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 죽겠다
눈을 감고 있는데 시야가 번쩍거렸다.
잠에서 깰 때 나는 발가락 끝쪽에서부터 감각을 되찾는다. 어디가 먼저 가려워져서 거길 긁으며 일어나거나, 촉각이 회복되기도 전에 눈을 먼저 뜨게되는 일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날처럼 편도 깊은 곳에서부터… 목 뒷부분과 후두부 부근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과 함께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설령 바보라고 해도 ‘무언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쯤은 알게 된다.
목이 엄청나게 부어서 침을 삼킬 때마다 따끔거린다. 이마에 손을 대자 화-한 느낌과 함께 열감이 돈다. 사지에 근육통이 일렁거리는데, 운동처럼 건전하고 정상적인 경로로부터 온 통증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시기에 이런 증상들이 동시에 일어났다면. 확인해야할 사항은 정확히 하나로 좁혀진다. 이젠 그것 이외에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근처에 있는 약국 세 곳을 돌며 자가검사키트와 종합감기약을 한 개씩 사왔다. 러시아의 약국 물가는 슈퍼마켓처럼 획기적이지 않았다. 그 두 품목을 사는데만 이천루블 가까이 썼다. 이틀치 숙박료와 맞먹는 돈이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긴 해도. 이런 와중에 돈걱정을 하고 자빠진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머리가 더욱 아팠다.
숙소로 돌아와 문을 닫고, 감기약을 한 알 삼키고, 조심스럽게 검사키트를 뜯어 열었다. 영어로 된 설명서는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인터넷도 검색해보고 박스 뒷면에 인쇄된 그림도 참고해가면서, 지하철탑승권 모양의 판별보드에 검사용액을 떨어트렸다.
—내심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랐다. ‘이 병변은 분명 심상찮은 것이다’ 라고 확신에 가깝게 생각하는 한편으로, 그냥 조금 심한 몸살감기에 걸렸을 뿐이길 간절히 희망하고 있었다. 최신유행 애물단지 바이러스의 발현이 아니라… 그저 한 박자 늦게 러시아의 추위를 실감한 신체가 한바탕 크게 투덜대는 것쯤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리가 없지.
“으… 흑, 헉, 아니야… 아닐 거야.”
나는 침대 프레임 밑에 쭈그려 앉아서, 괴로운 숨소리와 번갈아가며 그런 혼잣말을 했다. 아니라고. 이건 두 줄이 아니라고. 그냥 처음에는 다 희미하게 표시되다가, 시간이 갈수록 옅어지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더욱 또렷하게 표시되는 빨간선. 두 줄…
양성이었다.
색약이 심한 사람도 구분할 수 있을만큼 또렷한, 아무리 제 좋을대로 보고 싶어도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새빨간 점선 한 쌍이 까마득한 간격을 사이에 놓고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
말이 안 통하는 타국 한복판에서, 가장 가까운 영사관조차 천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진 도시에서, 전염성이 상당한 질병에 걸린 것이 거의 확실해졌을 때-나는 한순간 ‘그냥 모른척해버리면 안 될까’ 라는 강렬하고 설득력있는 유혹에 휩싸였다. 어차피 내가 말을 안 하면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어차피 러시아는 마스크 안 쓰고 다니는 사람 천지고, 내가 아니더라도 하루에 수십만 명씩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하필 그따위 생각을 할 때. 지금은 출근하고 없는 말많은 나탈리아와 무뚝뚝한 라파엘 부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뒤이어 나탈리아 뱃속에 있을, 부풀기로 보아 몇 개월 뒤에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칠 아기의 존재도 떠올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임신부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확하게 알려진 바 없지만… 이런 허접한 궤변으로 넘기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상황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으악! 씨, 발!! 씨이,이, 발!! 이런 씨, 발!!”
나는 아무도 없는 아파트가 다 떠나가도록, 현기증으로 울렁대는 머리가 곧 터져나가도록 크게 소리쳤다. 자가검사키트를 벽쪽으로 집어던졌다. 열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통증으로, 팔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엎드려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는 검사를 하지 않아요’
간호사가 건넨 번역앱에는 그렇게 쓰여있었다. 나는 마스크와 넥워머로 코와 입을 꽁꽁 감싼채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 병원 응급실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응급한 기미가 없는 장소였다.
나는 가능한 가까운 곳 중에, 가장 큰 병원을 찾아간 참이었다. 한국에서는 큰 병원이나 보건소에 선별진료소가 차려져 있으니까, 대충 러시아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눈발이 흩뿌리는 영하 십도의 날씨, 뇌의 명령을 맹렬히 거부하는 몸뚱아리를 이끌고 가서 알게 된 것이라고는, 러시아 병원에서는 PCR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한가지 사실 뿐이었다.
