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이별에 관한 기록 (39)

12월 29일

by 이묵돌

12월 29일.


새벽에 깼다. 일출 때까지는 꽤 시간이 남아 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바깥이 싸늘하리만치 새까맣다. 도로가에 선 가로등 불빛이 저항하듯 불타올랐다.


다시 잠들기 위해서는 배를 좀 채워야할 것 같았다. 물과 함께 고구마를 먹었다. 적막한 방구석이 미워 TV를 켰다. 백 개 넘는 채널을 돌려봐도 눈길을 끄는 게 하나도 없다. 눈의 초점이 화면을 통과해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뉴스 채널에선 코로나로 인해 파괴된 일상이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상을 쉴 새 없이 보도하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웃어재끼는데, 이런 부류의 괴리감을 나는 두려워하는 것 같다. 예컨대 장례식장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슬픈 곳에선 모두가 슬퍼야한다. 기쁠 때에는 모두가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기왕이면 그랬음 좋겠다’가 아니라 ‘어째서 그러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 그러니까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의 나는 꼭 낮잠시간에만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선생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듣는 아이였지만, 자라고 마련한 시간에는 몰래몰래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다. 나아닌 다른 친구들의 잠든 모습을 관찰하면서. 모두가 잘 때 함께 잠들 수 있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억지로 졸음을 참아가면서까지 혼자가 되곤 했다. 나는 이렇게나 은밀하게, 이토록이나 독단적인 자아를 실감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오늘도 혼자라서 슬프고 애달프고 가슴이 아프다는 논조의 글을 쓰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함께일 수 있을 때조차’ 부러 쓸쓸해지려고 드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혼자가 된 지금에 더 만족하고 있고, 자신을 외로운 존재라 말할 수 있는 것에 안도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오전 열 시에 깨고 보니까, 나는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제법 긴 분량의 장편소설이었는데. 읽는 속도가 빨라진 게 아니라 읽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다. 뭐라도 쓰고 읽지 않으면 불안해 미칠 것 같다. 좁아터진 집안을 수십 번 왔다갔다, 십 분 전에 씻었던 손을 또 다시 씻기를 반복했다. 이거야 영락없는 미친 놈 아닌가. 뭘 먹을 때가 그나마 낫다. 가만히 앉아있을 이유가 생기니까.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입에 집어넣는 음식이 혐오스럽다.


오후에는 시나리오 외주를 받은 게임사와 전화통화를 했다. 내게서 너무 정상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와서 놀랐다. 이야기는 잘 마쳤다. 그쪽에서는 내가 준 샘플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 단지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게임으로 이식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야 앞으로 잘 협의를 보면 되니까. 전적으로 믿고 맡겨보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 글이 좋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뿌듯했다. 아직은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도.


밤이 돼서 약을 세 번이나 나눠 먹었다. 의도된 행동은 아니었다. 딴에는 평소보다 좀 덜 먹어보려고 했던 건데, 잠이 올 기미가 전혀 없어서 조금씩 삼키고 눕는 짓을 반복하고 말았다. 총합으로 보면 그냥 더 많이 먹어버린 셈이다. 생각할수록 바보 같다.


이러나저러나. 잠깐 있으면 의식이 반으로 쪼개지기 시작해서, 몸이 붕 뜬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불꺼진 외딴방…… 나는 까마득한 천장에 붙어 나를 내려다본다. 이불 속에 외톨이가 있다. 누구보다 사람의 체온을 그리워하면서, 누구라도 먼저 안아주길 바라는 동물이 거기 덩그러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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