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1월 3일.
역시 꿈을 오랫동안 꿨다. 이번에는 굳이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에(그럴 겨를이 없었다) 자세한 내용을 기억하기는 어렵다. 다만 마지막에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내 눈앞에 나타나서, 팔을 공중에 휘적거리면서 잠에서 깼다는 것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괴물의 형체란 다른 게 아니고 내 침상 머리맡에 있는 화분이었다. 늙고 시든 이파리 아래로 작은 잎 한 장이 기를 쓰고 버티고 있었다. 꽂아뒀던 영양제는 오래전에 바닥이 났다. 이틀에 한 번 물을 준다는 것도 깜빡하고 말았다. 흙이 하도 메말라서 손에 묻어나는 게 없을 지경이었다. 하기는 나도 물은 거의 마시지 않고 사는데. 그 파리한 생명력이 안쓰러워서 물을 조금 뿌려주었다. 나를 위해 살아달라는 애원이 아니라, 나날이 함께 죽어가자는 경의와 존중의 표현으로서.
또 나는 얼어붙어가는 손발을 참아가며 기록을 남기는 것에 어떤 의미가 남아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다짜고짜 그만두기에는 타이밍을 한참 놓쳤고, 이제는 딱히 ‘이별에 대한’ 기록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물론 작금의 상황이 예상치 못한 이별로부터 시작된 것은 맞지만. 한 달 반가량이나 똑같은 짓거리를 하다 보니 아예 습관이 돼버렸다.
나는 화장실을 간단히 청소했다. 쌓여있던 분리수거 쓰레기들을 정리해 내다버렸고, 이틀 간 미뤄뒀던 일기도 몰아서 썼다. 뭐, 사실 이날 하루에는 이런 것들 말고 다른 대단한 일은 없었다.
한편 내일은 아는 사람과 당일치기로 스키장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 오후쯤 느지막이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몸을 사려야하는 시기였지만, 기왕 정부쪽에서 스키장 영업을 허가해줬으므로 하루쯤 발만 담그고 돌아오는 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왕복 서너 시간 걸리는 거리를 자가용으로 데려다준다고 하니 절대다수와 접촉할 일도 없을 것이고. 먼 곳의 공기를 쐬면서 땀을 조금 흘리고 나면, 그래도 상황이 나아지는 건 전혀 아니겠지만, 적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밤이 늦었다. 우리 집 방향으로 일찌감치 데리러 올 거라고 하니 약을 먹기가 애매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벽이라서 그냥 밤을 꼴딱 새버리고 말았다. 몸은 피곤한데 심장은 제멋대로 뛴다. 나는 그런 긴장감에서까지 지쳐있었다. 가끔은 눈을 찔러서라도 어둠이 깔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