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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Feb 06. 2022

여로에서 (1)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새벽 두 시에 일어났다. 침대 옆 창문으로 바깥에서 거세게 바람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으로 이사온 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정도로 격렬한 풍음은 처음이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봤다. 일이초 남짓에 냉기가득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뇌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먼 나라는 고사하고 집 근처 편의점 가기도 무서운 날씨였다. 뭔가 때를 잘못 잡은 것 아닌가? 하는 예감이 물씬 들었다.

 거실에서 뉴스를 켜놓고 짐가방을 점검했다.

 “일부지역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화면너머 기상캐스터가 한겨울의 추위를 경고하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었다. 때마침 시베리아에 갈 참이었는데. 뭣모르고 갔다가 얼어죽기 딱 좋은 시기였다.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끝에 집안의 불을 다 꺼버렸다. 그놈의 방구석은 하다못해 잡는 시늉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기야 내가 어디 떠난다고 해서 잡을 사람이 있기는 할까. 내게는 부모도 형제도 없다.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그때 나는 누군가 날 강력하게, 옴짝달싹 못하게 붙잡고는 가지말라고 말려주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난 떠났다. 떠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변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오전 다섯 시. 캐리어가 생각보다 무거웠고, 버스와 공항철도를 번갈아타고 가다간 검사가 늦어질 것 같아 택시를 탔다. 금방 도착했지만 워낙 거리가 있다보니 비용이 꽤 들었다. 그래도 아낄 수 있었던 시간이며 에너지에 감사하며, 공항내 코로나 검사실로 향했다.

검사소는 오전 일곱시에 문을 열었다. 문열기 오 분 전까지도 불이 깜깜해서 내가 잘못 찾아온 건 아닌가 싶었다. 전전날 미리 예약한 덕분에 빨리 입장할 수 있었다. 검사도 금방 끝났다.

 “그런데 오늘 열한시 십오분 비행기인가요?” 내 서류를 몇 장 훑어보던 의사가 물었다.

 “네” 라고 나는 대답했다.

 “이거 좀 촉박할 수도 있겠네요. PCR은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진 세 시간 정도 걸리거든요.”

 “에…세 시간이요? 한 시간이 아니었나요?”

 “그건 항원 검사이고. PCR은 세 시간에서 길게는 네 시간 정도 잡으셔야 합니다.”

 나는 당황했다. 도착하고 나서는 몰라도 출발할 때까진 그럭저럭 계획을 세워놨다고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계산이 어긋나버렸다.

 ‘그래도 탑승수속은 한 시간 전까지만 마치면 되니까’

 열시 쯤 결과가 나온다고 하면 탑승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미리 체크인이라도 해둘까 해서 창구로 갔지만 항공사 직원에게 “검사결과가 나와야 수속을 진행할 수 있다” 는 답변만 들었다. 역시 그렇겠지? 이러다 양성이라도 나오면 꼼짝없이 집에 가야할지도 모르고. 일단은 공항 어디에라도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해외로 나가기 위해 인천공항에 온 건 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이날처럼 한적하고 조용한 건 본적이 없었다. 사람이 많은 것도 복잡스럽고 싫지만. 그 넓고 광막한 건물 내부에 그렇게 인적이 뜸하니 쓸쓸한 느낌도 들었다. 조금 전 공항 내 어딘가 테러라도 일어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항밖으로 도망치고 없는 와중에 나처럼 눈치없는 인간들만 남아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코로나가 터진 후로는 해외에 나가는 게 처음이었지’

 해외는 무슨 국내여행도 다니지 않았다. 글쓰는 직업 특성상 집에서 나갈 일도 드물었다. 지난 1, 2년 동안, 나는 거진 방구석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최근 상황을 따져봤을 땐 공항에 사람이 뜸한 게 당연하다.

공항 2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조명이 창백해 눈이 부셨고, 수시로 안내방송이 울려대서 잠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 잠도 못 잤고 피곤했기 때문에, 꾸벅꾸벅 졸다가 테이블 위로 곯아 떨어졌다.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일어났을 땐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결과확인 문자는 오지 않았다. 혹시나해서 메일도 확인해보았다. 없었다. 이러다 정말 비행기 못 타는 거 아닌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결과가 나오는대로 서류를 뽑아서 냉큼 오면 될지도 몰라.’

 고만 끝에 검사소가 있던 터미널 옆건물로 가방을 끌고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 메시지함을 열어 맨 위의 것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인천공항 코로나 검사센터(서) 입니다.

 귀하의 PCR검사 결과는 negative입니다. 확인서 수령방법은

 문자는 정확히 열시 삼십분에 도착했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가방도 몸도 무거운데 바깥은 춥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와중에 체크인 카운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단 한 명 남아있던 직원에게 간청하듯 말했다.

 “헉, 헉… 죄송합니다. 결, 결과가 이제야 나와서…”

 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일단 팀장님에게 한 번 물어볼게요. 잠시만요.” 하면서 전화통화를 몇 분 했다. 네. 아까 그 승객분이에요. 너무 늦긴 했는데, 처리해드릴까요? 아, 아. 네. 지금요… 네….

 결과적으로 나는 비행기에 타지 못했다. 항공사 사람들도 인간인데 어떻게 사정을 봐주지 않을까…. 그렇게 속편하게 생각했던 것이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환불을 할 수 있긴 했지만 당일 취소라 수수료가 상당히 빠졌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왜 이렇게 멍청하게 돈을 날려버리고 있는 거지? 돈이 썩어 넘치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빚은 빚대로 늘었고, 일 년 가까이 책도 내지 못해 수입도 확 줄었다. 당장 다음달, 다다음달 형편을 걱정해야할 타이밍에, 나는 그냥 가서 죽어버리지 뭐, 같은 생각으로 도망치고 있었을 뿐이다.

