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12월 8일.
긴장할 일이 생기면 깊게 잠들질 못한다. 약을 먹고서도 그렇다. 요즈음 들어 은행은 아홉 시 반에 문을 연다고 했다. 지나치게 일찍 일어난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열시 쯤 여유롭게 출발했다.
예전에 보증금 대출을 받았던 은행창구였다. 내 대출업무를 담당해주셨던 은행원은 차장님이셨다. 기왕이면 직급이 높은 분께 상담을 받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생각과 비슷하게 돼서 다행스러웠다. 지점은 위치가 바뀌었지만 사람은 그대로였다.
나는 일단 뽑아올 수 있는 서류를 몽땅 뽑아 갔다. 종합소득세 신고서, 소득금액증명원, 위촉 증명서, 보험료 완납 확인서 등등. 내 소득을 증명하는데 도움이 될 만 한 건 죄다 출력해뒀다. 차장님은 내 서류를 한 번 쭉 훑더니, 이게 한도가 나올지 모르겠네, 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대출 자체는 가능하다’는 말처럼 들려서, 살짝 안심했다.
결정적인 단서는 건강보험료였다. 나는 직장을 나와 지역가입자로 전환됐는데, 그 보험료를 내 수입에 비해 무척 많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보험료는 왜 이렇게 많이 낸 거에요?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은데.” 차장님은 뭔가 재밌다는 듯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내라는 대로 낸 거라.” 말하는 나도 어이가 없었다. 보험료가 그렇게 산정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거니 했던 것이다. 한참 전에 자동이체로 등록해놓고서는 내는 돈이 늘었는지 줄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나는 보험료를 생각도 없이 내온 덕분에 프리랜서지만 꽤 높은 소득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고, 한도도 생각보다 높게 책정됐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대출은 아마 승인이 될 것 같고요.” 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등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다만 일단은 서류를 정식으로 결재해야하니까, 지금은 돌아가시고 나중에 따로 연락을 드리겠노라고 했다.
은행을 걸어 나오면서 불쑥 배가 고파졌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마침 마라탕집이 열려있었다. 서연이와 자주 갔던 곳이다. 나는 배추와 청경채, 양파와 옥수수면을 잔뜩 넣고 온면처럼 먹는 걸 즐겼다. 배가 고프다 싶으면 밥까지 말아먹었는데. 둘이서 먹던 걸 혼자 다 먹자니 양이 참 많게 느껴졌다.
가게에는 나 말고 사람이 없었다. 생각 없이 국물을 몇 스푼 떠마시던 참에 전화가 왔다. 은행이었다. 대출이 승인됐으며, 언제든 시간 날 때 약정서류를 작성하러 내방하라는 소식이었다. 오후에 바로 가겠다고 했다. 한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 어차피 빌리는 돈이고,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갚는 거긴 하지만.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를 찾아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놓였다. 이래서 주거래 은행이 중요하구나. 신용카드고 나발이고 다 이 쪽으로 터를 옮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탕 국물을 쭉 들이켰다. 고춧가루 비슷한 게 목구멍에 걸려서 몇 분은 고생했다.
오랜만에 구색을 갖춘 식사를 하자니 기분이 생경했다. 은행에 다시 들러 서류 몇 장에 서명했다. 집에 돌아오니 뭔가 허무했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서연이와 함께 다닐 때에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물론 그 때는 프리랜서라고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당시의 나는 회사가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인대표로 있었다. 폐업신고를 하지 않아서였다. 직장에 가입은 돼있는데 수입은 없는, 참 괴상한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어찌저찌 대출을 받아 이사를 왔다. 그 땐 같이 살기 위해 대출을 했지만, 지금은 따로 살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 현기증이 나서 항우울제를 챙겨먹었다.
그렇게 약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문제를 글로 옮겨 적는 것이 얼마나 까다롭고 부끄러운 일인지 알고 있지만, 이것만 쏙 빼놓고 쓰는 것은 더 비겁한 일 같다. 요는 이렇다. 서연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늘 아침 자신이 익명 계정으로부터 장문의 메시지를 하나 받았는데, 그 내용인즉 ‘당신은 왜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글을 쓰도록 내버려두느냐, 그도 몇 번의 외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의 잘못은 빼놓고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랑 눈 맞아 본인은 피해자인양 글을 쓰는 것이 무척 실망스럽다. 혹시라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걸 느끼지 않길 바란다’ 는 것이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황스러움을 넘어 절망감이 일었다. 서연이로서는 이것이 대단한 문제라고 느껴서라기보다는, ‘네가 이러한 오해를 사고 있는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언질을 준 것이었지만. 대체 누가, 어떤 의도로 그런 메시지를 보냈는지 알 수 없으니 혼란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나야 올해 들어 독서모임이다 뭐다해서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기는 했다. 거기서 누군가에게 책잡힐만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느냐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 의도와 달리 누군가는 실망할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할 건 뭐란 말인가? 대체 뭘 위해서?
이 일련의 글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글쓴이 자신을 비호하고 떠나간 여자친구를 힐책하는 내용’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도 적이 충격적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런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혹시라도 그렇게 느껴질까 봐서, 솔직한 감정을 담되 최대한 조심스럽게 쓰려고 노력해왔다.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의사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겨우 비난이나 할 셈이었다면 이렇게 길게 쓸 필요도 없지 않은가.
나는 내가 겪는 괴로움을 마주하기 위해 쓰고 있었고, 그 괴로움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나의 결함과 모자람으로부터 말미암았다. 죄책감을 주려고 한 대상이 있다면 서연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그런데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완전히 반대로 전달됐다.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써봐야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지만, 의도 없이 글을 쓰는 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는 무력하다. 내가 쓰는 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정말이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 쓰는 일밖에 없다.
서연이는 내게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쓰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지만, 도저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울고 말았다. 나는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외로워서 다가가면 여지없이 찔러 피를 내고야 만다. 내가 가진 불안정성, 애정결핍, 강박적인 생각들이 모두를 지치게 한다. 어쩜 나는 정말로 서연이를 비난하기 위해 글을 쓴 건지 모른다. 절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사람들을 홀려서, 무의식중에 나 자신을 비극적인 순례자로서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당신은 이것이 더없이 추하고 비관적이며, 비겁한데다 모순적이기까지 한 인간의 참회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이별에는 이유가 있다. 서연이가 나를 떠난 이유는, 내가 나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와도 다르지 않다. 오늘의 나는 무얼 빌리며 살아가고 있나.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