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1월 1일.
‘한국식 나이’의 셈법이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알 사람들은 다 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실제로 자기가 살아온 햇수보다 한두 해 빠르게 나이가 들고 만다. 어디 가서 “너 몇 살이니?”라는 질문을 듣게 됐을 때, 오늘부터 “올해로 스물여덟 살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좀체 실감이 나질 않는다. ‘2020’을 ‘2021’로 쓰는 습관을 들이려면 반 년 정도가 더 필요할 텐데. 막상 그렇게 만든 습관의 유통기한이란 나머지 반 년에 불과해버린다.
일어나자마자 씻지도 않고 책을 집어 들었다. 새해댓바람부터 읽어댈 만큼 재밌어서가 아니다. ‘오늘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일 년이 지난 게 아니라 변함없는 하루가 지난 거라고 스스로를 속일 뿐이다. 세상에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며, 반드시 그 일부가 내 안에 존재해야만 한다는 듯이.
몇 시간이나 책을 읽었나? 그 짜증나게 두꺼운 소설을 끝까지, 작품해설과 옮긴이의 말까지 죄다 읽고 나니까 창밖에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뭔가 먹어야할 것 같아서 배달음식을 시켰다. 역시나 절반도 먹지 못했다. 작년 이맘때와 똑같은 양을 시켰는데, 남은 건 두 배다. 뭘 먹는다는 게 그래서 두려운가보다. 남은 음식들을 보면 어김없이 혼자라는 걸 깨닫는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단골집은 매달 최소주문금액을 올리기 바쁘다.
오랜만에 TV로 무언가 보기로 했다. 로마제국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배신과 음모, 그 가운데 황제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었는지가 엿보인다. 그런 고독한 자리를 놓고 죽고 죽이는 사람들이 슬프다. 열심히 산다고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다들 혼자가 됐을 뿐이다. 매일같이 외로워지고 싶어 안달이었던 것처럼.
약을 먹고 누웠는데, 내일은 무슨 책을 읽을지가 고민이다. 안 읽은 책은 많은데 읽고 싶은 책은 없다. 나는 도망칠 때조차 원하는 곳으로만 가고 싶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