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Feb 07. 2022

여로에서 (2)

나는 러시아가 싫어졌다

 국내선과 다르게 국제선은 비행기에 타는 순간 ‘이미 해외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항공사 국적이 바뀌면 더욱 그렇다. 물론 인천에서 출발하는 것이니만큼 심심찮게 한국말이 들리긴 했는데. 안내방송부터 승무원까지 모두 러시아어를 기본으로 쓰니 벌써부터 겁이 났다.

 ‘큰일났네.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억양도 어색하고 단어도 모른다. 또 소문대로 러시아인들은 표정이 없다. 분위기와 맥락만으로 내용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해보였다. 나는 정말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곳에 가고 있구나. 보통은 이럴 때는 통속적인 표현으로 기대반 걱정반이라는 말을 쓰는데. 나는 공연하게라도 그렇게 쓸 수가 없다. 떠오르는 생각의 대부분이 걱정 또는 후회였다. 기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비율을 따졌을 땐 전체의 일할조차 되지 않았다. 여행보단 귀양이나 피난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거기도 다 사람사는 곳이겠지? 하는.



기내식으로 기다란 에너지바 같은 것을 받았다. 이것도 기내식이라고 해야하나 싶은 메뉴였지만, 두시간 반밖에 안 되는 짧은 여정이어서 그것조차 상당한 호의인양 느껴졌다. 에너지바는 체리맛이었다. 그 수많은 과일중에 어째서 체리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할 것이다.러시아에 도착하고 나면 이렇듯 영문모를 일이 얼마나 일어날지 모르니까.

어째서 하필, 같은 질문은 사실 나 자신에게도 할 수 있었다. 그 많은 나라중에 어째서 러시아인가? 솔직히 말해 모르겠다.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의 소설 속 러시아를 동경해서일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문학속에 등장하는 러시아는 대개 제정이나 혁명 시기다. 한데 지금의 러시아는 우리나라와 똑같은 2022년을 살고 있다. 전보가 아닌 스마트폰을 쓰는 이상, 그곳은 소설속 러시아와 똑같은 공간이 될 수 없을 것이었다.

 그게 아니면 그저 항공편이 저렴했기 때문인가? 아니. 그것도 아니다. 같은 값이면 제주도나 후쿠오카를 갔어도 될 일이었다. 그쪽이라면 말이 안 통할 염려도 덜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편안하고 안락한 날들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결격사유였다. 나는 이 억지스러운 여정으로부터 뭘 원하는지 몰랐지만, 최소한 뭐가 아닌지는 직감하고 있다.

승무원이 건네준 입국서류를 작성하고, 책을 좀 읽다보니 금방 착륙안내방송이 떴다. 러시아가 이렇게 가까운 곳이구나. 뭔가 김빠지는데… 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육지가 눈이 쌓여서 하얗게 뜬 건 줄 알았다. 러시아이니까 눈이 많이 오는 건 당연하겠지. 근데 비행기 고도가 차츰 낮아지면서. 눈덮인 육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주로에 착륙했다. 공항 건물로 넘어가는 길에 ‘블라디보스토크’라고 쓰인 공항현판이 눈에 띄었다. 짐을 끌고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입국심사는 이십분 정도 걸렸다. 공항로비는 인천공항에 비하면 협소하다고 해도 좋을만큼 작았다. 한국말로 ‘편의점’ ‘환전소’ 라고 적힌 창구도 눈에 띄었다. 문이 닫혀있었지만.

나는 적당히 눈에 띄는 곳에서 유심칩을 샀다. 그래도 아직은 공항이라 적당히 영어가 통하는 것 같았다. 한 달 사용할 수 있는 유심칩이 오백 루블. 우리돈으로 약 팔천 원이다. 한국만큼 잘 터지지 않으리라는 건 감안해야겠으나 이정도면 꽤 저렴한 축이다. 로밍 요금제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공항내 환전소가 닫혀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예약해둔 숙소에 먼저 가기로 했다. 당장은 짐도 무겁고 해도 졌으니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었다.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까지는 차로 오십분 거리였는데, 현지 택시앱으로 알아본 운임은 천 루블 정도였다. 그렇게 공항입구에 서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웬 러시아 남자가 다가와서

 “택시??” 하고 물었다.

나는  “니엣(ㄴㄴ)”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팔다리 길쭉한 러시아인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듯, 계속해서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대는 것 같았다. 당연히 러시아 말이었다.

