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볼 수 없더라도
기분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도 꿈자리가 사납고 우중충한 편의 인간인데, 러시아를 돌아다니는 중에 꾼 꿈은 그 중에서도 더 종잡을 수 없고 해괴한 것들이 많았다.
이날 꿈에는 진주누나가 나왔다. 진주누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외가친척 중 한 명인데, 그마저도 아주 어렸을 때 몇 번 본 것이 전부라 ‘진주’가 진짜 본명인지 집에서 부르는 별명 같은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누나는 나같은 친척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도 긴가민가할지 모른다. 다만 나는 살면서 ‘친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얼마 없었으므로, 이렇다할 접점이 거의 없었음에도 그 몇 안되는 존재가 뇌리에 박혀있는 것이다.
다만 내게 있어 친척들이라고 하면 타인이나 다름없거나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친해지기 불리한 관계들밖에 없었다. 그건 확실히 내 잘못은 아니었고—일곱여덟살 짜리가 어떻게 그런 잘못을 할 수 있겠는가?—족보의 문제였다. 친가쪽에선 환영받지 못한 결혼에, 아버지가 요절하는 바람에 일찌감치 관계가 파탄나버렸을 뿐이지만.
외가쪽은 그보다 몇 차원 복잡한 면이 있었다. 내가 아는대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최소한 두 번 결혼했고, 외할머니도 두 번 결혼했다. 그러나 두 분 에게는 서로가 각각 두 번째 관계였으므로, 엄마와 나는 어디를 가든 애매하고 소외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외가에 있던 사촌형들과 누나에게 나는 배다른 고모의 아들이자 뭔가 좀 애매한 사촌동생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동생이었기 때문에, 형들이든 누나든 만날 때마다 친절하게 잘 대해주려고 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특히 가끔 만난 진주누나가 날 보고, “빈이, 많이 컸네”하고 나지막이 말해주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시기 내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누나말고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다른 친척은 만날 수도 없었고, 엄마는 나를 지겨워했다. 타인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외동아들이었던 나는 거의 항상 형이나 누나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대구에 있던 외갓집에는—엄마와 달리—내게 잘 대해주는 사촌형누나들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명절때마다 ‘이번에는 외갓집 안가?’하고 엄마를 들들 볶아대다가 크게 혼나곤 했다. 한 번은 엄마가 술을 먹고 ‘네가 정말 거기서 환영받는다고 생각하느냐’고 퍼붓는 바람에 남몰래 펑펑 운적도 있다. 그렇게 졸라대는 것조차 외할아버지가 병중에 돌아가신 뒤로는 하지 못했으니 좀 안쓰러운 얘기다.
하여간 그 잘생겼던 사촌형과 예쁜 진주누나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이미 결혼을 해서 자식을 두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엄마가 그렇게 말한 뒤로는, 나는 정말 내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쌩뚱맞은 재등장은 무엇인가. 내 몇 안 되는 혈연관계와 러시아 땅 사이에 무슨 접점이 있다고.
꿈속에서 진주누나는 7층짜리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었다. 왜 목욕탕이 7층씩이나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꿈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사촌형들은 3, 4층 쯤에 있는 열탕에서 몸을 덥히고 있었다. 나는 1층부터 7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건물을 둘러보다가, 때마침 역근처를 배회하던 공룡 때문에 좁아터진 골목으로 부리나케 도망치다가 잠에서 깼다… 글로 고쳐쓰면 좀 그럴듯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써놓고 봐도 전혀 그렇지 않아서 조금 속상하다.
나는 숙소에서 눈을 뜨자마자 대사관으로 향하는 차를 탔다.
입구에서는 러시아 도어맨과의 짧은 실랑이를 거쳤지만, 다행히 전날처럼 쉬는 날도 아니어서 어떻게 어떻게 영사실 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영사실 내부는 한국식 관공서를 그대로 빼다박아놓은 느낌이었다. 이단짜리 책꽂이에 있는 책들도 전부 한국어책들, 그것도 동네병원 로비나 주민센터 대기열에 꽂혀있을 법한 것들로만 엄선돼 있었고, 그 위에 붙은 삼성 벽걸이 TV엔 연합뉴스 채널을 무음으로 틀어놓았다. 실수로라도 ‘여기가 한국이 아닌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지 않도록 완벽한 한국을 구현해놓은 것이다. 거기에 한 일 분쯤 앉아있으니 놀랍지도 않았다. 실제랑 구분이 되지 않을만큼 너무 똑같이 그린 그림을 봐서 금방 김이 새는 느낌 같았다.
