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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an 03. 2021

이별에 관한 기록 (43)

1월 2일

1월 2일.     


 “왜 글을 쓰는 거야?” 서연이가 물었다.


 “……왜냐하면” 내가 대답했다. “하루는 눈을 떴는데 무인도에 있는 거야. 어떤 생각이 들것 같아?”


 “아무 생각이 안 들 것 같은데, 나는.” 


 “보통은 먹고 사는 걱정을 제일 먼저 하지 않나?” 나는 익살스레 눈살을 찌푸려보였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


 “어쨌거나. 내가 볼 땐 먹고 사는 걱정을 하는 동안에는 걱정이 없어. 좀 역설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어째서?”


 “적어도 그 땐 ‘내가 왜 사는지’ 따위는 걱정하지 않으니까. 제일 먼저 생존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생존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돼. 매일 아침이 되면 일어나고,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고, 밤이 돼서 잠들고 나면 또 다른 하루가 이어지지…… 그 일련의 과정을 나는 ‘어째서’ 이어가는 걸까? 그런 질문이 시작되고 나면 걷잡을 수가 없어. 한 번 불이 붙으면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거든.”


 “그래서?” 서연이가 물었다.


 “그게 무인도가 아니라면 얘기가 달랐겠지.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항상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진 않을 테니까. 내가 ‘아, 나는 왜 사는 걸까?’라고 해봐. 누구는 ‘야,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에 짐이라도 하나 더 옮겨’라고 말할 걸. 그러면 한동안은 잊고 살 수밖에 없어.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왜 그런 걸 고민하고 있었는지.”


 “그래서?” 서연이가 물었다.


 “그렇지만 무인도에서는 그렇지 않지. 그런 답 없는 질문에 빠져있을 때 내게 잔소리를 해줄 사람도, 느닷없이 꼭 안아줄 사람도, 실없이 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할 사람도 없으니까.”


 “그래서?” 서연이가 물었다.


 “그러니까 대답할 수밖에 없는 거야. 태어나길 무인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매일같이 해변에 나가서 ‘내가 오늘 뭘 생각했는지’ ‘오늘의 내 대답은 무엇인지’를 모래위에 쓸 수밖에 없지. 비록 시간이 지나면 다 흐릿해지겠지만. 적어도 내가 대답하려고 애쓰며 살았다는 기억만큼은 떠올리게 돼. 그래서 쓰는 건가봐. 지금도 이런 글을…….”


 “그래서?” 서연이가 물었다.


 “……그래서라니? 왜 이런 질문을 계속 하는 거야. 조금 당황스러운데.”


 “그래서?” 서연이가 물었다.


 “장난치지 마. 나는 진지하게 대답한 건데.”


 “그래서?” 서연이가 물었다.


 “아, 싫어. 이런 거 싫다니까.”


 “그래서?” 서연이가 물었다.


 “…….” 나는 더 이상 답변하지 못했다.      



 그렇게 잠에서 깼다. 이유도 없이 눈이 그렁그렁했고, 등줄기에 땀이 흘러 다소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불 꺼진 방안. 블라인드 너머의 흐린 날씨가 배어들었다. 거기에 나는 혼자 있었다. 혹시나 해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서연이가 으레 그랬던 것처럼, 나를 놀래려고 어디 잘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도 없다. 원래 그러려던 것처럼 얼굴을 씻었다.


 그러고 나서 거울을 봤다. 흠뻑 젖은 얼굴이 전혀 우는 것 같지 않아서 좋았다. 사람들은 내가 우는 걸 싫어했다. 외롭게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도록 슬플 때조차 웃어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버림받지 않는다. 당신은 어제만 해도 얼마나 많은 개와 고양이가 ‘너무 많이 운다’는 이유로 버려졌는지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소리 내 울지 못하는 건 그만큼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다…… 그들은 자신이 그토록 슬픈 동물이라는 것이 발각됐을 때, 얼마나 처량하게 버림받을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슬픔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은 다크초콜릿의 쓴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련히 보드카와 압생트도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독한 술잔을 한두 번 혀에 적셔본 다음에야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나도 쓴 맛을 싫어하는 편은 아닌데 말이야…….


 나는 벌레처럼 기어 타자기 앞에 앉는다. 이런 것들을 글로 옮겨 쓰는 일이 쌓이고 쌓여 독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울을 이해한다는 사람들도, 막상 지나친 우울을 마주했을 땐 불쾌함을 감추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넌 너무 부정적이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우울하게만 만들어! 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지만, 가스 중독자였던 아버지, 알코올중독자였던 어머니로부터 무언가에 중독된 아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게 순전히 나의 잘못일까?


 여자들은 이기적이다. 남자는 대부분 멍청한 등신일 뿐이지만, 여자는 정말이지 이기적이다. 그들은 관능적 육체와 아득한 정복욕을 꿈꾸지만, 그녀들은 누군가의 영혼 그 자체를 갖고자 한다. 그리고 모든 소유욕이 그렇듯 가졌다는 확신이 들고나면 가차 없이 내던져버리는 것이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자신을 위해 슬퍼할 사람을 찾는 것이지, 이미 슬픔에 너덜너덜해진 사람은 원치 않는다. 여자들은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팔거나, 심지어 홧김에 관계를 맺는 것까지도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죽도록 슬퍼하는 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보다시피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성차별적이다. 내가 깨끗한 척하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어떤 수준 이상의 추악함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글에는 가치가 없다. 나 자신의 가치를 거꾸러트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아무런 가치도 없다. 무인도에서 수천 번, 수만 번을 쪽지접어 파도에 흘려보내봤자, 그건 언젠가 전해지리라는 희망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써야한다.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약을 먹고 잠든다. 창밖에 비가 내리길 바란다. 커다란 파도가 치길 바란다. 내가 쓴 모든 글씨들을 휩쓸어 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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