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12월 14일.
오후 세 시에는 알람을 맞춰놓을 필요가 없다.
일어나서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약속을 잡아버린 날에는 더욱이 그렇다. 신림역에서 지인을 만나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날씨는 몹시 추웠고 길거리에는 사람이 뜸했다.
서연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요즘 쓰고 있는 글을 출판할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그런 걸 생각하며 쓰고 있지 않고,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네게 말해주는 건 물론이거니와 상당한 수정을 거쳐야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한편으로 그런 질문에 “아니. 절대 그렇게는 안 해” 하고 딱 잘라말할 수 없는 자신이 역겨웠다. 기획도 근본도 없이 쓴 이런 글에 어떤 출판사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것까지 책으로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돈 때문일 테니까. 슬퍼서 일을 못하게 된다면, 당장의 슬픔이라도 팔아야 한다. 아이러니하다. 나는 그렇게 슬픈 입장에 놓이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다짐도 하지 못한다.
한데 서연이는 왜 이런 질문을 해온 것일까. 새로 만난다는 사람이 내가 글 쓰는 일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아직 내 글을 읽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읽게 됐을 때는 불편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티는 내지 않지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가능한 내 얘기는 쓰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는 얘기였다.
처음에 나는 최근까지 쓴 글에 무언가 불편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서연이는, 딱히 그런 건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배려를 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조심해달라면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겐 그 일련의 대화 자체가 너무도 잔인하게 다가오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지낸다. 억지로나마 밖에 나가보려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도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시간들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어찌됐든 하루의 마지막에는 혼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혼자’와 어떻게 맞서느냐가 이별의 관건이고, 나로서는 글을 쓰는 것으로 감정을 정돈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무렴 누군가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요즈음 나의 정서를 정리하기 위해선 지금의 이별이라는 상황을 설명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나 역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한다. 그런데, 다름 아닌 너와 이별하는데, 어떻게 네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결국은 좀 더 신경써보겠다고 대답했다. 모든 것에 신경 쓰는 게 내 일이니까―반대로 날 신경 쓰는 사람이 한 명 없더라도 말이다.
밤이 될 때까지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집안이 너무 춥다. 이렇다 할 수입이 생기기 전까지는 소비를 줄여야하는데, 몇 주 전부터 봐뒀던 전기난로 생각이 간절해졌다. 더는 견디지 못하고 주문했다. 난로를 사는데 쓴 비용만큼 난방을 덜 땔 수 있다면, 그리 큰 손실도 아닐 거라 합리화하면서.
나도 안다. 그까짓 난로 하나 산다고 해서 온 집이 따뜻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럴 때 필요한 체온은 돈으로도 마음으로도 살 수가 없고, 손발은 여느 때보다도 얼어붙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