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12월 6일.
계속해서 오후에 일어나고 있다. 하늘은 역시 희뿌옇고, 당분간 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블라인드를 잠깐 올려서, 날씨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내렸다. 나는 날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 반대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항우울제를 먹기 위해 시리얼을 한 줌 먹었다. 내가 다른 대용식사에 비해 시리얼을 선호하게 된 것은 순전히 씹는 느낌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본 칼럼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의외로 ‘얼마나 자주 씹는지’에 따라 포만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 말인즉 실제로 음식이 많이 섭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언가 씹는 느낌이 확실하기만 하면 비교적 더 배가 부르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런 가십성 연구결과가 으레 그렇듯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로선 똑같은 양을 먹어도 물이나 죽보다는 시리얼 쪽이 배불리 느껴지는 건 맞는듯하다. 뭣보다 간단하기도 하고.
서연이로 말할 것 같으면 식욕이 들쭉날쭉한 편이었다. 많이 먹을 때는 엄청나게 많이 먹는데, 적게 먹을 때는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적게 먹는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나보다도 많은 양을 먹었었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조금 살이 쪘다 싶으면 스스로 조절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다만 나는 서연이가 살이 좀 붙어 있는 쪽이 좋았다. 뱃살도 턱살도 귀엽게 느껴졌다. 성격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살이 찌면 찌는 대로 귀여워진다는 점에서는 유독 고양이와 닮았다.
하여간 서연이를 만나고 나서 나 역시 먹는 양이 늘었다. 오늘은 어디서 뭘 먹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연인들에게는 만남의 핑계거리이자 주된 콘텐츠이기도 하니까. 한편 내가 혀도 짧고 비위도 약하다보니 메뉴선택에 제약이 많았다. 여러 가지 음식을 다양하게 즐기는 걸 좋아하는 서연이에겐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생 못 먹던 음식도 먹어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난 원래부터 해물은 못 먹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낙지 탕탕이와 주꾸미도 곧잘 먹는다. 물론 좋아하는 건 아니고 ‘먹을 수는 있다’는 정도다. 기겁해가며 연체동물을 먹는 내 모습을 보며, 그게 자기 덕분인 양 흐뭇해하던 서연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즐거웠다. 그럴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좋았다. 서로를 닮아가고, 닮아가려고 애쓰는 그 일련의 시간들이 소중했다. 비록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닮은 면들을 가장 미워했지만 말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나는 어제했던 고민의 연장선 위에서 할 일을 찾아봤다. 곧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도 나중에 할 일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서연이가 나와 헤어지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지금쯤 새로운 대출을 알아볼 필요는 있었다. 기존 대출들의 만기가 다가오고 있기도 하고, 그 사이 더 저렴한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옵션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프리랜서다보니 이런저런 제약이 많기는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일단은 국세청 홈택스며 국민건강보험 같은 관공서 사이트를 뒤져가면서, 소득증빙이 가능한 서류들을 몇 건 정리했다. 수입이 불규칙적이기는 했어도 연소득으로 따지면 그리 나쁜 수준이 아니다. 다만 소득금액증명원 상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적은 금액으로 나왔는데, 종합소득세를 적게 내겠답시고 최대한 경비비율을 높여 책정한 탓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라는 생각은 이제 와서 별 의미가 없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인생이라는 게 항상 그렇다.
저녁에는 동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잠깐 앉아서 대화를 하는데, 뭘 먹겠냐고 묻기에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며 내가 겪고 있는 정서적 어려움에 대해 가능한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뜬금없이 질문이 치고 들어온 것은, 내가 책읽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다는 지점에서였다.
“대체 무슨 책을 읽는데?”
“아, 요즘은 여러 가지를 읽지. 쇼펜하우어도 읽고, 도스토옙스키도 읽고 있어. 아, 얼마 전에는 자본론도 좀 읽었는데…….” 나는 간만에 책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나서 말을 이었다. “정말 신기하다니까. 옛날에는 멀티태스킹이라는 게 안 돼서, 한 번에 두 권 이상을 동시에 읽는 게 상상이 안 됐었는데. 사람이 할 게 없으니까 어떻게든…….”