그러나 대사관 직원은 한국어를 잘 구사할 뿐이지, 그다지 러시아 직원과 구분되지 않는 공감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내가 ‘QR코드가 없어서 아무데도 못 갈까봐’ 걱정하는 일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저는 여기 살지만 QR코드를 찍은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제가 본 기사나 공공 미술관 안내문에는 ‘QR코드가 없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캡쳐한 화면을 보여주려고 사진 앱을 뒤졌다. 그러나 직원은 ‘그런 건 볼 필요가 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뭐, 확실하게 하려면 항원검사나 그런 걸 하셔야 할텐데. 아마 발급이 어려우실 거에요. 아무래도 외국인이라”
“발급이 어렵다고요?”
“네. 비자를 받고 오신 것도 아니고 여행객이시다보니”
그야 따지고보면 여행이기는 하다.
…그런데 여행이라면 미술관도 가고 박물관도 가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도 둘러보고 하는 것 아닌가? 근데 여행객이라 거기에 필요한 QR코드를 발급받는 게 불가능하다고?
내 머저리 같은 뇌기능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논리회로였다. 결국에는 “뭐. 그냥 알아서 가 보셔야할 것 같은데…”라는 직원의 말을 끝으로 대사관을 빠져나와야 했다.
‘전혀 도움이 안 됐잖아. 이 대사관…’
이럴바에야 차라리 이르쿠츠크에서부터 나를 신경써준 그 영사관 직원 분께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나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관할지역이 다른데 더 번거롭게 할 수는 없는 노릇… 하는 수 없이 번역앱을 들고 가장 가까운 비자관련 러시아 관공서에 들이받기로 결심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여권공증이 있어야 합니다’ 라고, 관공서의 입구 직원이 내민 휴대폰에 적혀있었다.
‘저는 그걸 여기서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요’ 내가 휴대폰을 내밀어 보여줬다.
‘그걸 위해서는 여권이 필요합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권은 여기 있는데요’
‘러시아어로 번역된 여권이…’
“악! 씨발!!” 나는 관공서 입구를 빠져나오면서, 제 화에 못이겨 아스팔트 바닥에 발을 세게 굴렀다. 퍽, 퍽, 하는 소리가 퍼지자 지나가는 주민들 몇 명이 나를 힐끔 보고 지나갔다. “미술관에 가려면 QR코드가 필요하고, QR코드를 받으려면 공공의료서비스에 등록이 돼있어야 하는데, 공공의료서비스에 등록하려면 외국인 인증을 받아야 하고. 그 외국인 인증에는 여권이 필요하지만 러시아어로 번역된 공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공증은 또 여권이 있어야 한다고? 이게 뭔… 씨… 으아아악.”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근처 스시집에 들어가 천 루블짜리 식사를 해버렸다. 그냥 평범한 롤초밥들이었는데 모스크바라 그런지 물가가 만만찮았다. 그래도 배가 부르니 확실히 기분이 나아져서, 근처 카페에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갈 참이었다.
스타벅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 세 명은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얼굴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움직임이며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악센트가 꼭 한국인 일행 같아 보였다. 몰래 귀를 기울이면서 무슨 언어로 대화하는 지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카페가 시끄러웠던 통에 그것만으로는 온전히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결정적인 건 카운터 직원과의 대화였다.
“투, 투… 포크! 예앗, 땡큐! 쓰빠씨바!”
아무래도 한국인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잘하면 그 일행에게 가서 QR코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물어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비록 대사관 직원에게는 시원찮은 답변밖에 못들었지만… 이 복잡한 시기에 러시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한 가지 문제는 세 명의 일행이 모두 젊은 여자분이었다는 것. ‘잘못하면 주제도 모르고 집적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왠지 내 옷차림이며 행색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왼쪽 주머니 끝이 뜯어진 코트에 꾀죄죄한 몰골, 지저분하게 긴 머리카락에 땀에 절은 모자까지. 무리지은 젊은 여자에게 말을 걸기에는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말을 걸자마자 “거지인가? 으, 기분나빠” 하고 자리를 박차고 떠날지도 모른다.
