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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Feb 15. 2022

여로에서 (8)

시선도 상황도 바뀌는 것들 뿐이다


 “신세 많이 졌어요. 마리야에게 꼭 고맙다고 전해주실래요?”

  나는 체크인이 끝나고 나서 한 마디 덧붙였다.

 “네. 그럴게요”

 카운터 직원이 대답했다.



 나는 따뜻한 숙소에서 나와 역까지 걸었다. 껍질이 하얀 가로수 사이로 먼지 같은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자세히보니 먼지처럼 작은 눈발들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눈이 내린다. 대부분의 길에는 염화나트륨이 잔뜩 뿌려져있지만, 인적이 뜸한 길은 아스팔트대신 얼음을 깔아놓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끌거린다. 그런 곳에서는 신발보다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게 더 안전할 것 같다.

 빙판길에 대한 염려는 일찌감치 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접지력이 좋고 방수도 잘 되는 신발을 신고 왔지만, 미끄러짐을 백 퍼센트 방지해주지는 않으므로 최대한 조심조심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현지에 사는 러시아인들조차 걷다 미끄러져 넘어질 뻔하는 모습을 몇 번 봤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러시아인들은 길에서 뛰거나 서두르는 모습이 없다. 한국인들과 비교하면 좀 우스꽝스러울만큼 느리게—나이가 지긋하신 분일수록 더욱—보폭을 좁혀 뒤뚱뒤뚱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횡단보도 신호가 삼사 초쯤 남았을 땐 그냥 멈춰서 다음 파란불을 기다린다. 그런 경향은 여유로운 성격 덕택이라기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는 지혜의 일종같다. 하기는 이런 곳에서 뛰다 넘어졌다가는 무릎이든 손이든 엉덩이든 뼈가 깨질 게 뻔하고, 잘못해서 머리부터 처박으면 즉사하게 될지 모른다. 사인이 ‘이렇다할 이유 없이 좀 빨리 가겠다고 하다가 미끄러져 죽음’이었다가는 저승에 가서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고.

 아무튼 그런 시베리아 보법(내맘대로 지은 이름)을 구사하며 역까지 걸어가는데 바지가 자꾸만 흘러내리는 것이다. 살이 좀 빠졌나? 멀리 오긴 했어도 밥은 잘 먹고 다니는 편인데… 싸구려 벨트라도 하나 사서 동여맬까 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벨트가 없어서 곤란한 일은 없었고, 그런 물건들은 막상 사놓고 보면 자주 안 쓰게 돼서 곧 짐짝처럼 돼버린다. 기왕 낭비한다면 다른 쪽에다 돈을 쓰는 것이 낫다.


 치타에서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열차를 예약해뒀다. 오후 아홉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오후 세시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예약칸에 이등석밖에 나오지 않아서 그걸로 예매했다.

 역까지 걸어가서 캐리어를 맡겼다. 웬 아주머니 한 명이 짐 보관함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길래, 이래저래 바디랭귀지를 써서 가방 넣는 걸 도와주었다. 러시아에서는 줄곧 도움을 받기만 했었는데. 작게나마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된 것이 조금 기뻤다.

 역건물에 딸린 편의점 같은 곳에서 고로케처럼 생긴 빵과 생수를 하나씩 샀다.  안에는 커다란 고기조각이 들어있었다. 생수인  알고  물에선 그윽한 사과향이 났다.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다.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내부를 찬찬히 뜯어봤다. 대합실 분위기는 어딜가나 엇비슷하다. 휴대폰을 보는 사람, 걸쳐놓은 짐에 기대 졸고 있는 사람,  앞에 놓인 중형 텔레비전과, 거기서 나오는 드라마인지 영화를 시청하는 노인들. 모두 어디로들 향할 준비를 마치고 시간을 죽이고 있다. 나는 어느 철도역에서나 가만히 앉아서, 멍한 표정으로 그런 모습을 지켜보곤 했었다. 이런 무미건조한 관찰행위를 나는 선호한다.



