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12월 26일.
정오에 일어났다. 나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왔다.
아직까지 약을 남용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소 의존하는 경향은 있지만, 필요치 않을 때 복약을 하는 경우는 없다. 내성이 조금 생기긴 했어도 두 알까지는 충분히 정상적인 범주다.
그러나 최근 며칠 동안은 잠을 자고 있는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를 혼동하는 경우가 잦다. 깨어있을 때의 기억, 불과 어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 날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바깥에 나가 밥까지 먹고 있었는데 잠에서 깼다. 그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생생했는지 좀체 꿈같지가 않았다. 나는 심지어 꿈속에서의 식사로 포만감까지 느꼈던 것이다.
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처음에 나는 나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리하기 위해,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리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목적들이 아주 사라지거나 변해버렸다고는 할 수 없겠다.
다만 지금으로선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돼버렸다. 어제, 이틀 전, 사흘 전, 일주일전, 한 달 전에 있었던 일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없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뭘 써서 남기는 일이 무척 실존적인 요소가 됐다.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으니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느 날 내 이름으로 된 글이 전혀 올라오지 않을 때가 되면 ‘이 사람이 결국 죽었구나……' 하고 생각해주어도 좋다. 그것은 나의 실제 생사여부를 막론하고 일부분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결국 ‘죽은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내가 글조차 쓰지 않는 매일 매일을 사느니 차라리 죽은 사람으로 취급되는 쪽이 낫다. 믿어주길 바란다.
저녁에는 역 근처까지 사람을 만나러 갔다 왔다.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판단하기가 무척 혼란스럽다는 점을 기록해둔다. 봉투에 있던 약이 바닥나 찬장에서 한 통을 새로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