교수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요즘 학생들은 입이 고급이라 아무 거나 안 먹는다고. 밥 한 끼 먹을 때도 꼭 맛집 찾아서 가고, 다 먹고 나면 꼭 커피 마셔야 하고. 안 그래?'라는…… 정작 그때 나는 학식에서 천오백 원짜리 김치주먹밥과 무료로 주는 장국을 먹고 온 상황이었고, 그 교수님의 조교들은 캠퍼스 근처의 맛집을 줄줄 꿰고 있기로 유명했다. 맛있는 거 혼자만 먹으려는 심보가 다섯 살짜리 애기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이건 더럽게 입맛 까다로운 요즘 것들로서 말하는 건데, 솔직히 혀에 금칠한 건 기성세대들도 우리 못지않다. 실제로 '미슐랭 가이드 서울'이 발표한 별 두 개 또는 세 개짜리 레스토랑은 하나같이 강남 아니면 중구에 위치해 있다. 홍대나 신촌 같은 대학가가 아니고. 여의도에 유명한 밥집이 많다는 건 지도 어플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다못해 불고기 백반집도 주차장에 택시 잔뜩 세워져 있는 곳이 제일 맛있다. 뭐야? 집에서는 주는 대로 그냥 먹으라 그래 놓고선.
대학생들이 '맛집'이라고 부르는 곳은 정말로 맛이 압도적이라기보단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색이 있는 곳' 또는 '가성비가 무척 좋은 곳'에 가깝다. 전자는 돈을 좀 주고서라도 남다른 경험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도일 것이고, 후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높은 만족도를 얻고자 함이다. 대학생이던 시절 내가 제일 많이 찾았던 곳은 학식과 정문 앞 밥버거 가게였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대학생과 직장인의 소득 수준이 다른데 단순비교가 가당키나 하냐고. 그럼 나는 아주 정확한 지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입맛이 고급이냐 저질이냐를 가르는 건 아마도 소득 수준이 맞을 것이다. 6,70년대에 태어났냐 90년대에 태어났냐 하는 세대적 구분보다는 말이다. 언제 태어났든 허구한 날 똑같은 것만 먹어도 상관없는 사람이 그렇게 많겠는가. 입맛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게 있다고 하면 나이차보다 어려운 상황 쪽이겠지.
돈이 아무리 없어도, 예의 우스갯소리처럼 매일 국밥만 먹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로빈슨 크루소도 열매 따먹고 생선 잡아먹다 질려서 무인도에다 농사까지 지었다. 상황이 가난하다고 해서 입맛까지 가난해지진 않는다. 소싯적의 나 역시 집은 못 살았지만 먹성 하나는 좋았다. 지금은 반 마리 먹고 배가 차는 치킨을 그땐 한 마리 다 먹어치우고 스파게티까지 거뜬히 비울 정도였다. 자주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남긴다는 게, 당시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같았다.
한 번은 그랬다. 중학생이 돼서 부쩍 반찬투정이 심해졌던 나는 엄마에게 한창 클 때 반찬이 이게 뭐냐고, 내가 무슨 채식주의자냐고 따지고 들었던 적이 있다. 이때 엄마가 내놓은 대답이 걸작이다. 듣자 하니 저 멀리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만 먹고 잘만 살았다더라는 것이다. 너무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에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믿고 말았는데, 나중에 역사를 조금 배우고 나서 보니 세상에 그렇게 사악한 발언도 없었다. 대체 어디서 뭘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한 걸까? 지금도 미스테리다.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의 사치스러운 입맛'을 상징하는 음식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마카롱 되시겠다. 프랑스판 모나카쯤 되는 이 조막만 한 간식 하나를 몇천 원씩 주고 사 먹고 있으니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오죽하면 마카롱이 유행하는 걸 보고 젊은 세대들의 충동적 소비패턴이 드러나는 예시라느니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할 뿐이라느니 하며 분석하는 기사까지 나오곤 했다. 언제는 창렬이네 혜자네 가성비 오지게 따지는 척하더니, 다시 보니까 밥 한 끼 가격의 과자 쪼가리나 사 먹고 있지 않은가. 부모님 세대로선 어이가 털릴 만도 하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 세대에게는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순간의 욕구에 쉽게 휩쓸린다' '경제관념이 없고 낭비와 사치가 심하다' '좀처럼 돈을 모을 줄 모른다' 같은 인식이 생겨버린 모양이다. 뭐, 전혀 신빙성도 없고 설득력 없는 이야기라고 하진 않겠다. 나 역시 그런 면이 있거니와, 주위 친구들에게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우리 세대는 너무 힘드니까 마카롱을 먹을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같은 개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다. 애당초 마카롱 같은 걸 '먹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니까.