그렇지만 기차탑승까지는 아직 반나절이 넘게 남아있었다. 기차역은 글을 쓰기에 적당한 장소도 아닌데. 그렇다고 러시아씩이나 와서 역에 있는 사람들 얼굴만 구경하기도 왠지 멋쩍다… 그러다 문득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에 꼭 한 번 가봐. 나한테는 가장 인상깊었던 곳이야” 라던 안드레이의 말이 생각나 발길을 옮기기로 했다.


  러시아의 역사에 대해 그리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안드레이에게 듣고 찾아본 것을 최대한 요약해 서술해보자면 이렇다. ‘데카브리스트’는 구 러시아 제국의 체제에 저항해 봉기를 일으켰던 청년 장교들을 일컫는 말이다. 극소수의 기득권층—귀족과 왕족—이 대부분의 농노를 착취하고 있던 당시 정부를 뒤엎고 대대적인 개혁을 도모했으나, 차르의 군대에 막혀 잔혹하게 진압당한 뒤 머나먼 시베리아 땅으로 유배됐다고 한다.

 “근데 왜 같은 나라 장교들이 왜 반란을 일으켰지?” 나는 열차칸 구석에 기댄 상태로 안드레이에게 물었었다.

 “음,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혹시 월급을 안 줬나? 사실 한국 역사에도 그런 케이스가 있거든. 군인들 봉급을 제대로 안 줘서 반란이 일어났다가 진압되는…”

 “그런 건 아니고. 나폴레옹 전쟁을 치르면서 자유주의 영향을 받은 게 컸지(안드레이는 이부분을 설명하는데 유독 힘들어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러시아의 농노제는 정말 야만적이었거든. 루크. 러시아 건물들을 보고 엄청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지. 일기에도 썼어. 한국에도 큰 빌딩은 많지만… 러시아는 정말 웬만해서 다 큰 것 같더라고. 어떻게 다 저렇게 지었나 싶어”

 “맞아. 건물들이 쓸데없이 크고 개성이랄 것도 없지. 왜냐하면 대부분의 건물이 노예를 착취해서 세워진 것들이거든. 데카브리스트들은 그런 구조가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거야. 그렇지만 실패해서 시베리아로 쫓겨났는데…그런데 오히려 그들 덕분에 극동지역 문화가 발달하는 계기가 된 것이 흥미롭지…”

 “아하나는 대번에 이해가 됐다. 도시 전체에 그렇게 거대하고 장엄한 건물들이 늘어서있는 이유. 거기엔 건축문화의 발전이나 근면성실한 민족성 같은 것만으로 이룩했다기엔 이상한 점이 많았던 것이다. 처음에 ‘나라 자체가 커서 그렇겠지 ‘인구가 원체 많으니까하고 이해했지만, 갈수록 필요이상으로 비대하고 압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없었다. 볼수록 군더더기 투성이인 구조가 눈에 띄었다.



 러시아의 건물들이 볼품없이 큼직큼직할 뿐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로 잰듯이 평평한 지붕과 처마, 층 사이에 위치한 코니스나 갖가지 장식이 새겨져 있기도 했고, 작정하고 예술성을 과시하려는 듯한 부분도 있다. 순수한 미적 관점으로 봤을 때. 러시아 건축물들은 대체로 아름답고 고풍스러워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동화속 세계나 테마파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러한 장식성의 동기였다. 실용적이라기에는 비어있는 구석이 많은데, 반대로 멋을 부렸다고 보자니 뭐랄지 기계적이고 다소 성의없어 보이는 느낌이 있다. 사업가라면 비용을 최소화했어야 했고, 예술가라면 어딘가 집요하게 파고든 분위기가 있기 마련인데. 러시아의 건물들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 위치해있다…  그 모든 것들이 그토록—기득권에 속했을 장교들마저 ‘이건 좀 아니다’라고 여겼을만큼—야만적인 노예제로부터 나왔다면 많은 부분에 납득이 간다. 무수히 많은 노예를 부려 만드는 것이라면 효율적일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짓는데 드는 수고로움보다는 충분한 예산과 자재가 있는 지가 더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러시아의 풍경이 사뭇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설원 속 도시가 내뿜는 아름다움 속에, 그야말로 죽도록 일하다 사라진 이들의 그림자가 어려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모르고 살아가는 쪽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이 노동자의 피땀과 착취적인 사회구조로 만들어졌다니. 그런 건 내게 있어 지나치게 혁명적인 발상 같다.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은 치타 도심부와는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었다. 주위 건물들과 달리 나무로 지어진 곳이라 비교적 눈에 잘 띄는 편이었다. 설명을 듣자하니 1600년대에 교회 건물로 지었던 것을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해 쓰는 것 같았다. 외딴 위치 때문인지 방문자가 많은 것 같진 않았다. 약 한 시간쯤 둘러보다 나오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객이라고는 나 하나 뿐이었다.

