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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May 01. 2021

단편선 출간에 즈음하여

이묵돌 단편선 2「블루노트」, 3「적색편이」





1. 나는 펀딩을 세 번이나 하게 될 줄 몰랐다. 김리뷰 시절 처음으로 내놓았던 펀딩이 목표금액 미달로 실패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펀딩을 홍보하는 내 게시물은 좋아요가 1만개 가까이 됐는데, 한 달 가까이 모인 돈은 200만 원 정도였다. 목표금액은 1000만원이었다. 물론 200만원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내 콘텐츠에 나름대로 힘이 있다고 생각했던 당시로서는 실패도 그런 실패가 없었다. 그렇게 두 번 다시 펀딩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났다.


2. 나는 묵돌이라는 다소 생소한 필명을 들고 여행 에세이를 출판하겠다고 펀딩을 올리게 됐다. 출판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전에도 안 되던 것이 지금 와서 될까? 뭐 결과가 어쨌거나 책은 내준다니까. 어찌저찌 해서 펀딩을 올렸다. 그렇게 올린 「역마」 는 2주만에 약 800만 원을 달성했다. 말할 것도 없지만, 펀딩을 올린 지 하루도 안 돼서 500만 원을 넘은 건 살면서 어제가 처음이다.


3. 두 번째 단편선 「블루노트」 를 출판하기로 결정한 건 지지난달의 일이었다. 다른 회사의 게임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있던 나는 2주간 양해를 구한 뒤, 이전에 썼던 단편을 추리고 중편을 추가로 작업해 마감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에 출판사를 찾아가서 ‘기왕 할 거 시집까지 묶어서 2, 3편을 동시에 내는 건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다. 당연히 욕을 먹었다. 금방 마감한 놈이 갑자기 와서 책 한 권을 더 내자고 하니까.


4. 그런데 나는 소설보다 수필을, 수필보다 시를 먼저 썼다. 살면서 내가 최초로 받은 백일장 금상이 시 부문이었으며, 고등학교 대표로 시 대회에 나간 적도 있었다. 물론 거기선 광탈했지만. 역마도 솔직히 그렇게 많이 팔릴 줄 모르지 않았냐, 등등. 몇 시간이나 편집자에게 박박 우긴 끝에 「적색편이RED-SHIFT」까지 출간하기로 결정이 났다. 다른 편집자분은 사무실을 나오는 길에 “어쩌다가 팔자에도 없는 시집을 내게 생겼네……”하고 한숨을 쉬었다.  


5.  「시간과 장의사」 의 서평 중에 '잘 읽히고 공감도 되고 좋은데, 읽고 나서 우울해지기만 해서 슬프다'는 평을 기억한다. 나로서도 노상 우울한 감상만 주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다음 단편선을 쓸 때는 ‘우울함을 극복하는 무언가’를 내놓을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최근 몇 달간의 내겐 우울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죽어라 일했지만 뭔가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계속해서 돈에 쫓겼고, 셋방살이 계약문제가 숨통을 조여 왔다. 슬픈 이야기를 빼면 거짓말 밖에 쓸 게 없었다.  


6. 하루는 글을 쓰다 말고 공황발작이 심하게 왔다. 발작 자체보다도 혼자 방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렸다는 것이, 그러고 나서 어디  군데  편히 털어놓을 데가 없다는 것이 서러워 펑펑 울었다. 그렇게 재즈 음반을   틀어놓고 궁상을 떨다가…… 마침 듣고 있던 BLUE TRAIN》의 앨범커버가 눈에 밟혔다. . 이런 컨셉으로 책을 내면 그리 나쁘지 않겠는데.  얘길 편집자한테 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럼 그냥 제목을 블루노트로 하는  어때요?’ 그렇게 제목이 결정돼버렸다. 살다보면 간혹 이런  있다.   내내 고민했던 일이 일이  사이에 얼렁뚱땅 결정돼버리고,  결과물도 의외로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묘해지는.


7. 블루노트는 재즈 역사상 가장 유명한 레이블 중 한 곳이다. 이름 그대로 블루하면서도 세련된 앨범을 만들어내는데 정평이 나있다. 내가 주목한 점은 블루노트라는 단어의 중의성이었다. 「블루노트BLUE NOT’」는 우울함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그저 그렇게 우울하지만 않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8. 말해두건대 나는 「시간과 장의사」에 비해 더 자극적인 무언가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소재가 강렬하다 싶은 것들은 골라서 빼버리다시피 했다. 「블루노트」는 제목 그대로 우울한 기록이지만, 그저 우울하기만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장의사가 오고, 하루 온종일 우울했던 일도 어느새 따뜻했던 추억으로 자리잡는다. 빈도는 잦아들고, 색은 빨갛게 익는다. 「블루노트」와 「적색편이」는 그런 과정을 담은 두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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