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마음에 대해
오전 여덟 시에 알람을 맞춰 놨다. 료칸에서 제공하는 조식이 여덟 시 반에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덟 시 십 분 쯤에 나란히 일어났다. 가운을 그대로 입고 나갈까 하다가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거실에 크게 나있는 창문을 열었다. 이슬내 섞인 찬바람이 풍겨 들어온다. 여덟 시라고 하면 해가 쨍쨍했던 것 같은데.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료칸에서의 조식은 특별했다. 밥 한 끼를 위해 별실까지 마련됐다. 내려가 보니 할머니 한 분이 분주하게 상차림을 정돈하고 있었다. 전날 저녁 친구가 '조식을 꼭 먹자'고 강조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난 기껏해야 부페식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정갈하게 차려진 일본 가정식이었다. 상이 차려진 모양이 무척 이쁘다고 생각했다.
밥을 메인으로 반찬을 집어먹는 구조는 똑같다. 차이는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 쓴다는 것. 순두부를 떠먹는 데 쓰는 숟가락이 있었지만 밥도 떠먹으라고 만든 건 아닌 모양이었다. 밥은 적당한 찰기에 씹는 맛이 있어 무척 맛있었다. 다만 반찬은 전반적으로 단 맛이 강했다. 우리나라가 짜고 매운 맛에 익숙하듯이, 일본은 달고 시큼한 맛을 즐기는 것 같다.
식사는 금방 끝났다. 별실에 그대로 앉아 삼십 분쯤 바람과 햇살을 쬐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친구는, 조선시대 때 양반가 한량으로 태어났다면 매일 이런 기분이 아니었겠느냐,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글쎄, 그럼 삶이 재미없을 것 같은데, 하고 말았다.
료칸 로비층에는 일본식 정원이 있었다. 날이 화창해선지 뭐든 괜찮아 보였다. 우리는 정원을 좀 둘러보다가,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했다. 객실에 올라가는 길에 탁구장이 있었다. 나는, 배운 적 없는 것 치곤 탁구를 잘 치는 편이다. 드라이브가 뭔지도 모르는 친구를 처참하게 발라주고 올라왔다.
객실 의자에 앉아 좀 쉬다가, 각자 샤워를 한 뒤에 짐을 챙겨 체크아웃했다. 체크아웃은 열한 시 였는데, 난 열 시 오십 분 쯤부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다. 친구는 알아서 내려오라며 먼저 나가서 체크아웃 절차를 밟았다. 난 열한 시 오 분이 돼서야 객실에서 나왔다.
날씨가 다시 한 번 좋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항상 날씨가 좋았던 것 같다. 국어사전에서, '화창하다'는 표현에 자료사진이 들어간다면 이 날씨를 찍어 넣어도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짐을 들고 료칸에서 후츠카이시역까지 십오 분쯤 걸었다.
전날 캄캄해서 보이지 않았던 마을을 둘러봤다. 햇살이 좋으니 아무 길거리를 찍어도 그럴듯해 보였다. 후츠카이시역은 플랫폼 외에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역이다. 우리는 떠나올 때 탔던 JR선을 그대로 타고, 하카타역으로 돌아갔다. 삼십 분 정도 걸렸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다섯 시 사십오 분으로 예약돼 있었다. 친구는 일곱 시쯤이었다. 하카타역에 공항으로 바로 가는 노선이 있으니까, 근처에서 서너 시 까지 시간을 때우다가 출발하면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짐을 맡겨놓을 곳이 필요했는데, 친구가 하카타역 근처에 있는 '편집샵'에서 천 엔 이상 구매하면 짐을 맡아준다더라, 하는 얘기를 했다. 나는 편집샵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잘 모르겠는데, 뭐 면세점에서 살만한 물건들 모아놓은 거겠지, 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흠, 느낌이 안 좋은데, 싶었지만 일단 갔다. 편집샵이라는 곳을.
천 엔이면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다. 우리는 여행 중이고, 기념품 상점에서 만 원 정도 쓰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나 싶었다. 근데 가보니까 정말 살 게 없었다. 아무 거나 사기에는 돈이 아깝고, 누구한테 선물을 주든 내가 쓰든 살만한 물건이 있었으면 했는데, 구미가 당기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놀라울 정도였다. '정말 아무 것도 살 게 없는데' 하고 한참 고민하던 친구를 위해, 나는 천육백 엔짜리 와인을 결제해버렸다. 포장 퀄리티만 봐도 바가지가 확실했다. 그래도 짐은 맡겨야하니까.
우리는 짐을 맡긴 뒤에, 멋쩍은 표정으로 편집샵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하카타역에 붙어있는 한큐백화점과 쇼핑몰들을 둘러봤다. 난 명품에 취미도 없고, 딱히 쓸 돈도 없었기 때문에 금방 빠져나왔다. 조금 나른해져서 스타벅스로 갔다. 커피 두 잔 시켜놓고 얘기나 좀 하다가, 맞은 편 건물에 있는 상가를 한 번 더 둘러봤다. 칠 층인가 팔 층 쯤에 오락실이 있었다. 난 농구 게임을 두 판정도 했고,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있는 게 신기해서 하나 뽑아 먹었다.
편집샵에서 짐을 되찾아 나왔을 때는 이미 네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탑승수속은 이륙 한 시간 전에 마감한다. 공항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건 별 수 없었다. 하카타역에서 물어물어 공항선을 탔다. 이백육십 엔이었다.
공항선에서 내린 뒤에는 국제선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한 번 더 타야하는데, 요금은 받지 않았다. 난 국제선 청사 앞에 내려서, 후쿠오카의 날씨를 마지막으로 가늠해봤다. 하늘은 몹시 높고, 구름은 드물며, 공항 너머 풀밭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후쿠오카에도 여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탑승수속은 금방 끝났다. 친구는 나와 어깨를 부딪치면서, 내년에는 서울에서 보자, 들어가서 면세점이 어떤지 연락해줘라, 같은 말을 하고 헤어졌다. 깔끔한 작별이었다. 사람이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것은,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물며 다시 만날 수 없더라도 편히 작별할 수 있는 지,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모르고 떠나보낸 시간과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비행기에 올라탔다.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지난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영종도는 해가 넘어갔다. 바닷바람인지 가을바람인지가 불어 으슬으슬 추웠다. 바람막이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 했다. 나는 공항버스를 타고 신대방역까지 갔다가, 택시로 갈아타 집으로 향했다.
귀국하면 곳곳에 보이는 한글에 어색할 줄 알았는데. 삼박사일로는 택도 없었던 모양이다. 너무나 익숙한 동네. 낯설음으로 낯설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한 집.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갔다. 한 때 자주 갔던 카페에 불이 꺼져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은 없고 '임대'라는 글자만 크게 써 붙여 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