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이별에 관한 기록 (28)

12월 18일

by 이묵돌

12월 18일.


그 시간에 깼다. 배에서 아주 요란한 소리가 났다. 별 수 없이 시리얼을 한 줌 집어먹다가, 문득 그냥 먹기가 싫어져서 내팽개쳤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닌데. 어째서 스스로를 배고플 때까지 방치해두는 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학창시절 나는 한 학기 내내 점심식사를 먹지 않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한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마저도 성질이 더러운 애들이랑 같은 반이 돼버리는 바람에…… 나는 학기 초부터 손쉬운 먹잇감으로서 괴롭힘을 당했다. 당혹스러웠다. 중학생 땐 걔네랑 대화한 적도 거의 없었다. 워낙 노는 애들이라 이름 정도나 알고 있었지, 이제 와서 내게 친한척하며 머리를 때리고 돈을 뺏고 하는 것이 영 맥락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맞을 짓을 했나?’하고 진심으로 반성의 시간을 가진 적도 있다. 그 나이 대 친구들에게 맥락을 찾으려했던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순수했던 모양이다.


점심시간 학교식당에서 마주치는 것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그 놈들은 이렇다 할 기별도 없이 와서 욕을 하고 때렸다. 몇 십 명이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식당에서 그런 짓을 당하는 것이 싫었다. 나는 차라리 배가 고픈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리적 허기로 정신적 고통을 짓누르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너는 왜 밥을 안 먹냐?”하고 물으면, 나는 “별로 배가 안 고파서”, 혹은 “요즘 살 빼는 중이야”라고 대답했었다. 다행히 날 괴롭히던 놈들은 학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제 알아서 학교 밖으로 빠져나갔으며, 그 뒤로 좋은 친구들을 몇 명 만난 덕에 남은 학창시절을 나쁘지 않게 지나보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아무튼 그 때부터였다. 대개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을 걸로 해결하는 사람이 많고 대부분의 경우 나도 똑같이 하지만, 정말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나면 밥이고 물이고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말 그대로 식음을 전폐하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배가 고픈 사람은 누구라도 아주 예민해지고,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우울해하게 되니까. 생각할수록 기묘한 습관이다. 안 먹는다고 뭔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여간 그렇게 억지로 끼니를 때우고 나서, 남은 시간은 모두 글쓰기와 책읽기 그리고 게임을 하는데 썼다. 특히 이 날은 게임을 미친 듯이 오래 했다. 그 게임은 서연이와 마지막으로 같이 했던 게임의 후속작이었는데, 꽤 오래전에 사놓고 깜빡 잊고 있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같이 하기로 약속했었는데…… 혼자서 꿋꿋이 게임을 하고 있으려니 자꾸 눈물이 났다.


―서연아, 이 게임은 퀘스트가 끝이 없어. 대체 언제가 돼서 끝나는 걸까. 끝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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