 “, .  유징 . 마이 택시 이즈 커밍 .”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가뜩이나 추워죽겠는데공항근처라 바람이 많이 불었다자꾸 귀찮게해서 짜증이  났다. 그런데 그때  남자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남자는 낡아빠진 청바지에, 모자도 바람막이에 달린 것을 대충 눌러쓰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택시 호객행위라도 하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노숙자라고 생각됐을 것이다. 이런 혹한의 날씨에 그런 차림으로 탑승객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여간 쓸쓸해보이지가 않았다. 반면 나는 어떤가. 도망치듯 다른 나라로 온 주제에, 두꺼운 바지와 외투 그리고 털모자로 몸을 감싸고 있다. 난 여기서도 좋을대로만 하려고 하고 있다….

뭐랄까 느닷없는 죄책감이 몰려와 “…하우 머치?”라고 물었다. 남루한 남자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휴대폰으로 입력해준 숫자를 보니 <1500> 이라고 써놓았다. 뭐야, 바가지라곤 해도 오백루블밖에 차이 안 나잖아. 이 정도면 좋은 일 한다고 치고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벗, 아이 돈 햅 캐시.”

 “오케이. 오케이이. 카드 오케이.” 남자가 어눌한 영어로 말했다. 하긴 개인택시 사업자이니까 카드기정도는 있는 거겠지. 또 러시아는 한국과 물가가 다르니까, 내가 덧붙여준 오백루블 정도만 해도 이 남자는 요긴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에게도 돌봐야할 가족이 있을 것이다. 결국 어디서든지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생의 미덕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남자를 따라가 택시에 올라탔다. 도요타 로고를 단 소형차가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며 공항도로를 빠져나갔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자는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러시아어로 뭐라 대화를 나눴다. 뭔 얘길 한 건지 모르겠는데 하하 웃는 걸 보니 친한 사이같았다. 정확히 어디로 갈 건지 묻기에 숙소 주소를 띄워보여줬다. 그러나 남자는 영어를 전혀, 전혀 못 알아먹는 것 같았고, 아주 간단한 말 한 마디를 하는 데에도 번역앱을 사용해왔다. 나는 그 남자가 러시아어로 말한 것을 그의 휴대폰이 영어로 번역하면, 나는 그걸 읽고 최대한 간단한 영어로 대꾸한다. 하지만 그것마저 못 알아듣으며 ‘거바류(써라)’ 하고 휴대폰을 건네왔다.

내가 할 말을 영어로 번역해서 거기 쓰면, 러시아어로 번역이 돼서 남자에게 보여졌다. 그마저도 제대로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시속 백킬로미터로 운전하면서 휴대폰 필담을 나누자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향하고는 있으니 문제없겠지? 지도보고 찾아가는 건데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런데 반쯤와서 남자가 번역앱에다 대고 뭐라 말을 하더니, 그걸 영어로 번역한 것을 내게 보여줬는데 대충 ‘근데 너 돈 어떻게 낼거냐’ 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응? 니가 카드 된다 그랬잖아.’ 라고 영어로 썼다. 남자는 그걸 몇 초간 읽다가 다시 러시아로 뭘 말하는 것이다. 앱은 그 말을 ‘유 돈 해브 캐시?’ 라고 번역했다 뭐지, 이건? 번역기 성능이 이상한가?

 몇 분간 대화를 더 나누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놈은 애초부터 영어라곤 하나도 못 하는 놈이었다. 내가 뭐라 말한 것에 ‘오케이, 오케이’ 한 것은 그저 알아듣는 시늉이었던 것이다. 일단 차에 태우고 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니까. 난 그것도 모르고 ‘그래도 이정도 의사소통은 되겠거니’ 하며 빤한 수법에 당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그런 태도에 얼탱이가 없어졌다. 그래서 가는 길에 아무 ATM이나 내려주면 거기서 돈 뽑아서 바로 주겠다고 했다. 돈 그거 뭐 얼마 한다고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담? 천루블인지 천오백루블인지 현금으로 줘버리면 끝나는 것 아니냐고.

 어렵사리 찾은 ATM에서 나는 곧장 이천루블을 뽑아 건넸다. 그러자 그 놈은 난감하다는 듯이 손을 내젓는데, 난 이게 뭐하자는 건지 몰라서 별 말도 안 한채 “?????”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놈은 그 염병할 번역앱을 또 켜서, 러시아어로 뭐라뭐라 하더니, 몇 초간 기다렸다가 내게 화면을 띄워보여줬다.

 ‘돈이 부족해’

 ‘뭐? 니가 천오백루블이라며’ 라고 나는 또 영어로 썼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그건 1인당 요금이고. 이 택시는 네 명이 탈 수 있는 거니까 따따블로 줘야지.’

