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이별에 관한 기록 (33)

12월 23일

by 이묵돌

12월 23일.


그 날은 성수에서 점심 약속이 있었다. 열한 시 반을 넘긴 시각에 겨우 일어났다. 부랴부랴 차를 타고 출발했다. 하루가 시작부터 다소 꼬였다. 계획대로라면 가던 길에 우체국을 들를 예정이었지만, 기왕지사 늦기도 했고 오늘 내로 부치기만 하면 될 것 같아서 그대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자체는 잘 마무리 했다. 사람과의 대화가 얼마나 고팠던지, 서너 시간이나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해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오후 다섯 시가 다 됐다. 나는 돌아가는 길에 택배도 보내야하고, 이보다 늦게 출발하면 집 가는 길이 무지막지하게 막힐 것 같으니 그쯤해서 작별인사를 드렸다.


이쯤에서 내가 우체국에 가야했던 이유를 설명해야겠다. 지난 주중에 주문이 들어왔다. 실은 코로나가 창궐하고 나서, 더욱이 협업 관계가 어그러지고 나서는 좀처럼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업로드는 하되 글이나 그림이 팔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연이가 ‘그림 주문이 들어왔으니 빠른 시일 내에 보내달라’며 메시지를 보내왔을 땐 상당히 의외로까지 느껴졌다.


그 연락을 받았을 때가 금요일이었다. 나는 그게 아주 시급한 일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느긋하게 그림을 포장하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우체국에 갔다오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월요일이 되고 보니 주문내용 자체가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하긴 가끔씩 주문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구태여 서연이에게 주문이 취소됐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이젠 나와 대화하는 것을 내켜하지도 않거니와, 취소됐다는 소식이 딱히 좋은 내용도 아니니까.


하지만 취소된 줄 알았던 주문은 배송이 지연돼서 주문 건에 표시가 안 됐을 뿐이었고, 그래서 재차 확인한 다음 물건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명백한 착오였다. 한 번만 더 들여다봤어도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보내자고 생각했다.


한편 약속장소에서 가장 가까웠던 뚝섬 우체국은, 문 닫는 시간에 즈음해 우편물을 보내러 온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 아니, 그건 단순히 ‘붐볐다’고만 말해둘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살면서 봐온 관공서 건물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번호표 뽑는 기계는 대기인수를 오십 명 이상으로 표시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정문 바깥 도로 옆구리까지 늘어서서 그보다 많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협소한 우체국 내부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과 우편물들이 쏟아졌다. 쉴 틈 없이 업무를 보고 있는 창구직원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그 우체국에 무인우편접수기가 한 대 놓여 있었다는 건데, 다섯 건 이하 소량 우편물은 그쪽으로 보내는 것이 빨랐다. 물론 거기에도 대기 줄이 있긴 했지만 어림잡아 열댓 명뿐이라서, 우체국 바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빨라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삼십 분 정도를 기다렸다. 아주 느리긴 해도 줄이 줄어들고는 있었다.


문제는 내 앞의 앞의 앞 사람이 일을 볼 때 발생했다. 갑자기 카드 거래가 안 먹히더니, 몇 분 뒤에는 기계가 아예 먹통이 돼버린 것이다. 때마침 기계 앞에 서있던 사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뒤에 서있던 사람들도 문제를 직감하자마자 긴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우체국 직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바빴으므로, 곧장 고장 난 기계를 살펴줄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 직원 두 명 정도가 와서 기계를 몇 차례 재부팅했으나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무인우편접수기가 다시금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을 땐, 이미 여섯시가 다 돼 우체국 문을 닫아야 할 무렵이었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 내 차례가 됐는데……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접수를 못했다. 무인으로 접수 가능한 우편보다 사이즈가 몇 센티미터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황망하게 우체국을 나왔다. 네비로 집 가는 길을 찍어보니 한 시간 반이 소요된다고 나왔다. 길을 표시하는 색이 죄다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이런 상황이 낯부끄럽긴 했다. 그래도 보고는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메시지를 보냈다. 뒤늦게 우체국에 갔는데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접수를 못했다고, 내일 접수를 하거나 밤늦게 수령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면 퀵으로나마 보내겠다고 했다. 그야 일반택배보다는 몇 배 비싸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잘못인데. 어떻게든 이 상황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주문자 분께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나는 늦어서 정말 죄송하다고, 제가 실수한 거라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더 늦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보내드리는 게 낫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다행히 ‘쭉 집에 있을 예정이니까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서연이로선 자신이 그렇게 얘길 해뒀는데도 배송이 늦어졌다는 것에 화가 났으며, 그 이후에 내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일찍 일찍 보냈으면 될 걸 전화까지 걸어서 퀵으로 보낸다고 하고, 이거야 서로 불편한 결과가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나는 거기다대고, ‘내가 실수한 거니까 사비를 들여서라도 빨리 보내드리고 싶었다, 이 상황 자체가 네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지만, 내 나름대로는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한 것이다’는 조의 말을 했다. 서연이는 그런 말부터가 지긋지긋하다고, 또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흘러간다고, 너는 왜 항상 억울 하느냐고 받아쳤다. 난 텍스트로 더 이야기해보아야 오해밖에 생기지 않을 것 같아서, 짧게라도 잘 이야기를 해볼 요량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지금은 가족들과 차로 이동 중인데다가, 너와는 통화를 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이 상황자체가 싫고 더 대화하기도 싫다고 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이젠 내가 정말 지긋지긋해서 말 한 마디 주고받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나도 그쯤이야 알고 있었다. 때문에 되도록 쓸데없는 연락을 하지 않도록 애썼다. 이번에 연락한 것 역시 같이 해왔던 일이니까, 마무리를 보아야하는 일이니까 부득이하게 한 것뿐이다. 반면 서연이는 크든 작든 나에 관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 나아가 감정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 자체를 극도로 기피하는 듯했다.