 데카브리스트들. 실패한 혁명가들. 거대한 제국에 저항하다 쫓겨난 자들. 핍박받는 자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고, 고향으로부터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추방된 이들. 그런 인물의 흔적들이 작고 초라한 목조교회에 간직되어 있다. 어째서 안드레이가 무수히 많은 시내의 미술관들, 도서관들을 제쳐놓고 이곳을 가보라고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관람을 마친 나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왔다. 변기에 뚜껑이 없었지만 되는대로 처리했다. 그사이 카톡에는 편집자로부터의 연락이 와있었다. 마감기한을 초과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편집자는 마감이 더 늦어지는 것에 대해, 기한을 놓치면 마케팅팀에서 제재가 들어올지도 몰라요, 하고 난색을 표시했다. 기껏 열심히 써서 책을 내놓았더니, 일정착오로 홍보가 안 된다면 서로에게 곤란하다. 나는 다가오는 주말에 이미 작업한 곳까지를 최대한 정리해서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편집자는 ‘아, 러시아에서 쓰고 계신 일기는 저도 잘 보고 있습니다’ 라고 덧붙였다.

 난 혼자 찔려서 ‘일기 쓰느라 일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건 그냥 기록일 뿐이에요’ 하는 식으로 변명했다. 그랬더니 편집자는 ‘마감이 늦은 건 그냥 늦었다는 것뿐’이라며, 거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개의치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배려가 너무 고마워서 곧장 근처 카페를 찾아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카페라고 하면 커피와 디저트만 파는 곳이 아닌, 적당히 퀄리티 있는 식사도 내오는 곳이 대부분이다. 식당까지 겸하는 곳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자니 민망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차례만 깊게 집중하고 나면주위의 것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게 된다. 커피를 시켜놓고선  식을 때까지 손도  대고, 누가 부르는 소리도  들을만큼 무감각해진다. 나는  꼭지의 글을 갈무리하고  후에야 내가 배가 고프다는 것을, 그리고 기차 시간이 임박해 저녁먹을 시간도 여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급히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운전사는 세르게이라는 이름의 청년이었다. 우즈벡에 온 말 많고 잘 웃는 청년이었는데, 그 덕분에 신속하면서도 심심하지 않게 역까지 갈 수 있었다.

 “다 스비다냐”

나는 친절한 세르게이에게 작별인사를 한 다음 역에 들어가 짐을 찾았다. 보관시간을 조금 초과해 추가 비용을 지불했지만. 어쨌거나 늦지않게 기차에 탈 수 있었기에 다행인 일이었다. 이등석 객실에는 말없고 덩치큰 남자가 한 명, 등산복 차림에 무뚝뚝한 금발 여자가 한 명, 살집이 좀 있고 잘 웃으며 털털해보이는 여자가 한 명씩 자리해 있었다. 나는 가능한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짐을 대강 정리한 뒤 침대에 누워 다시 글을 썼다.

 이르쿠츠크로 가는 여정에서는 특이하게도 기내식 같은 것이 딸려 있었다. 카페에서 요기를 하고 왔기 때문에, 나는 받아든 음식을 머리맡에 두고 내일 아침에 먹기로 했다. 승객들은 하나 같이 피곤해보이는 사람들로, 자정이 가까워오자 하나둘 이불을 덮고 잠들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 네 명이나 있는 것치고는 신기하리만큼 고요했다. 하긴  안드레이처럼 영어도 잘하고 붙임성도 좋은 여행객이 매번 나타나줄리 없고, 이르쿠츠크까지는 열아홉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니 애써 친근하게 굴 필요도 없다.

 ‘그래도, 다들 자니까 키보드는 조용히 두드려야겠군…’

 그날밤 열차는 참으로 조용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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