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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Dec 07. 2021

영원에 관하여, 서머싯 몸

11. Somerset Maugham


윌리엄 서머싯 몸. 1934년.


1. 헤밍웨이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작가가 가질 수 있는 지고의 재능으로 꼽은 바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웃음) 대문호가 이런 언급을 했다는 점은 좋을 수 밖에 없다. 나야 다른 건 몰라도 성장기가 우울했다는 것으로는 어디서 꿀리지 않기 때문이다. 출신이 보잘 것 없을수록 뛰어난 재능이라는 얘기는, 뭐 개인적인 입장을 빼놓고 봐도 말 자체가 낭만적이다. 문학이라는 분야 자체를 입체적으로 재창조하는 동시에 주류예술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을 계층―무산계급, 비엘리트 그리고 대중―들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니까. 나 역시 이 어록에 크게 위로받았다. 말할 것도 없겠지만.


2. 아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분노했다. 이런 사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서, 명백한 사회적 공감대로 자리잡히지 않았다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이토록 뿌리깊고 확실한 계급 사다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모든 흙수저들이 글쓰기에 몰두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자극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한때는 지배계층의 음모라고까지 여겼을 정도다. 소외계층이 가진 문학적 잠재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구조적 억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제는 썩 유쾌하게까지 말할 수 있게 됐지만…… 당시에는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책의 표지 날개를 펼쳐보고서 작가의 출신성분을 확인한 다음, '중산층 이상의 명문대 출신'이 썼다고 판명될 시에는 일부러 읽지 않은 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저항적 시도는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기간으로 치면 일 년도 채우지 못했는데, 그런 기준을 세워놓고 검열하다보니 읽을 수 있는 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3. 작가들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대졸 미만의 학력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아가 내 입장에서 '결코 부유하다고 할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책을 쓴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중에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지낸 인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작가들 사이에선 그렇지 않다. 당장 위에서 언급한 헤밍웨이만 해도 아버지가 의사였다. 밑바닥 인생 묘사에 도가 텄다는 도스토옙스키도 명문군사학교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의사이자 지주였는데, 아랫 사람들을 얼마나 핍박해댔는지 자기 영지의 농노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발작을 이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동양으로 고개를 돌려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상은 경성제국대학(서울대의 전신),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 출신이고,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 「나생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각각 동경대 출신이다. 뭐 이런 얘기를 꺼내면 꼭 누가 와서 '이러이러한 작가는 흙수저로 태어나서도 위대한 작가가 됐다는 거 모르냐' 같은 반론을 펼칠 것 같지만. 막심 고리키나 잭 런던 같은 케이스는 흔하지도 않거니와, 앞서 나열한 작가들과 비교해 네임밸류나 문학적 성취가 높이 평가받는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짚어두고 싶다. 



4. 인류의 역사를 통시적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글쓰기라는 건 기본적으로 여유있는 인간들의 전유물이었다. 문자를 읽고 쓰는 것만 해도 그렇다. 지금은 아무리 못 배운 사람이라도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대부분의 하위계층이 문맹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태어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중에 글을 모르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하자면 새삼스러운 얘기다. 글자를 읽고 쓰는 것만 해도 그랬던 마당에, 오만 단어와 기교를 가지고 완성된 글을 쓴다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이자 매우 제한된 계층에게만 허락된 콘텐츠였다. 소위 말하는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급까지는 못 되더라도 최소 중산층은 되어야 했다. 또 그 중의 극히 일부만이 자신의 글로 책을 펴낼 수 있었으며, 거기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적 소양을 충족하면서 당대 유명 평론가들을 굴복시킬만한 권위를 확보했을 때에만 비로소 위대한 작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것을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극도로 요약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가난한 작가가 위대해지기는 쉬울지 몰라도, 찢어지게 가난한 인간이 평범한 작가로 살다 죽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서머싯 몸의 작가소개(민음사). 오래 살았다.



5. 사실 서두를 이만큼 길게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 보니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알게 모르게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나는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이 엄청난 금수저였다는 점을 언급하려고 했을 뿐인데.  아무튼「인간의 굴레에서」,「달과 6펜스」 같은 작품으로 잘 알려진 서머싯 몸은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관에서 태어났는데, 예나 지금이나 외교란 한 나라를 대표하는만큼 명예로운 업무다. 말하자면 몸은 귀족 집안 자제인 것이다.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의대생 생활을 하던 몸은 문학으로 전향했고, 세계대전 당시에는 정부기관에 의해 국제 첩보원으로 활동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자기 분야에서의 성취가 별 볼 일 없었냐? 그렇지도 않다. 서머싯 몸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문호로 이름을 남겼다.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지금도 영국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전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소설과 수필을 남겼던 그는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는 기사작위를 받았다. 이런 빌어먹게 멋진 삶을 아흔한 살까지, 그야말로 천수를 누리다 죽었으니 참으로 부러운 인생이다. 몸의 생에 전체를 통틀어 최대의 위기라고 할 만한 사건은 2차대전 발발 당시 카누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넌 일 정도가 아닐까.