“씨발,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본능적으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번역기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 휴대폰을 뺏어들다시피 하곤 ‘한국어>러시아어’ 설정을 찾았지만 한국어는 옵션 자체에도 없었다.

‘님 방금 뭐라고 한 거임?’ 그 새끼가 또 번역앱으로 물었다.

“추워죽겠는데 뭐라는 거야? 나가 뒤져” 나는 비로소 영어로 말하는 걸 포기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배는 고프고, 손은 시리고, 지금은 웬 노숙자 같은 놈이랑 현금인출기 앞에서 말싸움을 하고 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아무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삿대질까지 했다.

 “조또 간단한 영어도 못 알아먹는 이 짝퉁 서양인 새끼야”

 “너희는 서양인도 유럽인도 아니야. 러시아인이지”

 “니네가 왜 일본한테 쳐발렸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네 씨발.”

 그러나 놈은커녕 지나가는 그 누구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욕을 해봤자 못 알아먹으면 의미가 없다.

 나는 곧 포기하고, 놈이 말하는대로 육천루블인지 뭔지를 줘버리기로 했다. 안그래도 너무 긴 하루였고, 몸도 마음도 기진맥진해서 곧장 기절해버릴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왜인지 루블은 더 인출이 안 되고나중에 확인해보니 마침 카드 결제일이라 한도가 다 찬 것이었다가진 돈은 미리 은행에서 바꿔둔 달러밖에 없었다.

 “이런 씨발”

 나는 벌벌 떨면서 백 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던졌다. 잔돈도 딱히 없고 그냥 홧김에 한 짓이었는데. 놈은 그걸 휙 낚아채고 함박웃음을 짓는 것이다. 아무리 영어를 못해도 백달러가 얼마인지는 아는 거겠지? 역겨운 자식같으니.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탔다. 러시아 놈이 또, 또 번역앱을 써서 말하길, 자기는 잔돈이 없는데 어떻게 거슬러주냐고 물었다.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건 애초에 거슬러 줄 생각도 없는 것 아닌가. 어떻게 택시하면서 잔돈도 안 들고 다니냐고. 여기에 대해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걍 니 다 가져라’라고 대답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었다.

“쓰빠시바. 프렌드.”

“닥쳐, 씨발놈아.”

 택시는 곧 지도상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기 무섭게 바리바리 뛰어 트렁크에서 내 짐을 내려주는 놈의 모습을 보려니 진절머리가 났다. 내가 진심으로 자기 서비스에 감동한 줄 아는 건가? ‘너는 네게 많은 돈을 줬다. 기념으로 사진이나 찍는 게 어떠냐.’고까지 하길래, “나는 됐다. 이제 좀 가라. 가서 니 인생을 살아라”라고 했지만 역시 못 알아 먹었다. 결국 지멋대로 휴대폰을 꺼내 셀카를 찍길래, 나는 동양인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경멸적인 표정을 지어주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놈이 내려준 곳은 숙소에서 도보로 이십분이나 떨어진 어딘가였다. 나는 영하 십오도의 바람을 뚫으면서, 덜덜 바퀴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아 헤맸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민박이었는데, 진짜 무슨 비밀의 전자담배 판매점 같은 위치에 있어서 지도앱을 보고도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아홉시나 돼서 겨우 도착했고, 숙소 관계자가 도착하기까지 현관에서 십 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람은 골목 사정을 봐주지 않고 불어닥쳤다. 인간의 살갗은 너무 추워도 빨갛게 익어버린다. 뒤늦게 나온 안내인은 친절한 편이었으되 영어는 역시 못했다.

 방은 살이 녹아내릴  같이 뜨겁게 덥혀져있었다. 방금까지만해도 얼어죽을  했는데, 이제는  구석구석에서 더운 땀이 흘러나왔다.  극단적인 온도차이는 대체 뭘까. ,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모든  지친다. 심지어 방에는  명이   있는 이층침대가 놓여있었다. 에어비앤비 후기에 ‘가성비가 최고네요라는 코멘트가 있었는데, 그걸 이제야 이해할  있었다. 나와 같은 숙박료를  명이서 나눠냈다면 가성비가 좋았을 수밖에 없었겠지.

 대강 옷을 벗고,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배가 고팠다. 그러나 시간도 늦었고 밖에 나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시련을 겪으면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나는 공용부엌을 찾아 들어갔다. 거기에 먹을 것이라곤 유리병 속의 각설탕 밖에 없었다. 하는 수없이 생수 한 잔과 각설탕 몇 개를 챙겨 방으로 돌아왔다. 설탕에서는 설탕맛이, 물에서는 수돗물 맛이 났다.

 “집에 가고 싶어….”

 러시아에서의 첫 날 밤이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여로에서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