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그냥 슬퍼하는 일'에 대해

수필

by 이묵돌

나는 스무 살 때 처음으로 회사를 들어갔다. 날 스카웃 한 회사는 강남역 십일 번 출구를 나와 도보로 십오 분 정도를 걸으면 나오는 위치에 있었다. 당시 강남역 앞에는 주황색 비닐로 된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었다. 나는 늦게 일어난 통에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포장마차에서 파는 토스트며 어묵 같은 것들을 역에서 나오자마자 사들곤 회사 건물에 다 도착할 때쯤 다 먹어치우곤 했었다. 맛은 그냥저냥이었다. 그래도 젊은이가 아침부터 고생하네, 남의 돈 벌어먹기가 참 힘들지, 같이 한 짝의 위로도 안 되는 말 따위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역 출구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용역꾼으로 보이는 젊은 장정들이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고, 포장마차들은 어쩐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괜히 무서운 기분이 들어 발길을 재촉했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사무실로 향해야 했는데, 점심시간이 돼서는 햄버거를 배불리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강남역 앞의 포장마차가 강제 철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 날 저녁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였다. 내가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길목과 용역꾼들이 포장마차 아주머니들과 대치하는 장면, 힘으로 포장마차를 밀어 넘어트려 놓은 거리의 사진 같은 것들이 짤막한 설명과 함께 올라와있었다. 나는 그 사진들을 보고 나서 슬펐다. 아래에 달린 댓글을 본 뒤에는 더 슬펐다. 탈세범들이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있네, 강남구가 드디어 정의를 집행했네, 저 아주머니들의 우는 모습을 보고도 철거를 강행하는 용역 깡패들은 애미애비도 없네 같은 댓글들 말이다.


나라고 길거리 노점상의 탈세 문제나, 기존 상권 사업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같은 것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아주 논리적인 근거를 들거나, ‘저 아주머니가 당신의 가족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느냐’는 식의 감정적인 영역을 들며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그 포장마차 아주머니들이 월 천만 원을 넘게 벌면서도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악질 탈세범이든, 용역깡패들이 얼마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철거를 집행했든 나한테는 별 상관없는 사실이다. 나는 그냥 그 상황이 슬펐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니까.


뭐가 됐든 먹고살겠다고 차린 포장마차를 무너트려지는 아주머니들이나, 그 아주머니들이 욕먹어 싸다는 회사 동료들 또는 인근 건물 사업자나, 용역으로 하루 일당을 받으러 나온 장정들이나, 돈 때문에 그 자리에 서서 목소리 높인다는 건 다 똑같았다. 그런 각자의 합리적이거나 감정적인 이유들로 인해 정당하게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광경들에 마음이 아팠을 뿐이다. 난 누구에게도 화가 나지 않았고, 누구도 연민하지 않았고, 그저 이것보단 덜 슬픈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서로 적대적이고 미워하는 표정과 말들을 교환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방법이 세상에 없다고 할 지라도. 최소한 희망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부정적 상황을 마주치고, 원하든 원치 않든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부정적 감정들의 발로가 단순한 슬픔에 그쳐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단순히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책도 없이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것을 나약하고 볼품없으며 잘못된 일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상처 받은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에 분노할 대상을, 자신이 느낀 부정적 감정들을 어떤 식으로든 책임질 대상을 끊임없이 찾는다.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분노하고 책임 지운다. 슬퍼하는 시간은 낭비에 불과하지만, 욕하고 책망하는 시간은 정당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니게 되고, 몹시 슬펐던 상황도 자고 일어나거나 술 한 잔 하고 나서는 꽤 우습게 느껴지곤 한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는 부정적 감정들은 실컷 슬퍼하고 눈물 흘림으로써 대부분 해소되는 종류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슬퍼하는 법을 몰라서, 목소리 높이며 화를 내고 누군가 미워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일지 모른다.


슬픔은 권리도 특권도 도망도 나약함도 아니다. 슬픈 건 그냥 슬플 뿐이다. 또 어떤 일들은 충분히 슬퍼하는 것으로밖에 극복할 수 없다. 나는 이런 슬픔들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슬픔이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것이 돼버린 것이 슬퍼서 이런 글을 쓴다. 나는 당신이 슬픈 일에 마음껏 슬퍼하고 울어도 괜찮은 삶을 살길 바란다. 누군가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길 바란다. 또 미움받고 상처 받는 일 없이, 매일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남은 시간들을 채워나가길 바란다. 당신이 이런 삶에 가까이 가는 데서, 내 글이 티끌만큼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나로선 더 바랄 게 없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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