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12월 30일.
오전 열 한시였다. 바닥이 차가워 난로를 땠다.
글과 그림을 부치기 위해 우체국을 찾았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앉아있자니 땀이 났다. 그렇게 볼 일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면 십 초 쯤 시원해진다. 그 뒤론 살을 에는 추위뿐이다. 무더위도 잃고 나면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법이다.
돌아오는 길에 잠깐 미용실을 들렀다. 따지고 보면 굳이 다듬을 필요도 없는 머리길이였다. 머리 좀 자르라고 잔소리할 사람도 내게는 없다. 그렇지만 그럴 때일수록, 내가 나를 아낄 수 없는 시기일수록, 나는 지저분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박박 밀어버리는 건 어떨까 싶었는데…… 몇 년 전엔 실제로 그랬다가 ‘이제는 사회에 반항하는 거냐’ ‘드디어 입대하는 거냐’같은 소리를 질리도록 들었다. 그건 다른 차원의 스트레스다. 처음 보는 직원 한 분이, 원장님이 지금 안 나오셨는데 제가 잘라드려도 될까요, 하고 물었다. 네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나쁜 경험은 아니었으나 머리감는 물이 조금 뜨거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후에는 약속이 있었다. 역 근처에 있는 브런치 카페로 갔다. 어째서 어울리지도 않는 브런치냐 하면, 강화된 거리두기 때문에 그냥 카페에서는 실내에 있지 못하는데―브런치라고 하면 커피를 곁들이기는 해도 엄연한 ‘식사’이므로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 괴상한 논리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 추운 날씨에 알루미늄 벤치 같은 데 나란히 앉아 대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바깥은 가뜩이나 기온도 낮았고, 바람까지 세게 불어대서 무척 쌀쌀했다.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되돌아왔다. 소파에 앉아 한 시간 동안 꾸벅꾸벅 졸았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읽기 시작했다. 가끔씩 이런 책을 읽게 된다. 문체도 내 스타일이 아니고, (적어도 지금 기준으로는)묘사도 쓸데없이 긴데다가, 얘기가 대충 어떻게 굴러갈지도 예상이 되는데 계속 읽게 되는 책 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맘모스빵 같은 글이다. 뭔 맛인지도 훤히 알고 별로 몸에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단순히 손이 계속 가서 생각도 없이 먹게 되는 것이다.
밤늦게 글을 쓰다가 이불을 덮었다. 사실은 오늘이 십이월도 아니고, 삼십일도 아니며, 밤이 깊었다기보다 창가에 아주 짙은 암막커튼을 쳐놓은 건 아닐까…… 자꾸 묻는 게 귀찮아서 약을 먹고 누웠다. 내게서 마음이 떠난 사람들, 몸이 편찮으셨던 외할머니, 술 냄새가 심하게 나던 엄마처럼 나도 등을 돌렸다. 벽에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