나로선 그런 태도가 부당하게 느껴졌다. 헤어지는 마당에 이것저것 다 싫을 수야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 이별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할 일들이 있다. 어떻게 아무런 감정적 소요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단 말인가. 제발 날 떠나지 말아달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해달라고, 그런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여느 실연당한 사람처럼 술 먹고 새벽에 전화하는 일도 없었다. 딴에 혼자서 극복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썼다. 연락은 해야 하니까 했을 뿐이다.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락마저 거추장스럽고 짜증스럽다’는 그녀의 뉘앙스가, 내게는 아예 나가 죽으라고…… 언젠가 아물 거라고 여기던 상처를 잡아 찢는 고통처럼 닥쳐왔다. 심지어 이 사람은 내가 파멸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차라리 그랬다면 한 때 사랑했던 만큼 보복해오는 것이고, 죽도록 힘들지언정 어렵사리 받아들일 순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말들에는 그 어떤 미움도, 복수심도,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염증…… 그저 내게 관심을 끄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나라는 인간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무너져 내리는 감정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날 대하느니 차라리 죽으라고 말하지 그러냐고 했다. 그러자 곧 ‘그런 것으로 협박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겠지. 네겐 나의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 없겠지. 정말로 죽어버렸을 때의 죄책감까지는 견딜 수 없을 테니까. 내가 어떤 잘못을 덮어씌운들, 그게 반드시 죽어 마땅한 죄라고는 할 수 없을 테니까. 반대로 말하면 넌 내가 죽지만 않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살아만 있으면.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원래 마음이야 왔다갔다 하는 것 아니겠냐고, 그런 것도 다 기나긴 삶의 과정이 아니겠냐고 얼마든지 합리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어버리면 모든 게 끝이다.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면 며칠 슬프다 말겠지만, 이걸로 자살이라도 해버리는 경우에는 그걸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땐 지금 쓰는 글이 유서가 될 텐데, 그 땐 이 모든 것들을 지독한 협박장이라고 우길 셈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난 협박 같은 걸 할 생각이 없다. 나는 살고 싶다. 단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읽고, 음식과 약을 먹고, 일부러 밖에 나가 사람들과 대화도 한다. 나는 노력한다. 내가 죽지 않길 바라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내가 죽고 싶지 않았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계속해서 살아가는 건 너무도 슬픈 일이지만, 이토록 무쓸모한 나조차 살길 바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협박이란 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나는 너처럼 가족도 없고, 새롭게 사귀는 사람도 없고, 결정할 수 있는 거라곤 다음에 무슨 책을 읽을 지와 어떤 문장을 쓸지 정도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네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난 죽을 거야’ 같은 말을 할 만큼 나는 멍청하지 않다. ‘지금 네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내겐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 그러니 그렇게만 하지 말아 달라’는 것뿐이었다.


애초에 ‘나는 죽을지도 몰라요……’ 따위의 말이 협박이 될 수 있을는지도 의문이다. 죽고 나면 협박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라는 인간이 싫증났다고 해서, 함께 지나보낸 시간을 모두 부정하고,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않으려는 것…… 그런 일만은 피해달라는 것이 너는 협박이라고…… 난 그저 절벽에서 떠밀지 말아달라고 호소한 것뿐인데.


꽉 막힌 퇴근길,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나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날 둘러싼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초점을 뚜렷하게, 정신을 똑바르게 하려면 할수록.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 가눌 데가 없어 글을 썼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알고는 있었지만. 글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글은 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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