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이별에 관한 기록 (8)

11월 28일

by 이묵돌

이별에 관한 기록

11월 28일.


이튿날 아침에는 습관처럼 옆구리를 더듬었다. 아무 것도 없이 손이 차가웠다. 굳게 닫힌 창살 틈으로 찬바람이 새어들었다. 문득 부은 얼굴을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힘겹게 거울을 바라봤다. 퉁퉁 부었던 살은 온데간데없이, 얼굴뼈 윤곽이 그대로 도드라져 보였다. 신으로부터 받은 전능한 능력을 모두 빼앗긴, 어느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 있다면 꼭 그런 느낌을 줄 것 같았다. 비뚤게 서있는 모양새가 꼭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오만불손한 인간. 스스로의 집착에 도로 잡아먹힌 타인이 내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지탱하고 있는지, 다 잃기 전의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한다. 다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아도 관계를 이어나가다보면 내게 향하는 관심이며 사랑 자체를 과소평가한다. 또 그런 마음들은 세상에 흔히 널려있는 상품이나 다를 바 없고, 자기 자신은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만큼의 마음을 차지할 수 있는 백지수표라고 착각한다. 그렇게 내키는 대로만 살아가다가 어느 날 파산하는 것이다. 뒤늦게 권리를 주장해봤자 때는 늦었다. 어느덧 담보도 보증도 없는 부도수표가 내 싸구려 자아를 대신한다.


모두 거짓이었다. 과거의 마음들이 지금의 마음까지 보증할 순 없는 것이다. 대체 누굴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단지 나는 오늘 밤이 무섭다. 혼자 눈뜨게 될 내일과 그 다음날, 어쩌면 너의 부재에 더 슬퍼하지 않는, 미래의 내 모습까지도 모조리 슬퍼 어쩔 수 없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히 했다. 지난 이 년 간 나는 서연이로 인해 살았다. 인생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다가, 수면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당시의 내게 서연이는 아무 조건도 바람도 없이 찾아와 함께해줬다.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일가친척과의 교류 없이 고아처럼 살던 내게 처음으로 진짜 가족이 생겼다는 생각도 했다. 난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결국 남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완전한 타인.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어났지만 물만 마시고 도로 침대에 누웠다. 더 이상 잠들 수 없을 정도로 자다 일어나니 오후 두시가 돼 있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뭐라도 집중할 게 있어야 이 시간을 버틸 수 있겠지.


『인간의 굴레에서』의 마지막장을 읽고 책을 덮었다. 이렇게 좋은 소설, 특히나 인간군상에 대해 섬세히 다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내가 처한 상황이나 하고 있는 걱정 따위가 아주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착상은 일시적인 효과를 줄 뿐이며, 마취가 풀리고 나면 변함없는 현실이 이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 고귀한 정신과 신념을 깨우쳤다고 한들 정작 시련이며 뼈아픈 고통을 마주하게 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돼버리곤 한다. 흔한 이별, 흔한 아픔에 이렇게나 몸부림치는 내가 초라해진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 그것에 의미가 없다면 두려워할 필요도 별로 없다.’는 문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나는 이별이 두렵다. 서연이와의 이별이 두렵고, 함께했던 추억이며 마음들이 빛바래가는 시간이 두렵다. 그러나 마주해야한다. 이별과 당당히 마주하고, 정당하게 고통받아야한다. 최선을 다해 쏟아 부었던 만큼 무너질 때의 충격도 크지만. 나의 고통은 지난 시간들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는지를 방증했다.


나는 미웠다. 이렇게 뜬금없이 이별을 선고한 서연이가 미웠고, 그런 서연이와 연락을 주고받은 그 남자한테는 정말이지 총이라도 쏴버리고 싶었다. 그러게, 보살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은 더욱 아닌 내가 무슨 수로 덜 고통 받는가. 그렇지만 다른 그 무엇보다도 내가 더 미웠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량이 넓지도 않고, 섬세하지도 않고, 눈치라곤 하나도 없고, 재능도 센스도 없는 내가 제일로 미웠다.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하는 인간, 넝쿨째 굴러온 호박도 도로 차버리는 못난 놈…….


이런저런 생각을 마구 하다 보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가만 보니 편두통이 또 한 번 도진 듯 했다. 뭐 한 것도 없는데 가지가지 하는군,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두통약을 한 알 삼켰다. 시간은 저녁 때 였지만 먹고 싶은 게 없었다. 뱃속에서 쉬지 않고 꾸루룩 소리가 났지만, 뭔가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영 들지 않았다. 어떤 정신분석학자는 인간이 식욕과 성욕만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했다던데. 현재의 나는 둘 다 느끼질 못하고 있으니 어떤 면에선 인간도 못되는 존재였다.


성욕이라고 하니 생각난 건데, 얼마 전 서연이가 친구네 집으로 떠나기 직전엔 이런 대화도 했었다. 나는 네가 떨어져있는 동안 다른 사람과 잔다고 해서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반대로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하면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난 그런 건 견딜 수 없거든. 네가 다른 사람이랑 하고 있는데, 나는 집에서 혼자 자위하고 있는 거 말이야. 난 그런 비참함을 견디는 취미는 없어. 네가 한다면 나도 할 거야. 그것만 알아둬.” 내가 말했다. 서연이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다. 나도 웃었다. 웃겨서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나 내 비참함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게 우스워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서연이가 가버리고 나니 섹스는커녕 자위할 생각 한 번 나지 않았다. 하기야 나도 대화상대로 아주 나쁜 편은 아니니까, 내일이라도 어떤 이성이라도 만나 조금의 일탈감을 누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차피 세상의 절반은 여자인데 뭐!’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뿐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도피행각이라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나와 시간을 보내는 상대방에게도 실례가 되는 일이다. 자신이 타인의 삶에서 대체제로 쓰이는 걸 누가 좋아라 하겠느냐고. 중요한 건 마음이다. 뻔한 말이지만.


남은 속여도 스스로는 속일 수 없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고통을 어떻게 지나보낼지 알고 싶었다. 아, 내가 이렇게 궁지에 몰렸을 땐 항상 하던 일이 있었는데.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는데. 터놓고 얘기할 가족도 친구도 없을 때 늘 도망치던 곳이 있었는데…… 의사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걸 글로 써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맞는 말이다. 일단 글로 써놓고 보면. 나는 내가 겪는 고통을 제삼자처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늘 글로 도망쳤다. 집에서, 대학에서, 회사에서 나왔을 때까지.


난 모니터를 세로로 꺾어 세우고 자리에 앉았다. 저녁 무렵부터 닥치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 해가 떠있었다. 졸리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이대로 영원히 계속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창밖엔 아침 일찍 달리는 버스의 엔진소리. 문틈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에 손끝이 시리다. 맞아. 도망칠 때는 꼭 이런 기분이었다. 그게 또 다른 길이 될 줄은 매번 몰랐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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