‘오히려 누가 봐도 개수작부리는 옷차림은 아니니까. 오히려 순수하게 받아들여줄지도…’
QR코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모처럼 온 모스크바에서 노트북만 두드리다가 시간이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이천이십이년 삼월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시점에서의 러시아 한복판’에서 도움이 될만한 여행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나로서는 매우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힘겹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ㅈ, 저, 저저젖ㅈ 저저, ㅎ호혹시 한국인이세…요…?”
“—엥?”
테이블 주변의 시간이 몇 초간 얼어붙은 것 같았다.
“와, 이런 시기에 모스크바에서 한국인을 볼 줄 몰랐어요… 어떻게 아신 거예요?”
나는 “아아, 저쪽 테이블에 앉아있었는데 우연히 한국말이 들려서요” 라고 대충 둘러댔다. ‘설마 한국인인가 싶어 전력을 다해 대화를 엿들었다’고 솔직히 말하기에는, 내가 느끼기에도 소름돋는 워딩이다.
어쨌거나 말을 꺼내기까지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내가 하고 있는 몰골치곤 생각보다 배타적이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다. 기왕 같은 한국인도 만난 겸, 대화나 하자고 의자까지 끌어다 왔다. 왠지 좋은 사람들 같았다.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까지 온 것에 대해서는 조금 놀라는 듯한 눈치였다.
“그, 제가 글을 써서요…”
“아, 작가인가요?”
“네. 그런 셈인데요” 이와중에 나는 스스로 ‘작가입니다’하고 익숙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철가면도 쓰다보면 그럭저럭 하고 다닐만한 것일까?
“오…”
“마감에 쫓겨가지고, 러시아로 도망쳐서 열차안에서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죠… 이렇게 고생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저희는 댄서에요”
“아아, 직업으로 춤을 추시는…?”
“맞아요”
춤을 춘다… 댄서… 이 모든 것이 나와는 사뭇 다른 ‘인싸’ 혹은 ‘정상인’의 무리임을 짐작케했다. 춤추는 사람들에 대한 유감은 전혀 없지만, 있는대로 기가 죽어있었던 내게는 다소 버거운 환경이었다.
“그, 으렇구나…”나는 최대한 말을 더듬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참여차 러시아에 왔는데 꼼짝없이 갇혀버렸다니까요. 갑자기 전쟁이 터져버려서. 비행기도 취소돼서 다음주로 다시 예약했어요”
“아, 그래요? 저도 다음주에 귀국 일정인데… 혹시 항공사가 어떻게 되세요?”
“S7이요”
“저도 S7이에요” 내가 말했다.
“헐”
알고보니 항공편이 똑같았다. 물론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를 경유하고, 그 일행은 모스크바에서 바로 탑승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재미있는 우연임에는 분명했다.
“이런 복잡한 시기에… 프로젝트는 잘 끝내신 건가요?”
“네. 일은 잘 끝냈는데, 어떻게 돌아가는 지가 문제에요. 전쟁 발발 이후에는 카드 결제도 잘 안 되고… 현금 인출은 아예 안 되고 있거든요. 비행기 탈 때까지 며칠동안 뭐하면서 버틸지가 문제에요. 기다린다고 해도 항공편이 취소될지도 모를 일이고…”
“비행기가 취소가 되기도 하나요?”
“네. 아마 이번 것은 취소가 안 될 것 같기는 한데… 또 모르죠.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바뀌고 있으니까요”
나는 생각지 못한 정보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추측컨대 대체로 넋이 나간 얼굴로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카드결제가 잘 안 된다는 건 알았지만 현금 인출이 막혔다는 건 몰랐다. 몇 번인가 시도했다가 실패하긴 했는데, 일시적인 카드 문제 같은 것인줄 알았지 의도적으로 막았다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비행기가 취소될 수도 있구나…’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취소될 당시에는 눈앞이 막막했을 것이다. 나는 비행기를 놓친 적은 있어도 항공편 자체가 무효가 된 적은 없었으니까…
우리는 전쟁발발 이후 러시아 내 상황이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다는 것, 거의 모든 분야에사 대러 규제조치가 이뤄지고 있으니 하루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이야기 등을 하면서 커피잔을 비웠다. 영 불안한 얘기들 밖에는 없었지만, 그 머나먼 타지에서 비슷한 처지의 한국인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근거없는 안정감을 안겨줬다.