나는 말 한 마디 안통하는 러시아 도시의 한 가운데에 다망히 서있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르쿠츠크에 있는 총영사관에 긴급전화를 걸었다. 꽤 오랫동안 전화연결음이 들렸다. 수화기는 젊은 남자직원이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르쿠츠크 총영사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 저, 저저, 안녕,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그, 그게… 제가, 제가…” 나는 눈물도 안 나오는데, 자꾸만 우는 사람처럼 말을 더듬게 되는 게 싫었다. 그 순간 내게는 누군가 ‘무슨 일이냐’라고 한국말로 물어봐주는 것이, 나처럼 더럽고 추잡한 존재에게 버려지기에 너무 아까운 종류의 친절 같이 느껴졌다. “아, 아침부터 목이 너무 따가워서요. 약국에 가서 자가검사키트를 샀는데… 두 줄이 나와버려서… 병원에 와서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봤는데…”
두서없는 상황설명을 잠자코 듣던 영사관 직원이 “저, 선생님. 일단 진정하시고요…”하고 운을 뗐다.
“지금 크라스노야르스크라고 하시면… 사실 여기랑은 거리가 굉장히 떨어진 곳이라, 실질적으로 도와드릴 방법이 없기는 합니다. 혹시 그곳에 혼자 계시나요?”
“네”
“가족이나 친척, 아는 사람도 없고요?”
“네”
“그럼 지금은 어디 묵고 계세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아파트에서 개인실을 쓰고 있어요.”
“개인실이라고요. 아파트의?”
“네… 지금은 출근을 하고 없지만, 괜히 피해를 끼칠까봐… 일단은 검사를 받으려고 밖에 나왔는데…”
영사관 직원은 내게 일단은 숙소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그리고 공공기관에서 선별진료를 담당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러시아는 도시 곳곳에 위치한 사설검사소에서 돈을 주고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것, 원하는 언제든 가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닌 사전에 전화로 예약을 하고 가야한다는 것을 차례로 이야기해주었다.
“다행히 그 부분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크라스노야르스크에 있는 검사소를 몇 개 알아보고, 예약이 가능한지 제가 전화를 해본 다음 말씀드릴게요. 그때까지는 쉬고 계세요. 약은 있으신가요?”
“코로나 약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종합감기약을 사서 먹긴 했어요… 저, 근데 러시아는 PCR 검사 비용이 어느 정도 되나요…?”
“대충 이천루블 정도 선이에요”
“그렇군요… 만약 검사를 했는데요. 양성이 나오면 어떻게 되나요? 병원에 입원해야하는 건가요?”
“아뇨.” 직원은 그 점에 있어서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듯이, 무뚝 단호한 어투로 잘라 말했다. “러시아에는 이미 코로나 환자가 많아서, 위중증 환자가 아닌 이상은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요. 사실 입원을 한다고 해도 시설이 열악한 편이기도 하고요. 보셨다시피 러시아는 마스크도 잘 안 쓰고 다니고, 코로나에 대한 인식자체가… 좀 그렇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경우에는 젊으신데다가 접종도 2차까지 맞으셨으니까. 며칠정도 잘 먹고 잘 쉬다보면 금방 회복이 될 테니 너무 걱정마세요. 아무래도 숙소는 혼자 사용하시는 곳으로 옮겨야겠지만요.”
나는 직원의 말대로 아파트에 돌아와 쉬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미리 교환해둔 카톡으로 연락이 와서, 오후 몇 시에 어디로 가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예약을 해두었으니 꼭 여권을 챙겨가시라는 안내를 받았다. 나는 이런 상황에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린 다음, 시간에 맞춰 검사소에 가서 PCR검사를 받았다.
검사소는 작은 규모의 동네 치과 같은 분위기였다. 나말고는 검사받으러 온 사람이 없어 로비가 휑했고, 간호사들은 역시 영어를 하지 못해서 의사소통에 번역앱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접수 과정에 있어선 영사관 직원의 말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다짜고짜 여권을 내밀었을 때는 눈을 휘둥그레뜨고 ‘뭐 어쩌라는 거지’ 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이민카드를 내밀었더니 “아아~” 하고 바로 서류 몇 장을 내밀며 서명할 곳을 짚어주었다.
검사 자체는 일분도 안돼 끝났다. 간호사가 ‘투모로우’ ‘투피엠’ 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아마 내일 오후 두 시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 같았다. 나는 짧게 인사하고 검사소를 나와 아파트로 되돌아갔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밥을—정확하게는 포비에트에서 쌀’국수’를—먹었던 나탈리아에게 ‘오늘 아침부터 내가 졸라게 아팠던 나머지 자가검사키트를 돌려봤더니 양성반응이 나왔으며, 영사관의 도움을 받아 PCR검사까지 받고 왔는데 내 느낌이나 몸상태로 미뤄봤을 때 거기서도 양성 뜰 것 같다. 일단 오늘 밤까지는 이 방을 쓰다가 내일 당장 혼자 쓰는 아파트로 옮길 예정이다’ 라는 문자를 보내는 데는 약간의 용기와… 나름대로의 결단이 필요했다. 내게 그렇게 잘해준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도, 미움받고 싶지도 않은 동시에, 아무 것도 속이고 싶지 않고 피해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혼재했다.