6. 까놓고 말해서 '위대한 작가들은 대체로 말년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내게도 있었다. 아무렴 눈부신 문학적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갑자기 자살하거나(헤밍웨이) 퇴물이 되어 죽고(피츠제럴드) 결투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가하면(푸슈킨) 타지의 호텔에서 홀로 객사한(와일드) 경우들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서머싯 몸에게는 어떤 종류의 배신감까지 느꼈다. 그가 가진 재능의 일부,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었던 환경 같은 것들이 내게는 너무도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웃긴 일이다. 글을 읽다가 내 멋대로 친근감을 가져놓고서는. 처한 상황이 그토록 다르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비참해졌다는 것이. 내게 있어 '윌리엄 서머싯 몸'이란 이름은 주옥 같은 작품을 남긴 대작가이면서, 어느 수준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없는(혹은 그래선 안 된다고 느껴지는) 우상적 존재였다. 아무리 존경해도 닮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나는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그런 마음을 포기해버리는 인간이다.


7. 그러다가 최근 민음사에서  번역된 「케이크와 맥주」를 읽었다. 단편선도 같이 나왔길래 그것도 사서 읽었다. 물론 할 일이 없어서는 아니었고―마감 중이었다―몇 년 전까지 즐겨했던 게임 아이디를 우연히 되찾아 접속해보는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솔직하게는 '어차피 금수저 작가의 호화로운 인생에서 나오는 배불러 터진 서사들이겠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참 등신같은 발상이기는 하지만. 누구한테 딱히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뭔 상관인가? 하나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렇게 배배꼬인 감정으로 읽어내리는 글들로부터, 몸만이 가지고 있는 용기며 친절 같은 것들을 전보다 더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윌리엄 서머싯 몸의 스케치. 말년 사진을 보면 정말 똑같이 생겼다.



8. 자신이 '태생적으로 속해 있는 집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에 관해 몇 가지 우스갯소리를 늘어놓거나, 스스로 어쩔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만. 자기가 속한 집단을 몸만큼이나 집요하게 꼬집어대는 사람은 드물다. 몸은 스스로가 주류에 속해있음에도 주류 문학계를 조롱하며, 상류층으로 태어났음에도 그들이 가진 허영심, 추악함, 이중잣대를 노골적으로 다룬다. 이른바 귀족이라 불리는 족속들이 얼마나 가련하고 어리석은 지를, 스스로를 교양인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어찌나 자기모순 적인지를 전부 까발리다시피 한다. 하는 얘기를 보면 사실상 내부고발 수준인데, 알량한 정의감이나 소명의식 때문에 그러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봤을 땐 그냥 즐기는 게 아닌 가 싶다. 그들의 교양있고 세련된 문체를 그대로 빌려서 문자 그대로 '숨도 안 쉬고' 두들겨 패는 것 자체를. 특히 「케이크와 맥주」에서 나타나는 비아냥은 그 수위가 얼마나 높은지, 나로선 이걸 동족혐오나 자아비판 같은 말로 '감히' 뭉뚱그릴 수 없었다. 이러한 몸의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을 인용한다.


 「……작가들은 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어 왔다.  만약 이십 년째 주목할 만한 작품을 쓰지 못하는 노작가라면 경쟁자로서 젊은 작가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므로 그의 가치를 극찬해도 괜찮다는 점에서 합리적 찬사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알다시피 두렵지 않은 경쟁자를 칭찬하는 것은 만만찮은 경쟁자를 견제하는 좋은 방법이다……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 물론 계속 글을 쓰고 대중의 시선 안에 머무는 노작가여야 한다. 걸작을 한두 편 쓴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걸작들을 떠받칠 받침대로 변변찮은 작품을 사오십 편쯤 펴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면 무게로 독자를 압도하겠다는 각오로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 」


이걸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서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설득력있는 가설은, 서머싯 몸이 정신적 자해를 즐기는 고도의 마조히스트는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몸의 대표작, <인간의 굴레에서Of Human Bondage, 1915> 의 표지.



9. 인문학은 철저한 계급사회의 산물이다. 이 사실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다. 예술이란 그저 수저 하나 잘 물고 태어난 양반들이 하나둘 모여서, 인생이 따분한 나머지 뭐가 문학이고 문학이 아닙네 같은 얘기를 떠드는 동안, 다른 누군가가 농사를 짓고 벽돌을 옮기고 덥고 추운 날에 길거리를 청소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노예가,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가 그 비참한 역할을 대신 했을 뿐이다. 지금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나로 말하자면 단지 글쓰기로 노동을 하는 잡역부에 불과하며, 몇 가지 문학적 기교에 익숙해진 창부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금수저 귀족 작가인 서머싯 몸의 글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어리석은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세상에는 그런 어리석은 속성을 가진 위로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똑같이 멍청하고, 하찮고, 어리석으며 따뜻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못내 느끼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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