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습작

백여든여섯번째

by 이묵돌

주황색 택시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드론을 통한 맥딜리버리가 상용화 될 무렵의 일이다. 인류의 기술적 발전은 한동안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어느덧 아이폰 뒷면에는 카메라 렌즈가 스무 개 넘게 부착돼 나왔고, 삼성은 그보다 한두 개 더 붙인 신제품을 발표했다. 이 눈부신 문명의 약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실상 소행성 충돌이나 외계인의 침략밖에 없어보였다.


그렇게 인간이 지구를 완전히 통제하게 됐다고,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고도로 발전한 개미집단이 어디서 처음 발견되었는지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로부터 인류가 최초의 위협을 감지하게 된 것이 대규모의 조직적 ‘식량침탈’이었다는 점은 학계의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이 개미들은 이전의 우리가 알고 있던 개미와 차원이 다릅니다. 아예 다른 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요…….” 뉴스에선 연일 개미떼 출몰에 관한 속보가 잇따랐다. 한 곤충학 박사는 아나운서와의 인터뷰에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새로운 개미떼들의 식량 탈취가 매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개미 수조마리가 전국에 있는 대형마트체인, 유통허브, 식자재마트에 침입했어요.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은 단순히 인간이 먹는 음식 전반이 도둑맞았다는 점이 아닙니다. 순전히 조직적인 움직임으로서 우리를 침략해왔다는 점이죠…… 땅 속에 숨어있던 이 개미들은 우리들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생물입니다. 인류가 모르는 지하 세계에 지금쯤 초거대 개미왕국이 건설돼있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개미왕국의 통치자는 이렇게 결정했을 수도 있죠. ‘우리들은 충분할 만큼 발전했고, 인간은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야. 지상으로 나가서 그들 문명을 빼앗고 식민지로 만들어야겠어’ 라고요. 이건 인류와 개미사회의 전쟁입니다. 단순한 생물종끼리의 전쟁이 아니라, 전례 없었던 문명의 충돌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박사의 말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인간이 그 개미떼의 등장을 본격적인 ‘전쟁’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일이 필요했다.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살충제를 사용했다. 그러나 개미들은 금방 인간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돌연변이를 탄생시켰다. 약국에서 파는 살충제는 아예 통하지 않았고, 지독한 농약을 넘어 고엽제 수준의 독극물을 풀어야만 간신히 진압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인간들에게도 치명적이었으므로, 머지않아 다른 대응방법을 개발해야 했다.


약품 다음으로 각광받은 것은 전기였다. 인간이 알기로 거의 모든 생물에게는 전기에 대한 내성이 없고, 개미 역시 그랬다. 모든 기반시설에 전류가 흐르게 되기까지는 몇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개미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영악한 개미들은 ‘어디서 전기가 발생하는지’를 파악한 듯했다. 발전소는 곧 수십조마리에 달하는 개미떼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원료공급이 중단되자 거점도시들의 전력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윽고 정부는 각 가구마다 사용가능한 전력의 양을 제한했다. 전등은 횃불과 양초로 하나둘 대체됐고, 주거지역에 있는 가로등 대부분이 꺼졌다. 한밤중에도 밝았던 중심가들도 깜깜해졌다. 사람들은 해가 지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가서, 날이 밝을 때까지는 밖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인류가 천 년 넘게 점유하고 있던 밤을 고작 개미 따위가 빼앗아버린 것이다. 안이한 대처로 일관하던 인간들은 비로소 전쟁을 실감했다. 인류는 유사 이래 최초로 다른 종에게 공격받고 있었다. 그 공격은 매우 조직적이고 계획적이어서, 마치 벌레만한 크기의 자신들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인류가 가진 모든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하여 하루빨리 개미왕국을 절멸 시킨다’는 목적에 동의했다. 세계 어디에도 개미로부터 공격받지 않은 곳이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문명의 퇴보는 말할 것도 없고, 인류 전체가 개미의 노예로 전락하는 시나리오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


특정 생물종에 대해, 당시의 인류가 느꼈던 무한한 악의와 분노는 실로 전례 없는 것이었다. 인간이 가진 모든 것들이 개미와의 전쟁에 동원됐다. 현역 군인은 물론 예비군과 심지어 민방위까지, 멀쩡한 땅을 파헤쳐 개미들의 식민지를 불태웠다. 공장에서는 개미를 밟아죽이기 위한 전차를 생산했고, 학교에서는 생물학과 화학이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부상했으며, 연구원들은 바이러스와 백신 대신 개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석결과는 놀라웠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개미떼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땅속 깊은 곳에 제국을 세운 뒤 무수한 여왕개미를 거느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여왕개미들은 오직 일개미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죽을 때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유충을 낳는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땅속 탐사가 끝날 때까지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일 초에 대략 수천억 마리의 개미들이 태어나고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부화장이 아니라 군수공장이었다. 개미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을 공격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온 듯했다.