‘그냥 돈만 놔두고 나가면 될걸, 괜히 쓸데없는 말을 꺼냈다가 스트레스만 주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결국은 ‘옳은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나탈리아. 저는 아마 양성이 나올 것 같아요. 몸이 많이 아프고 앞으로의 여행도 걱정이지만, 당신과 라파엘 그리고 뱃속의 아기가 저 때문에 위험해지지는 않을지 너무 무서워요. 테스트 결과는 내일 나온다고 해요. 격리 생활을 위해 며칠간 혼자서 쓸 수 있는 아파트를 예약해두었어요. 하지만 내일까지는 이 방 말고는 갈 곳이 없어요. 그러니 안전을 위해 저와 제가 있는 방 근처로는 오지 마시고, 내일 당신들이 출근하고 난 뒤에 짐을 싸서 더 이상의 접촉없이 여길 떠날게요.
그렇게 중요한 내용을 길게, 형편없는 영어실력을 활용해가며 보내놓고 나니 극심한 현기증과 함께 뇌리가 활활 타서 녹아내리는 듯한 두통이 몰려왔다. 헐레벌떡 약 두 알을 빼먹은 다음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오후 여덟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사이 문 밖에서는 인기척이, 일터에서 돌아온 나탈리아와 라파엘이 무어라 심각한 내용의 대화를 주고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쯤 뭘 이야기하고 있을지는 자명했다. 앞으로 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방식으로 대하고 처리해야할지 저들끼리 합의를 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여기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는데… 설마 이 시간에 쫓아내거나 하진 않겠지?’
사서하는 근심, 몸 구석구석을 꼬집는 듯한 통증에 뒤섞여 몸부림치고 있을 즈음.
띵! 하고 문자메시지가 수신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올게 왔구나’ 하고 수신함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루크. 세상에, 걱정말아요. 전 완전히 이해했으니까요. 당신은 정말 책임감있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둘 다 백신을 맞았지만, 일단은 약을 두 알 먹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전혀 당신을 탓하지 않아요. 루크, 당신만 괜찮다면 일요일까지 여기 머물러도 괜찮아요. 그리고 라파엘과 이야기해봤는데, 당신이 원할 경우에 격리기간동안 지금 비어있는 아파트를 열어줄 수도 있어요. 거긴 도심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고, 좀 허름한 곳이긴 하지만 생활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 그곳에서라면 당신이 원하는 만큼 계속 있을 수 있고, 필요한 약이나 음식은 우리가 가져다 줄수도 있어요. 비용은 필요없어요. 원한다면 언제든 이야기해요.’
문자를 읽으며 거의 울기 직전인 상태로 접어들었을 때,잠가둔 방문 바로 너머로 뭔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소리. 이 초간의 정적. 나탈리아의 목소리가 순서대로 이어져 울렸다.
“루크. 거기 있죠? 내 말 들려요?”
“…네, 들려요…”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명랑하게 대답해보려고 했지만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방금 보내준 문자 읽었어요.”
“그래요. 우리는 지금 괜찮아요. 마스크도 쓰고 있고요. 그냥 당신이 아픈게 걱정될 뿐이에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약을 먹고 자고 있었어요. 그리고 문자도…”
“문 앞에 따뜻한 물과 크랜베리즙을 놔둘게요. 감기에 걸리면 먹는 러시아 전통 음료니까요. 틈틈이 챙겨 마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해줘요”
“고마, 고마워요.”
“푹 쉬어요.” 라는 말에도 나는 푹 쉬지 못했다. 소리를 죽여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 크고 작은 보온병 두개가 놓여있었다. 때마침 부엌방향 통로에 서있던 라파엘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염려한 것과 달리 그는 전혀 화나있지도, 골치아파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세상 겸허한 눈빛으로—뭇 신사들이 벗어든 중절모를 가슴에 올려보이는—정중한 배려와 경의로 가득찬 동작을 한 차례 하고 안방으로 사라질 따름이었다.
목덜미 아랫쪽이 울먹, 하고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적어도 그런 소리는 내지 않으려고, 나는 끝까지 발악해야 했다. 보온병에 담긴 크랜베리즙을 쪼로록 따라마셨다. 정체모를 기이한 냄새가 방안가득 퍼졌다.
‘완전 맛없어…’
나는 그렇게 맛없는 액체를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끝까지 다 마셔보는 경험을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았다. 그러다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열이 펄펄 끓고 몸은 죽어가는데. 뭐라도 쓰다가 잠들어야겠다는 미신적 집착이 새벽껏 질리지도 않고 계속해서 찾아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