그냥 집에 가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집에 혼자 돌아가서, 혼자 몸을 씻고, 아침이랑 똑같은 침대에 누워 짐을 풀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나 자신에 대한 기대는 좀처럼 가지지 않는 편이지만, 이거야 한심해도 너무 한심하지 않냐고?

 이미 떠나기로 한 길을 돌아갈 수는 없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새로운 항공편을 알아봤다. 잘하면 내일이라도, 모레까지라도 공항에서 노숙을 하며 버티다가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오후 4시 비행기를 발견했다. 당일? 당일 오후 4시라고?

몇 번을 다시 확인해도 당일이었다. 네 시간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확실했다. 항공기명이 공항내 안내판에도 나와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러시아 항공사였다. 북한을 관통해서 가는 덕분인지 나는 시간도 30분이나 짧았다. 뭐야, 이거? 진짠가? 심지어 운임도 전에 예약한 것보다 저렴했다. 결과적으로는 탑승 실패로 인한 수수료를 절반넘께 만회한 셈이 되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코로나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마음졸이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 체크인까지 지원했기 때문에, 미리 탑승수속을 처리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온라인 체크인 결과가 메시지로 왔다. 나는 그것을 여권과 함께 들이밀면서, 당당하게 탑승장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일이 잘 풀릴리가 없지. 역시나 내 앞을 가로막는 공항직원.

 “이거…보딩패스가 국내 공항이랑 호환이 안 되는 종류라 통과가 안 돼요.”

 “그럼 어떻게 하죠?”

 “카운터에서 직접 체크인 하시고 실물 탑승권을 받아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치만 H열 체크인 창구는 아직 안 열었던 데요… 지금은 온라인으로밖에는”

 “지금이 열두시 이니까… 두세시 쯤에 창구가 문을 열거에요.”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네.”

공항직원은 가차가 없었다. 전세계의 승객을 상대해야하는 장소라 그런 것일까.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더는 해줄 말이 없다는 듯이 여권을 도로 건넸다.

인천공항은 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전부 내 잘못이지만 그땐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시시각각으로 희망이 나는 다시 카페로 돌아가서, 또 다시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키고, 책을 읽다가 다시 잠들었다.

두시반 무렵에 뒤척거리면서 일어났다. 엎드린 채 너무 오래 잠들어서 허리가 아팠다. 학창시절땐 그 자세로 다섯 시간을 자도 허리 아픈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환자님 척추는 너무 예쁜데요. 그냥 운동부족이에요. 집에서 나와서 운동을 좀 하세요.”

 라는 동네 정형외과 의사의 말이 불쑥 떠올라서 심통이 났다. 젠장. 자기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프다고 온 사람한테 허리가 예쁘다느니 어쨌다느니.

 체크인 창구에는 이미 사람이 많이 있었다.

 ‘지금보니 텅 빈 것보다는 이게 한결 낫구만. 줄 뒤에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지.’

삼십분 쯤 지나서 내 차례가 왔다. 더 이상 내게는 결격사항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여권과 항공권이 있고, PCR 음성 확인서도 있으며, 가방에는 총도 칼도 백 미리를 초과하는 액체도 들어있지 않다. 비로소 러시아에 갈 준비가 다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창구직원이 “좋아요. 그럼 언제 한국에 돌아오세요?” 하고 물었다.

 “에, 언제 돌아오냐니요?” 전혀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던 나머지, 나는 터무니없도록 멍청한 얼굴로 대꾸하고 말았다.

 “돌아오는 항공편이 며칠이신데요?”

 “돌아오는 비행기는… 예약을 안 했는데요.”

 “네… 네?” 이번엔 창구직원이 나만큼 당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예약을 안 하셨다고요?”

 “네. 언제 어떻게 돌아올지는 생각을 안 해놓아서요.”

 직원분은 몇 초간 뇌가 멎은 듯 침묵했다. 그리고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 설명하기를, 러시아에는 90일동안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기는 하지만 돌아오는 항공권이 없이는 입국을 안 시켜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탑승권을 받으려면 아무 표라도 예약을 해두는 것이 좋다는 말을 했다.

 ‘구글링 할 땐 그런 얘기는 못 봤던 것 같은데….’

  지긋지긋한 코로나 재확산 때문에 입국 절차가 더 까다로워졌다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생각이었으므로, 대충 한 달 뒤에 있는 가장 저렴한 항공편을 찾아 임시로 예매해뒀다. 진짜 그걸 탈 생각은 없었지만. 행정적인 절차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탑승수속이 끝났다. 나는 탑승장으로 걸어 이동했다. 삼십팔번 게이트는 탑승장 중에서도 가장 깊숙하고 외딴 곳에 있었다. 어째 해외에 나갈 때면, 내가 타는 비행기 탑승구는 거의 이렇게 구석진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역시 인천공항은 나랑 맞지 않았다. 천칭자리나 사수자리인걸까? MBTI도 아마 ESTJ같은 거겠지. 지긋지긋하다. 이젠 정말 어디로든지 떠나서, 얼어죽든 굶어죽든 뒈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뭐가 있든 간에 이 등신 머저리 같은 공항보다는 낫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침내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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