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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May 20. 2021

게임 시나리오를 쓰는 가장 쉬운 방법 (1)

삶이 이토록 잔인한 게임이라면

 

내가 기억하는 PC방의 풍경. 늘 담배냄새가 났다



또래 친구들 대개가 그랬듯 나 역시 게임에 죽고 못살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학창시절로만 한정해서 얘기하면, 내게 있어 게임이란 다른 그 어떤 친구들보다도 중요한 콘텐츠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게임을 많이 했다. 실제 현실에 친한 친구가 많지 않아서, 타고난 자제력이 부족해서, 하다보니 관성이 생겨서. 여기엔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말이 되겠지만, 나로선 게임을 좋아하는 걸 넘어 '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적 이유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집에는 돈이 없었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돌아가셨다. 외동아들이었던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임대아파트에 살았고, 매달 정부에서 주는 몇십만 원의 복지급여가 유일한 수입이었다. 이건 뭐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네 하고 늘어놓는 넋두리 같은 게 아니다. 나야 유년시절이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더 불행했다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나로선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여유가 없었으므로, 주말, 방과후, 그리고 한 달 넘게 이어지는 방학기간동안에는 게임말고 다른 할 일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을 언급해두려는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웃긴 일이다. 대개 게임이라고 하면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콘텐츠 같은데. 소싯적 내가 그렇게나 게임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다름아닌 궁핍한 가정형편이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재밌게 했던 기억은 나는데... 결말이 기억이 안 난다.


 몸이 편찮았던 어머니는 나의 학업이나 진로 같은데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하루 온종일 게임을 하든, 여름방학 내내 방에 틀어박혀서 밤낮없는 생활을 하든 신경쓰지 않았다. 이런 유로 나는 정말이지 죽어라고 게임만 해댔다. 워낙에 손이 느려터져서 '잘 한다'고 할 수 있는 게임은 거의 없었지만. 그 대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게임을 접해온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지금껏 「라이온킹」, 「환세취호전」, 「프린세스 메이커」, 「메가맨 시리즈」, 「문명」과 「마운트 앤 블레이드」같은 고전명작 게임들을 모르고 살았다면, 지금보다 효율적일지언정 한층 공허한 삶을 살았을테니까. 


 반면 나는 남들과 경쟁하는 게임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흥미가 돋질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기는 건 좋지만(누가 싫겠는가?) 경쟁하는 과정은 싫었던 것 같다. 실제로「테트리스」는 내가 가장 못하는 게임 중 하나였다. 더구나 PC방에서 친구들이 하던「서든어택」이나 「스타크래프트」에 끼는 건 고역이나 다름없었는데, 내가 낀 쪽은 대체로 패배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란 작자들은 게임 한 판 진 것 때문에 나를 죽이려들었으며, 게임하는 거 눈에 띄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도 했다. 못하려고 못한 건 아닌데. 나로선 어떻게든 게임에서 이겨보겠다고 아득바득 달려드는 친구들이 이해불능이었다. 지금보면 내겐 실력 뿐 아니라 게임에서 이겨보려는 의지 자체가 크게 결여돼있었다.


마린키우기. 포토겹치기. 포커디펜스...


 어떻게 해야 게임을 더 잘해서 상대방을 꺾을 수 있는지, 는 정말로 내 관심 밖에 있었다. 오히려 내가 매력을 느낀 것들은 게임에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뜯어보고 재조립하는 일들이었다. 하잘 것 없는 것들이 하나둘 모이고 모여 얼마나 멋진 '게임'을 만들어내는지. 보면 볼수록 희한하고 놀라운 세계처럼 느껴졌다. 이렇다보니 직접 게임 비슷한 것을 만든 적도 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지금은 없어진)플래시MX로 조잡한 플래시게임을 몇 개 만들었고,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세디터와 SCM드래프트 같은 프로그램들로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기야 그건 '게임'이라고 말해주기에도 낯부끄러운 것들이었지만. 적어도 '시도는 했었다'.


 아무튼. 그 뒤로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어느덧 성인이 되어 이십대후반에 접어들었다. 또 얼떨결에 글로 벌어먹고 사는 '작가양반'이 돼서, 책이니 강연이니 하며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하는 중이다(나도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임산업이라는 분야도 그 사이 몰라보게 발전하고 변화해왔지만……


 어째 나이가 들수록 게임이라는 콘텐츠와 멀어지는 느낌이 물씬하다. 그저 멀어졌다는 것만이 아니라. 오래전 내가 했던 게임과 지금 우후죽순 쏟아져나오는 게임이 아주 동떨어진 개념처럼 느껴질 정도다. 시간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게임이란 게 영영 싫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관심이 동했다가도 손이 가지 않는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화려한 그래픽과 추가 콘텐츠들로 리마스터된 명작들 역시 감흥이 없다. 도리어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게임의 추억이며 아련함들을 앗아가버리지는 않을지 배너형 광고만 보고도 두려운 마음이 솟는다. 그래서 나는 호기심으로라도「바람의나라:연」이나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처럼 모바일로 재출시된 게임들을 설치해보지 않았다. 이것들이 훌륭한 게임인지 아닌지는 해보지않은 이상 알 수 없지만―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대가로 생각보다 크고 많은 것들을 지불해야할지도 모른다. 까딱 잘못했다간 추억으로나마 돌아갈 곳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 게임들이 어떻든간에. 나는 어떤식으로든 실망하고 좌절할 것이다. 그 시절 내가 했던 게임은 오직 그 시절에서만 오롯이 존재하므로.



