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12월 21일.
오후 한 시였다.
출판사로부터 온 연락에 답변했다. 별 것도 없는 답장이었는데. 나중에 보내야지, 나중에 보내야지, 하다가 결국 메일 답변이 늦었다. 업무상 메일에 있어 좋은 답변은 빠른 답변이기도 하다.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 요즘이다. 간혹 가다간 내가 생각하는 반대로만 일들이 벌어진다는 기분마저 든다
게임 시나리오 외주를 받기로 결정을 굳혔다. 사실 결정 자체는 오래전에 돼있었고, 계약서 초안도 받아 서명만 하면 될 일이었다. 찾아가기 적당한 날짜를 찾다가 결국 한 주를 훌쩍 넘겼다. 이튿날 오후 한 시에 사당에 있는 사무실에 방문하기로 했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게임 시나리오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출판업계 자체는 작가들의 편의를 무척 잘 봐주는 편이었다.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책을 내는 것보다도 좀 더 협력적인 자세가 필요한 일이다. 글을 쓰는 것이야 문제가 아니지만(직업이니까), 나의 구상을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틀 만에 온 평일인 만큼 많은 일을 처리해두고 싶었다. 오랜만의 집청소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손도 대지 못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청소를 하다보면 흔적이 나온다. 같은 공간 속에서 서로가 어떻게 살아왔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 꼼짝없이 혼자 놓였음을 깨닫게 된다. 고통을 예상할수록 기회는 미뤄진다. 마치 전이되는 암세포를 몸속에 두고, 수술이 두려워 차일피일 날짜를 미루는 환자 같다.
다음날 미팅을 생각해 휴대폰 알람을 삼중으로 걸어놓았다. 오늘도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이 날 밤에도 약을 두 알 먹었다. 작은 그릇에 많은 슬픔이 쏟아진다. 모두 담아낼 도리가 없어 잠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