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Суббота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다. 뭐가됐든 미리 좀 해놓으라는 뜻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준비성이 좋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앞일을 대비해야할 필요성은 체감하고 있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대체로 이상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갈 때가 떠오른다. 당시의 나는 소중하게 여기던 필름 카메라(만오천원 짜리)는 빼놓지 않고 챙겨갔지만, 그 대신 양말을 한 켤레도 안 가져간 덕분에 물집으로 고생해야했다. 당연히 놀림받았다.
모처럼 북국으로 떠나기로 한 것도 일자가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여권이며 접종확인서 같은 것들을 부랴부랴 챙기고 나자 뒤늦게 언어의 장벽이 걱정됐다. 급한대로 중고 러시아 회화책을 사서 철자부터 외우기 시작했는데, 알파벳을 강제 유전자 변이 시킨 것 같은 생김새는 둘째치고 헷갈리는 게 너무 많다. C는 [s], X가 [h] 발음인 것까진 그럭저럭 납득이 간다. 근데 H는 [n]이 된다거나, y를 [u]로 소리내는 건 뭐랄지 영어에 대한 배신같이 느껴진다. 쓰빠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