다만 원래 목적이었던 QR코드에 대해서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 게 있었나? 어디 갈 때 QR코드가 필요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라는, 대사관과 별 다를 것 없는 정보밖에 얻을 수 없었다.
“그럼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나는 짐을 챙겨 카페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미술관이라는데… 홈페이지에는 그렇게 써놓고, 막상 가보면 아무도 신경을 안 쓸 수도 있으니까요”
“네. 가보고 어떠셨는지 말해주세요.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미술관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는 이따 저녁에 시간이 되면 같이 김치찌개나 먹자, 같은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미술관이 있는 쪽 도로에 해가 바짝 들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QR코드 검사를 한다고 그렇게 경고를 해놨으면서, 아무 검사도 안 할리가 없잖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도보로 십오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나는 반드시 들어가보이겠어, 같은 마음은 전혀 없었고, 혹시나 해서 해보는 시도로서 ‘되면 땡큐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체념의 마음가짐으로 미술관 입구에 다다랐다. 나는 거기 들어가기 전에 미술관의 외양도 구경할 겸, 사람들이 어떤 과정으로 입구를 통과하는지를 관찰했다.
상황이 상황이라서인지 미술관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그렇다고 적지도 않았다) 도어맨은 QR을 눈으로만 대강 훑은 뒤 방문객을 통과시켜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쓰는 ‘COOV’앱을 켠 다음, 영어모드로 바꿔 화면에 띄우고 입구로 향했다. 러시아어는 지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어맨은 ‘엥?’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절박한 동양인 청년의 표정을 지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미술품을 꼭 보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얼굴에 담아 삼 초간 그에게 발사했다. 나는 십 초 뒤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러시아뿐 아니라 전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대형 미술관이다. 보관중인 미술품만 십오만 점이 넘어서, 그 거대한 전시장들로도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모든 작품을 한 번에 보는 건 불가능하다고들 한다.
한편 이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은 주로 러시아 제국 시절 자국 화가들의 회화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과 화풍을 지닌 화가들도 있고, 다른 도시에서도 몇 점 보았던 레핀과 수리코프의 작품도 무수히 많았다. 레핀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They did not expect him> 도 이 트레티야코프 구관에 걸려있다. 책이나 화면으로 보았을 때는 별 다른 감흥이 없었던 그림인데… 실제로 보았을 때의 전율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화폭에 그려진 건 오랜 유배에서 돌아온 혁명가.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는 기대도, 바람도 없었던 가족들의 시선이 초라한 남자에게로 집중되는 그 순간이다. 어떤 이들은 오랜 방황이 언젠가 ‘그때 겪었던 어려움만큼’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내게는 러시아 문학책 표지로 쓰인 그림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바실리 페로프가 그린 도스토옙스키의 초상화는 삼십 분이나 빤히 서서 보고 있었다. 이반 크람스코이의 그림들도 훌륭했다. 톨스토이의 초상화와 함께 민음사판 <안나 카레니나>의 표지에 쓰였던 ‘미지의 여인’도 걸려 있었다. 그외에도 차이코프스키나 체호프의 초상화까지… 트레티야코프에서는 초상화에 눈길이 많이 갔던 것 같다. 이거야 내가 풍경화나 정물화에 큰 관심이 없는 것도 한 몫 하겠지만.
여기서부터의 러시아 미술관들은 하나같이 넓어도 너무 넓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면 좋아하는 작품들을 위주로 유심히 보고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에 똑같은 감상시간과 집중력을 분배할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나는 음식 먹을때도 편식이 심한 인간이다.
더구나 트레티야코프는 진짜로, 겉으로 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무지막지한 규모의 미술관이다. 1층부터 34관까지의 전시실이 마련돼있는데, 그걸 다 보고나서 출구처럼 보이는 계단으로 갔더니 층계참에 ‘ 전시관 35-62’ 라고 적혀있어서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그건 흡사 포켓몬스터 금은 버전에서 관동지방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충격과 맞먹는 것이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여태 봐왔던 것만큼의 분량이 더 남아있다는 반전 아닌 반전이다. 나는 ‘볼만큼 봤는데 포기하고 다른 곳이나 가볼까’ 하다가, 가볍게 산보하는 기분으로 눈길이 가는 작품들만 챙겨보며 훌훌 돌아보고 나왔다. 바깥은 막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나는 숙소에 들러 삼십분 쯤 누워 쉬었다. 그러다 지도에서 ‘푸쉬킨 박물관’이 오후 여덟시까지 운영한다는 사실을 보고 곧장 밖으로 나와 차를 잡아탔다.
