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12월 16일.
약속을 잡게 되면, 꼭 약속된 시간 직전까지 아슬아슬한 잠을 잔다. 십 분짜리 잠보다 나의 방자함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다. 나는 약속과의 싸움에서 패배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으려 했다. 못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킬 마음이 없는 자신이 두렵다. 알람을 몇 중으로 걸어놓아도 끄는 건 한 번으로 충분하다. 쌓아올리는 일은 요원하고 무너지는 건 내가 잘하는 일이다. 왜 이런 문장을 써대는 건지도 나는 모르겠다. 의미도 없고, 생각도 없고, 심지어 오늘은 약속도 없다. 약속이 없는 날에 약속에 대해 쓰는 행동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약간의 착란증세일지도 모른다.
오전 일찍 깼는데 허기 때문인 것이 확실했다. 한데 허기는 식욕이 만족되지 못한 상태다. 만일 인간이 잠에서 깨는 이유가 ‘무언가 충족되지 못해서’라면, 해소되지 못한 성욕 때문에 잠에서 깨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성욕을 일종의 소외감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에서의 사람이란 혼자인 게 싫어서 잠들었다가도, 너무나 혼자이기 때문에 일어나버리는 동물이 된다. 조금 웃긴 것 같다. 시리얼을 한 줌 털어먹고 다시 누워잤다.
다시 일어나보니 오후 세 시였다. 나는 요즘 들어 세 시가 싫다. 세 시를 가리키는 시계 모양이 싫다. 분침과 시침이 마치 자음 ‘ㄴ’처럼 보인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화가 치솟는다. 이제 일어날까? ㄴ. 뭔가를 좀 먹을까? 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볼까? ㄴ. 아예 뒈져버리는 건 어떨까? ㄴ. 세 시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세 시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누가 그렇게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그냥 내가 그렇게 정해뒀다고 해두자. 하지만 엄밀히 말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할 수 없다. 예컨대 숨을 쉬지 않는다든가.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고의적으로 숨을 쉬지 않아버리면. 그건 숨 쉬지 않는 일을 해버리는 셈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야하는데. 그건 내가 휘갈겨버리는 것 치곤 아주 고차원적인 문제다. 때문에 누가 나더러 “거짓말 하지마.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니잖아.” 라고 하면 대꾸할 말이 없다. 그건 나라는 인간보다도 구체적인 질문이다.
이렇게 하잘 것 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몹시 피곤하다. 글은 쓰기 싫다(‘글은 쓰기 싫다’는 글도 쓰기 싫다. 정확히 말하면 그 땐 싫었다. 지금이라고 좋은 건 아니지만 그나마 덜 싫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세 시가 훨씬 지났으므로 뭔가를 입에 넣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휴대폰으로 순대와 떡볶이를 시켰다. 약속처럼 삼십 분 내에 전달받았는데, 배달원 아저씨의 얼굴이 도통 기억에 남질 않았다. 어쩌면 아저씨가 아니라 아줌마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말 자체는 중성적이었다.
시킨 음식은 다 먹지도 못했다. 다 먹지도 못할 걸 왜 주문한 걸까? 삶도 그렇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은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시켜놓은 배달음식 같다. 대개의 경우 주문을 본인이 하지도 않았다. 나라고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다. 다들 참고 산다. 이런 시기에 못 참는 내색을 보였다가는 큰 죄가 된다. 여태껏 내가 써온 글들은 거대한 죄의 덩어리라고 해도 무방하다. 죄짓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 때론 글 쓰는 것 자체가 죄가 되기 때문이다.
끝내는 밤을 새고 말았다. 뭐하다가 뜬 눈으로 아침 해를 보았나. 알 수 없다. 명목상으로는(이 경우 눈 목目자를 쓰기 때문에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니다)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그러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는데, 내가 읽었던 책이며 열중했던 게임의 내용이 불분명하게 느껴진다. 피곤해. 피곤해죽겠다. 피곤한데도 나는 약을 먹는다. 졸린 약은 피곤할 때 더 잘 받는 걸까? 피곤하면 졸린 약 같은 걸 먹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런 건 전부 결과론적인 말이다.
나는 모든 결과가 싫다. 잠에서 깨는 것도 결과고, 사람들이 댓글로 쓰는 것도 죄다 결과다. 결과적으로 이 글에도 결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보여줄 수도 없다. 나는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한 결과라는 것을 자신도 모―릅니다. 탄환은 재어놓았습니다. 지금 열두시를 치고 있습니다. 자, 그럼 됐습니다. 로테! 로테!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