인류는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상상도 못했던 대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개미의 천적인 개미핥기, 끈끈이주걱, 나아가 바퀴벌레를 양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어떤 사람은 아주 깊은 구멍을 뚫어 지하에 핵폭탄을 터트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구를 개미들에게 내줄 바에야 차라리 작살을 내버리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중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것은 개미의 천적을 만들어낸다는 발상이었다. 어떤 아이디어들은 실제로 개발돼 응용해보기도 했지만 모두 실험 단계에서 좌절됐다. 개미의 천적으로 알려진 그 어떤 동물이나 곤충도 개미들의 ‘제국’과 대결할 힘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지금 인간도 못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인간은 개미들의 가장 강력한 천적을 하나 남겨뒀다. 그건 개미핥기도, 잠자리도, 바퀴벌레도 아니고, 우리들 인간도 아니었다.


“그건 개미입니다.” 비상대책위원회의 단상에 올라선 세계적 석학의 말이었다. “개미의 가장 큰 천적은 다른 종의 개미입니다. 그건 개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련히 알고들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개미를 이용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겁니까? 지금은 인류의 존망이 걸린 상태인데요!” 모 국가의 대표로 나온 의원 한 명이 따지고 들었다.


“물론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개미들은 다른 종은 물론이고, 그저 다른 콜로니에 있는 개미들과도 쉬지 않고 전쟁을 벌이는 생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랬습니다’. 과거의 인류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계속했기 때문에, 고등생물을 위협할만한 사회규모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오늘날의 개미들은 하나의 통일된 왕국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지도층의 지배구조가 지구상의 모든 개미들을 통솔하고 있는 거죠. 더 이상 개미들은 개미들끼리 싸우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통일된 개미사회는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유기적이고 위협적입니다. 아시다시피 개미사회는 철저하게 계급이 나눠져 있죠. 개미들은 사람처럼 자기 일에 의문을 가지거나 불평하는 일이 없습니다. 일개미들은 죽을 때까지 일만 하기 위해 태어났고, 병정개미는 그저 싸우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여왕개미는 마지막순간까지도 유충을 낳다가 죽어요. 맹목적으로 자신들의 숙명을 받아들입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통일된 개미사회의 한 개체, 한 개체가 이제 ‘지능’이라고 불릴만한 것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개미들이 독자적인 언어체계를 구축했다는 사실도 밝혀졌고요. 페로몬만을 따라가는 기계적 생물체가 아니라, 인간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고등생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


“그럼,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겁니까? 지금 말씀은…….” 의원 대표가 단상을 향해 질문했다.


“중대한 상황인 만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 회의장에 있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건물 모서리 곳곳에 형형색색의 개미들이 들끓었다.

침울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이때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분명 개미제국의 몰락에 기여한 바가 있었다. 비대위가 있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전무후무한 성능의 개미약이 출시된 것이다. ‘디시플린’이라 이름 붙여진 이 개미약은 전 세계에 있는 공장에서 십억 개 가까이 생산됐다. 사용방법도 몹시 간단했는데, 그냥 개미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에 붙여놓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렇게만 해놓으면 개미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나아가 근처에 있는 개미사회, 식민지들이 알아서 자멸하기 시작했다. 보름이 지나면 반경 일 킬로미터 안에 있는 개미들 중 구할 이상이 구제됐다.


‘디시플린’은 그 놀라운 성능도 성능이지만, 그 확실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그 어떤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인류는 몇 백 년 전부터 거기에 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인류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아서 원래의 문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도시에 전력이 공급됐다. 정체돼있던 기술은 다시금 발전을 거듭했고, 애플은 뒷면에 카메라가 서른 개 달린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삼성은 꼭 서른두 개의 카메라가 달린 제품을 뒤이어 내놓았다. 맥도날드에 이어 버거킹까지 드론을 통한 배달서비스를 개시했다.


한편 디시플린을 개발해 인류의 구세주로 등극한 인물은 독일태생의 한 경제학자였는데, 그 전무후무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화학상과 평화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듬해 편찬된 새 역사교과서에는 개미제국의 침략과 디시플린의 개발이 인류의 주요 사건으로 기록됐다. 어떤 저명한 역사학자는 ‘인류가 처했던 가장 어려운 시련을 가장 간단한 해결책으로 극복한 사례’로 디시플린의 발명을 꼽았다.


실제로 디시플린의 작동원리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설치된 주위로 지나다니는 개미들의 언어를 자동으로 분석하고 학습한 다음, 똑같은 문구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출력하는 것뿐이었다. 비유하자면 ‘개미들에게만 들리는 대형 확성기’를 곳곳에 설치해놓는 셈이다.


그 반복되는 문구라는 것도 단순명료하기 짝이 없는데, 인간의 언어로는 다음의 두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다.


“모든 개미는 평등하게 태어났다. 그 어떤 개미도 다른 개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Discipline>,

2020. 11




KakaoTalk_20201228_175409937.jpg < Discipline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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