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이별에 관한 기록 (21)

12월 11일.

by 이묵돌

12월 11일.


서연이는 한 시쯤 출발한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보다 조금 전에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분리수거 쓰레기를 내다버렸다. 그리고 전날 미처 옮기지 못한 정기이체품목들 때문에 전화를 돌리고 있었는데, 별안간 현관 비밀번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이 기묘했다. 분명 이 년 동안이나 동거동락 했던 사람인데, 불과 보름쯤 집을 비웠다고 해서 아주 이질적인 일인 양 느껴졌다. 나는 얼굴을 보지 않고도 이별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서연이의 인사는 아주 자연스러웠고, 거기에 흠칫 놀라는 내 쪽이 더 이상해보였다. 서연이는 지난번에 들고 나간 캐리어가방과 함께 우체국에서 살 수 있는 가장 큰 박스 다섯 개 정도를 가져왔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짐을 다 옮기기에는 부족해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너는 어느 쪽이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할 테니까.


이 날 나는 한 시 반에 마지막 화상상담을 받기로 한 참이었는데, 상황이 그리 되니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서연이가 짐 싸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봤을 것이다. 아니, 이것도 저것도 챙겨가야겠지 않느냐고 거들기까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페에서는 앉아있을 수가 없고, 식당은 아무리 화상상담이라도 적당하지 않은 장소였다. 별 수 없이 주차장으로 내려가 상담을 받기로 했다.


차 내부는 간접조명을 켜놓아도 어두운 편이었다. 그래도 상담하는 것 자체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처해있는 상황, 또 그 상황에 구태의연하려는 내 모습 때문인지 상담선생님이 다소 힘들어하셨다. 나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선생님과 상담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몇 배는 더 우울하고 힘들었을 거라고 말했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도 저를 위로하시네요? 상담을 받는 와중에도.” 화면 너머의 선생님이 조금 황당하다는 듯이 말하셨다.


“아, 그런 건 아니었고요. 저는 그냥…….” 나는 선생님께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필사적으로 생각해내려 애썼다. “제가 선생님을 위로할 입장은 아니니까요. 저는 피상담자이고…… 다만 상담은 선생님이랑 제가 같이 하는 거잖아요. 단순히 제 상황이 좋지 않을 뿐인데, 선생님과의 상담이 전혀 의미가 없이 느껴지실까 봐서요. 저는 정말 많이 도움을 받고 있는데, 그걸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마저도 위로로 느껴져 슬프다고 하셨다. 이게 마지막 회차라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현빈씨가 진심으로 괜찮아지실 수 있길 바라겠다고도 하셨다. 타인이지만, 비록 화면 너머로밖에 할 수 없는 위로이지만. 그런 것들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고, 그 많은 점들이 이어져 답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상담이 끝났다.


상담이 있었던 한 시간 동안 서연이는 짐을 꽤 챙겨놓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약속대로 밥을 먹기로 하고, 한 때 자주 갔던 한식당을 찾아 점심식사를 했다. 그곳은 서연이가 내가 사는 동네에 찾아왔을 때, 제일 처음으로 함께 갔던 식당이었다. 이걸 서연이 역시 기억하고 있을까. 입 밖으로 내 묻진 않았다. 어떤 대답이 돌아오더라도 슬플 것 같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일단 수원에 방을 잡아 자취를 할 생각이고, 한동안은 부모님 회사를 다니며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아, 연락하고 있었던 사람은.” 서연이는 조금 머뭇거리는 투였다. “……지금 좋은 감정으로 잘 만나고 있어. 그냥 그렇다고.”


“……무슨 연예인 열애설 해명하는 것 같네. ‘좋은 감정으로 만나는 중’이라니.” 나도 모르게 비아냥대는 뉘앙스로 말했다. 그렇게 까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반사적으로 그런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런 얘길 나한테 하는 이유는 뭐야? 굳이.”


“그야 네가 궁금해 할 것 같아서. 궁금하잖아? 솔직히.”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당연히 궁금했다. 어떻게 사는지, 어떤 감정으로 사는지, 가끔씩 내 생각이 나기는 하는지 궁금했다.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지만 만족스러운 답변은 없었다. 나는 이제 남자친구도 아니고, 본인은 그런 것에 대해 상세히 대답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서연이의 상황도 십분 이해가 갔다. 내게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꾸를 하는 것이, 지금 만난다는 사람에 대한 모종의 배신 같을지 모른다.


밥을 먹고 커피를 사서 집으로 올라갔다. 그건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일상적으로 반복하던 패턴이었는데, 늘 했던 그대로 하고 있자니 ‘사실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게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돌아와서는 좀 더 현실적인 얘기들을 나눴다. 서연이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보증금이며 계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서연이가 물었다.


“……나는, 차는 가질 수가 없어.”


“어째서?”


“지금으로선 할부금도 부담스럽고, 어차피 네 명의로 되어 있잖아. 선수금도 네가 냈고. 나는 그냥 보험에 껴있을 뿐이니까…… 뭣보다 임대료가 싼 공공임대주택 같은 걸 알아봤는데, 나한테는 그 차가 있어선 안 되겠더라고. 차량단가가 기준보다 높아서 선발 가능성이 확 떨어져.”


“음,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그리고.” 나는 미리 생각해뒀던 말을 고스란히 이어갔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초연한 서연이의 태도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알다시피 이 집의 보증금도 절반은 네 거야. 그런데 나는 코로나 때문에 최근 수입이 뚝 떨어졌고, 당장에 월세며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에도 위태로운 상황이거든. 이거야 너도 알겠지만.”


“응.”