< And Don't forget>. 켈티카였나 그쪽동네 브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님 말고


 오늘 내가 쓰는 PC와 스마트폰에는 그 어떤 게임도 설치돼있지 않다. 그나마 즐겨했던 닌텐도스위치도 전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죄다 줘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떤 게임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던 나머지 게임 자체를 포기해버렸다. 지금의 내게 게임과 관련한 활동이라곤 가끔 옛날에 했던 게임들의 플레이 영상들을 유튜브로 찾아보는 정도가 다다. 「테일즈위버」의 사운드트랙은 요즘 일할 때도 가끔 틀어놓는다. 제일 좋아하는 트랙은  <And Don't forget> 이다. 


 그야 게임과의 거리감에는 갈수록 바빠지는 일도 큰몫을 하고 있다. 예전처럼 마음 편하게, 어떤 면에서는 강박적일만큼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월세며, 공과금이며, 털털 굴러가는 중고차 할부금에 최근의 이사비용까지. 들어가야할 돈만큼이나 해야할 일들이 생긴다. 일거리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월급을 받는 직업이 아니다보니 매달 들어오는 소득이 불규칙적일수밖에 없고, 집을 옮길 때처럼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면 없던 일이라도 만들어내야하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알고 지냈던 작가님으로부터 게임 시나리오 제안을 받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우리랑 연결되는 게임스튜디오 중에 꽤 괜찮은 곳이 있는데. 글을 쓸 사람이 마땅치 않다더라고……"


 라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을 때만 해도 나는 시큰둥했다. 책 마감도 바빠죽겠는데 게임 시나리오라니. 작가가 없어서 외주를 맡긴다면 일하는 방식도 보나마나다. 못 쓰면 못 쓰는대로, 잘 쓰면 잘 쓰는대로 욕먹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를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원하지 않을 때 써야하겠지…… 뻔하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똑같은 글이라지만 쓰는 스타일이 요즘 나오는 게임에는 안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딱히 니가 맞춰줄 거라고 생각해서 말한 건 아니었는데"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의외였다.

 "아니, 그러면요? 게임이 시나리오만 쓴다고 완성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말했다.

 "그건 그런데. 이쪽 게임은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아무튼 그런 쪽이거든. 보면 알거야. '텍스트형 로그라이크'라나, 뭐라나……"

 "로그라이크요?" 나는 의아한 투로 덧붙였다. "요즘은 별의 별 걸 다 로그라이크라고 하긴 하던데요……"

 "아무튼 그렇대. 나도 잘 몰라"

 "저도 모르긴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게임사쪽이랑 대화정도는 해보면 어때. 그쪽도 되게 오픈마인드야. 맡은 일처리도 잘하고. 나름대로 매니아층도 있어. 협업만 잘 하면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돈도 줄거고"

 "돈이야 받아도…… 끝까지 못쓰면 도루묵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대화라도 한 번 해보라는 말에는 거절을 놓기가 어려웠다. 까짓거 말 좀 주고 받는 게 뭐가 어렵다고. 더구나 화상미팅아닌가. 내가 무슨 대단한 글나부랭이씩이나 된다고. 자존심이 있기 보다는 자신감이 없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의 화상미팅이 진행됐다. 9인치 아이패드 화면 너머 게임 개발팀과 인사를 나눴다. 내가 받은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다소 피곤해보이기는 해도(이건 모든 개발 스튜디오가 비슷한 것 같지만) 게임이라는 걸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주제에 다소 횡설수설했다. 어차피 말재주가 있는 편도 아니었고. 일을 같이 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못 알아들으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미팅이 끝났다.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아무런 결심도 서있지 않았다. 다음번 책 제목은 뭘로 하면 좋을지 정도나 궁리하고 있었을 뿐이다. 


 뜻하지 못한 이사때문에, 내게 생각보다 많은 목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다. 단기간에 그만한 돈을 마련해야 하다니. 가뜩이나 코로나다 뭐다해서 일거리가 없는 마당이었다. 급한 마음에 이곳저곳 돈을 융통해보려했지만 어디나 사정이 안 좋은 건 똑같았다. 결국, 남은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하는 마음으로, 후다닥 게임 시나리오 기획안을 써서 보냈다. 뭐라고 써서 보냈더라? 텍스트가 주가 되는 게임이니까. 로그라이크라는 장르와 현실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엣지 오브 투모로우」와「프린세스 메이커」를 합쳐놓은 느낌의 시나리오를 작업해보겠다는 개소리를 몇 장 써서 보냈던 것 같다. 기존의 양산형 모바일 게임들에 지친 우리 세대의 젊음, 돌아갈 추억이 없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개띵작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헛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팔리지 않을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이까지한 시나리오 기획이었다.


 여러모로 도전적인 기획안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쓸 수 없는 건 쓸 수 없는 거니까. 게다가 게임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나마 내가 완성할 수 있을법한 기획은 그것 뿐이었다.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이나 그 시나리오를 작업해야한다면, 나는 적임자가 아니다. 어쩌면 어릴적 내가 즐겨했던 게임들이 미개했던 것이고, 지금 나오는 혁신적 게임에 발맞추지 못하는 나야말로 어리석은 게이머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던 '게임'이란 그런 것들 뿐이다.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기대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계약금은 다음날 아침에 입금됐다. 나는 우리은행 앱 화면에 떠있는 입금내역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하릴없이 걸어 키보드앞에 앉았다. 


 '아 씨발'


 속으로 욕지거리를 몇 번이나 했다. 이딴 기획이 통과해서 돈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젠 정말 꼼짝없이 게임 시나리오를 쓰는수 밖에 없다. 내 PC와 스마트폰에는 여전히 게임이 없었다. 게임 안 하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니. 이런 미래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난 아닌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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