“야, 진짜 너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상대방이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어떻게 심적으로 안 좋다는 놈이 정신건강에 더 안 좋을만한 책만 읽고 있냐? 쇼펜하우어? 도스토옙스키? 걔네 다 겁나 우울하게 살다 뒈진 놈들 아냐.”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이러나저러나 걔들이 우울한 얘기만 하는 건 맞잖아. 기분전환하려면 만화책처럼 좀 재밌는 걸 보거나…… 적어도 더 우울해질만한 건 안 봐야하는 거 아니냐고. 왜 그딴 것들만 찾아서 읽는 거야?”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좀 이따 읽겠답시고 책상위에 올려놓았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표지가 문득 떠올랐다. 니체의 책이었다.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책을 읽는 건 좋다 이거야. 약하고 술하고 그런 것보단 백배천배 나아. 근데 책도 좀…… 심하게 자기 파괴적인 걸 읽는다는 생각 안 들어? 침울하게 뒈진 놈들 책 같은 거 읽지 말고. 웬만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걸 봐. 너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자꾸 굶지 말고, 맛있는 것도 가끔 먹어주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어떡해.”
“아, 당연히 의미가 없지. 인생에 의미 같은 게 어딨어…… 그러니까 그런 거라도 해야 하는 거라고. 안 그래도 의미가 없는데 스스로를 괴롭혀가면서 살 필요는 또 어딨겠어. 넌 지금 정신적 자해를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니까.”
정신적 자해. 집에 혼자 드러누워 그 말을 여러 번 되뇌어보았다. 협탁에 올려놓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민음사판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초상화속의 도스토옙스키. 덥수룩하게 자란 갈색 수염 위로 쓸쓸하고 외로운 얼굴이 먼 아래를 응시하고 있다. 그렇다. 얼마 전 서연이에게도 그런 말을 했었다. 나라고 도스토옙스키처럼 살다 죽고 싶진 않다고.
그런가하면 나는 피츠제럴드가 아니다. 서연이 역시 젤다가 아니다. 아니, 혹시라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떠난 건지도 모른다. 난 대단한 글 따위를 위해 불행하고 싶지 않다. 한때는 내가 야위는 만큼 글이 살찌리라는 착각도 했었는데. 그거야말로 헝그리정신의 잘못된…… 한참은 잘못된 이해였다. 굶어죽고 나면 글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시집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평생을 부끄러워하며 살았다. 지금껏 재해석이다 복각판이다 해서 불티나게 팔린 인세 역시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나는 그런 건 참을 수 없다. 내가 뭐빠지게 써놓은 책인데. 그거 팔린 돈을 나 말고 다른 놈이 받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재주는 작가가 넘고 돈은 출판사가 벌다니…… 다른 사람한테 줄 바에야 지폐 째로 불태워버리는 쪽이 나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자 폭소가 터져 나왔다. 요 며칠 동안은 장난으로나마 웃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마음에서 우러나 한참을 웃었다. 미친 사람 같았다. 너무 웃었는지 배에서 익사하는 소리가 났다. 그래. 오늘은 치킨을 먹어야겠다.
한 마리는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반 마리만 시켰다. 그런데 나한테는 그 반 마리도 양이 꽤 많았다. 절반을 겨우 먹어치우고 나머지 절반은 내일 먹겠다고 남겨뒀다. 얼마만의 제대로 된 식사, 기름기 있는 간식인지, 생각할 즈음 손흥민이 골을 넣었다. 아주 대단한 골이었다. 나와 큰 상관은 없지만. 적어도 보기에는 좋았다. 세상이 다 그렇다. 그건 그렇고 내년에는 주급이 얼마나 오를까. 나한테 한 일주일 봉급만 기부해주면 좋을 텐데. 하긴 그러면 사는 게 재미가 없지. 결국에는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은 생각만큼 없다. 다 소설가가 지어내는 이야기일 뿐이지, 자살은 주로 돈 때문에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읽었던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 중에 있었던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거의 항상 빈곤에 시달리며 살았다.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빈곤에 허우적대면서, 매일같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하루를 살았다. 월세가 없으면 안 돼. 카드값이 없으면 안 돼.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더 안 돼…….
그렇게 지나와보니, 당시에 내가 잡았다고 생각했던 지푸라기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가라앉고 없다. 아. 어쩌면 지푸라기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빠져죽지 않으려면 ‘거기 무언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최소한 영영 불행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그 무엇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건 돈이기도 했고, 집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방황과 사랑이기도 했다. 하지만 뒤늦게 돌아다보면.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바다가운데 홀로 놓여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매일을 눈앞에 있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사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 보면 ‘부지런히 헤엄쳐오는 것으로’ 비쳐 보인다. 그저 죽기 싫어서 글을 썼을 뿐인데. 나중에는 운명적인 노력으로까지 여겨졌다. 마치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결국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게 되리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떠나기 전의 서연이는 내게 ‘인생을 너무 짧게 본다’고 말했다. 당장 오늘, 당장 내일, 당장 다음주……. 그런데 서연아, 그거 아니, 누군가에게는 매일 매일이 결과라는 것을. 오늘마다 사랑할 존재를 찾아야 겨우 살 수 있는, 가여운 하루살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