다만 우리 세대가 왜 마카롱을 사 먹는지, 그 대략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주목해볼 만하다. 정말이지 우리 세대는 왜 마카롱을 사 먹는 것일까?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과 알바비 또는 쥐꼬리 수준의 월급으로 말이다. 적금 안 드는 거야 금리가 예전 같지 않으니 그렇다 치자. 그래도 낭비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티끌모아 티끌일지언정 있는 티끌마저 다 날려버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십 년 뒤, 이십 년 뒤 같은 거창한 미래는 아니더라도 어찌 될지 모르는 나중을 위해 뭐라도 기반을 닦아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왜 통장에 돈이 꽂히는 족족 값비싼 음식이나 해외여행으로 탕진하는 것을 일종의 재미로 여기는가?
책임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90년생은 어떤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만한 상황 자체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우리들 대부분은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고 있다. 신혼부부 중에서 쉽게 딩크족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성별 구분 없이 비혼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자연스럽다. 여태껏 부모님 세대를 지켜보며 배웠던 것이다. 사람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쉽게 파괴되는지를. 회사를 다니던 어머니가 전업주부가 돼 매일을 집안일에 몰두하는 이유나, 소설가가 꿈이었던 아버지가 직장인으로서 원치도 않는 일을 이어가는 이유가 모두 책임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랑하는 무언가를 지키려면, 때로는 원치 않는 일이라도 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 책임이 두려워서 사랑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도, 죽을 각오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도, 나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기대도 찾아보기 어렵다. 돈을 아껴서 뭘 한 단 말인가? 당장 사랑하는 것도 하나 없는데. 90년생들이 가진 가장 큰 슬픔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 무엇도 쉽게 사랑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우리 세대의 목표는 월급 몇 푼씩 모아 집이나 차를 사는 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 그런 건 뚜렷한 의미도, 현실성도 없다. 애시당초 사회에 나오는 순간부터 학자금대출이니 취업준비자금이니 갚을 돈부터가 먼저다. 첫 단추도 끼우기 전에 이 모양 이 꼴인데 뭘 목표를 세우고 돈을 모은단 말인가. 집이 필요하면 부모님께 기특한 자식이 돼서 물려받는 쪽이 훨씬 빠르다.
우리에겐 그저 미움받기 싫어서, 무시받는 게 무서워서 발버둥 치는 나날의 연속이다. 취직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서, 돈을 모아 사고 싶은 게 있어서라기 보단, 그저 한심하게 보이기 싫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인지 만사에 패기도, 열정도, 귀에 피나도록 떠들어대는 주인의식도 없는 것 같다.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패배하지 않기 위해 사니까. 이뤄내기보다 무너지지 않으려 겨우 버틸 뿐이니까.
'젊은 세대가 힘든 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는 말을 몇 번이고 들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열심히 일해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애 낳고 하는 그런 종류의 희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사람은 아주, 아주 작고 희미한 희망이라도 없다면, 단 일 분 일 초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다. 그 희망이랄 것이 알고 보면 얼마나 보잘것없느냐 하는 문제는 먼 나중의 소재다. 당장에도 수많은 직장인들이 며칠 뒤의 주말과 공휴일을 바라보며 하루를 버텨내듯이. '점심시간에 뭘 먹을까' 하는 자그마한 자유를 기다리며 오전 근무를 이겨내듯이.
당 섭취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더구나 마카롱은 예쁘게 생겼다. 워낙 작아서 한 입에도 먹을 수 있지만, 인스타에 올린 사진은 지우지 않는 이상 계속 남아 있다. 우리는 그런 식이다. 고작해야 마카롱쯤 되는 고급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혹은 있었다는 것)에서 퍽 대단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게 우리 추레한 삶에 아주 작은 특별함이나마 부여해주는 것 같아서. 어쩜 우리가 그 조그만 달달함 한 조각을 위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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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