모스크바의 푸쉬킨 박물관은 두 곳이 있다. 위치도 이름도 비슷해서 헷갈릴 염려가 있다. 사람들이 주로 찾는 푸쉬킨 박물관은 The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로, 러시아 미술관인 주제에 서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을 엄청나게 수집해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푸쉬킨 박물관이지만 푸쉬킨에 대한 것은 별로 없다.
희한하게도 이곳 역시 QR코드 검사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표만 보고 바로 통과시켜주는 바람에 ‘미술을 사랑하는 불우한 동양인 청년 표정’을 지을 기회조차 없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입장이 너무들 쉬워 당황스러웠다.
푸쉬킨 박물관의 규모는 트레티야코프와 또 다른 형태로 웅장한 분위기를 띤다.천장이 높은 중앙 로비를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전시실에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화가들의 작품이 대나무 숲처럼 빽빽하게 걸려있다. <서양미술사>에서 쓱 지나쳐 봤던 이름들이 쏟아져 나온다. 프랑스관에는 푸생, 로랭, 시메옹샤르댕, 바토. 이태리관에는 구아르디, 티에폴로와 레니가, 스페인관에는 무리요가 있었고… 절정은 역시 플랑드르(네덜란드 등지)관이었다. 반다이크, 호이엔, 렘브란트(!), 라위스달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정말 대단한 컬렉션이구만. 이걸 다 어떻게 모았지?’
하고 한숨을 쉬며 2층에 올라가면, 황금색 이콘들의 행렬 사이에서 티치아노와 보티첼리의 작품이 튀어나온다. 실로 강박적인 수집욕으로부터 탄생한 것 같은 미술관이었다. 모스크바만 해도 이정도인데, 문화예술의 수도로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어느 정도일까. 그곳에는 세계 3대 미술관으로까지 꼽히는 예르미타시가 있다. 나는 내일 아침에 모스크바 역으로 가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야간열차를 직접 예매할 생각이었다. 이제 러시아 철도청에서는 카드가 먹혀들질 않으니까.
폐장시간에 맞춰 푸시킨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밤이 깊어지자 날도 추워졌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두겹씩 불어있는 듯 했다. 때마침 같이 식사를 하겠느냐는 연락이 와서, 택시를 타고 ‘홍길동’으로 이동해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는 열한시까지 제법 많은 대화를 주고 받다가 헤어져 제 갈 길을 갔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러시아 현지에서의 상황, 각자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것들이었다. 나는 춤을 추는 사람을 상대로 그렇게 오랫동안 대화한 일이 없었다. 주변에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친구가 한 명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취미 활동이니 직업댄서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단지 나는 우리가 하는 고민들이—장르의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상당부분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 크게 닮았다. 우리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고민하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이미 그 일로 돈을 벌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돌파구를 찾아 먼 러시아까지 떠나오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면,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런 종류의 약속은 여운있는 작별인사 같은 것이다. ‘또 보자’는 건 그냥 해보는 말일 뿐이고, 사실은 다시 볼 일이 전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썩 나쁘지 않았고, 내가 보기에 당신은 꽤 좋은 사람 같다’는 느낌을 한 마디로 줄여 부르는 것이다. 러시아에선 그것을 ‘다 스비다냐’라고 한다. 나는 지금껏 이 러시아 땅에서, 몇 번이나 그 말을 하며 여기까지 왔나.
나는 아주 유쾌해진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할 일을 정리하고, 예르미타시 미술관과 러시아 미술관—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국립 미술관—입장권을 각각 예매했다. 자정이 넘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수면제는 떨어졌다. 나는 하는 수없이 모스크바의 새벽을 뚫고 편의점을 향해 뛰었다. 가는 길에 이십사시간 운영하는 케밥 가게를 보고 케밥을 샀다. 케밥집 사장은 누가 봐도 러시아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는데, 새벽까지 가게를 지키고 있느라 몹시 퀭한 얼굴이었다. 나는 케밥을 받아들고 작별인사를 했다. 극도로 피곤해보였기 때문에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 가게 불빛을 등지고 다섯 발자국 쯤 걷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다 스비다냐!”
나는 몸을 돌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숙소를 향해 달리는데 종아리가 무척 저렸다. 너무 많이 걸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