“그래서 며칠 전에는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어. 생각보다 좋은 조건에 받아서 한숨 돌리긴 했는데…… 최소한 내년 오월까지는 이 집에 계속 머물러야하는 상황이고, 그 때까지의 지갑사정이 어떻게 될지도 지금으로선 미지수야. 때문에 네가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보증금과 나머지 목돈은 시간을 좀 두고 꾸준히 갚으면 어떨까.”


“그래. 나야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갚아도 돼.”


“……그래?” 나는 맥이 빠졌다. 돈이 한두 푼도 아니고. 꽤 되는 돈이다 보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건데. 너무 대답이 금방 튀어나오니까 이게 진지한 답변이 맞나 의심되기까지 했다. “그럼 가구는? 큰 가구들 몇 개도 우리가 같이 산 거잖아.”


“아, 가구는……” 서연이는 주위를 빙 둘러보면서 말했다. “글쎄. 책상하고 의자 정도?”


“정말 그거면 돼? 꽤 비싸게 주고 샀잖아.”


“그리고 저기 저 캐비넷.” 서연이가 말함과 동시에 가리킨 것은, 일 년쯤 전에 이케아에서 사서 조립한 철제 캐비넷이었다. 오만 원인가 육만 원 정도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싼 물건은 아니어도, 소파나 테이블처럼 비싼 가구와 비교할 만 한 건 못됐다.


“그걸로 끝이야? 나중에 말 바꾸는 거 아냐?”


“아냐. 그리고 솔직히 지금은 뭘 가져가야할지도 잘 몰라. 정확히 언제 이사 갈 지도 모르고…… 건물이 리모델링 중이거든. 그래서 집안 구조가 어떤지도 감을 못 잡고 있어.”


“그럼 이사 갈 때쯤 해서 얘기해. 그 때 돼서 필요한 게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럼 그 때 얘기할 게. 딱히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아, 이 스피커는 어때? 줄 수 있어?”


“아, 스피커…….” 이 집에 입주하면서 함께 샀던 블루투스 스피커였다. 보스라는 곳에서 만든 제품이었는데, 서연이는 이 회사에서 내는 사운드를 유달리 좋아했다. 그래서 자동차도 보스 카오디오가 지원되는 것으로 계약했었다. “근데 그건, 나도 워낙에 자주 쓰기는 해서…….”


“그럼 다음에 올 때까지 얘기해줘. 줄 수 있을지 없을지.”


“그래.” 나는 반쯤 줄 생각으로 서 있다가 대답했다. 한두 달 정도 더 빌려 쓴다고 생각하자. 음악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좀 더 필요하지 않은가. 딱히 이보다 더 좋은 제품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돈은, 정말 나중에 갚아도 괜찮은 거야? 너도 급한데 나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면…….”


“급한 건 없어. 내년 중에 베스트셀러 한 권 내면 일시불로 갚든지…….”


“아, 그거야.” 별로 자신은 없었다. 베스트셀러가 어디 마음먹는다고 내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말은 해야 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지. 차용증이라도 써줄까?”


서연이는 그러라고 말했다. 이제 보면 우리는 가장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고, 가장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곤 했다. 나로선 그런 걸 쉽게 받아들이는 일이 제일 어려웠지만. “아. 엄마한테 전화 왔었어. 엄마도 마음이 좋진 않으신가봐. 너한테 그동안 고마웠다고 전해달라셨어.”


“……어머니가 고마우실 게 뭐가 있어. 나는 받기만 했는데.”


“워낙 정이 많으셔서 그렇지.” 서연이는 화장실에 있던 제 물건을 다 챙겨 나왔다.


그 뒤로 나는 가만히 있기가 난처했다. 단순히 말을 이어가긴 분위기가 어색했고, 뭘 도와주려니 한사코 거절을 놓았다. 서연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보려는 듯 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도와준 건 캐리어 가방을 지하주차장으로 옮겨주는 일밖에 없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끝까지.” 서연이가 말했다.


“그럼, 나는 가볼게.” 그렇게 대꾸하긴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다가 끝내 말을 이었다. “서연아,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뭔데?”


“가기 전에 악수 한 번 해줄 수 있어?”


서연이는 내 눈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오른손을 내밀어보였다.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손이었다. “고마웠어. 그동안.”


“……나도 그래. 잘 가.” 나는 다소 먹먹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울고싶지 않았다.


그 날 저녁에는 일부러 약속을 잡았다. 알고 지내던 형과 만나 역 근처 펍에서 맥주를 몇 잔 마셨다. 많은 얘기들을 즐거이 나눴다. 방역지침으로 인해 아홉 시까지밖에는 있지 못했지만, 깊은 마음을 위해 자주 만날 필요는 없다.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서연이와도 그럴 수 있을까? 겨우 이 년 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살면서 한 번씩은 날 기억해줄까. 아. 그 때. 글 쓰다 죽겠다고 했던 그 친구…….


취기에도 빈 집 현관문을 그리도 기분 좋게 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예전에는 ‘왜 슬플 때 술 같은 걸 마시는 지’ 이해가 통 안됐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습관적으로 이를 닦았다. 불 꺼진 방안에, 내 술냄새를 싫어할 누군가가 잠들어있을지 모른다. 알고 보니 죄다 하룻밤 사이의 악몽일는지도 모른다. 마치 거짓말처럼.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로 “다녀왔어. 늦어서 미안해” 하고 속삭일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왜 이제야 왔냐고 투정 섞인 잠꼬대를 들을지도 모른다. 아, 모든 게 꿈이었다.


비척거리며 방 한 가운데 섰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간접등 하나를 켰다. 아무도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듯이. 창밖으로 오토바이 달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탁자에는 한 달간 빌린 스피커가 놓여있었다. 연결된 휴대폰으로 노래를 한 곡 틀었다. 전주가 나오기 무섭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었다. 노래도, 눈물도, 하염없이 흘러나오기만 했다.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Oh, I believe, in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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