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취소됐다
잠에서 깨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수면시간이 짧아졌지만 그만큼 더 피곤하지는 않다. 다만 몸상태가 개선된 건 아닌 것 같고, 단순히 피로에 찌든 몸으로 하루를 살아내는데 적응해버린 느낌이다.
아침식사로 전날 새벽에 사온 컵라면을 먹으려는데 식기가 없었다. 냉장고 위에 전기포트와 찻잔, 뭔지 모를 티백 몇 봉지가 가지런히 놓여있었으나 포크나 젓가락은 없었다.
일회용 포크를 사러 또 편의점에 다녀올 생각을 하자 골치가 아파왔다. 그건 한국의 편의점처럼 잘 구비돼있을지도 알 수 없는데—새벽에 자세히 관찰해둘 걸 그랬다—낱개로 팔지도 않는 물건이다. 조금 부끄럽지만 카운터에 문의해 식기 비슷한 것이라도 잠깐 빌려보기로 했다.
대충 웃옷을 걸치고 내려가보았더니 아래층에 사람이 없었다. 로비와 카운터뿐 아니라 건물 전체가 공허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벽 너머 하수관에 물 흐르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였다.
시간은 아홉시. 호텔 카운터 직원이 근무 대신 잠을 잘만한 때는 아니었다.
‘어디 화장실이라도 갔겠지’ 싶어 십 분간 앉아 기다렸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더 기다려봐야 별 수 없을 거 같아 포기하기로 했다. 기왕 내려온김에 볼일이나 보고 올라가야지 싶어 로비 옆에 위치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왜인지 손씻는 세면대 위에 쇠로 된 포크 하나가 달랑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싱크대도 아니고 세면대였다.
‘어째서 이런 곳에 포크가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주위를 몇 번 둘러봤다. 여전히 인적은 없다. 그 포크가 누구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나는 그 포크를 흐르는 물에 빡빡 씻어 주머니에 넣은 뒤, 객실로 돌아와 라면을 먹어치우고 나오는 길에 도로 씻어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나는 이것을 공유경제라고 부르기로 했다.
짐을 점검하고 열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호텔을 나왔다.
모스크바역을 찾아 가보면 크고 웅장한 건물들이 여러채 세워져 있다. 위치는 비슷하지만 건물에 따라 역의 역할이 구분되는데, 오른편의 야로슬라브스키역Yaroslavskiy Railway Terminal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마지막 역으로서 이틀전 내가 하차한 장소다. 큰 도로 맞은편에 있는 상가와 그 아래에 있는 플랫폼은 카잔스키역Kazansky Railway Station인데, 타보지는 않았지만 모스크바 시내를 운행하는 지하철 같았다. 국내 교통에 비유하자면 전자는 서울역 경부선이고, 후자는 지하철 1호선의 서울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가려고 하는 목적지가 같은 모스크바 시내, 혹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상의 철도역이 아니라면 레닌그라츠키역Leningradsky에서 표를 구해야한다. 그건 어째서인가.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노선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를 왕래하는 기찻길을 의미하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 종착역인 모스크바에서도 더 서쪽으로 가야 하는 곳이니 아예 별도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이건 국내 상황에 맞게 어디 비유하기도 좀 곤란하다. 만일 한국이 통일이 되거나 해서 서울에서 평양까지 가는 철도선이 별도로 개통된다면, 그래서 서울역 옆에 또 다른 역사를 지어서 쓴다면 그게 레닌그라츠키역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어떤 면에서의 ‘수도’라는 위치를 양보하기 힘든 대도시이기도 하다.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열차의 운행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내가 타려고 하는 열차는 오전 열두시 이십분에 출발해, 여덟시간을 달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는 야간열차였다. 네 시간이면 도착하는 고속철도 ‘삽산’도 있긴 했지만, 비싼데다가 시간도 애매해서 밤열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한 번 타고나서인지 여덟시간이나 네시간이나 별 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참이기도 했다. 48시간이나 52시간이나 길기는 마찬가지이니까.
티켓 뽑는 곳에 가서 삼십분쯤 기다리자 내 차례가 됐다. 나는 준비해놓은 러시아어 문구를 창구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예매하려는 열차 번호와 출발 시간 등을 정리해놓은 것이었다. 그러자 직원은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흔들더니, 예매처 건너편에 있는 작은 티켓박스를 가리키며 ‘그건 여기가 아니라 저기서 예매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내가 예매하려던 야간열차는 다른 철도회사에서 운영하는 것이어서, 탑승권 발급처 자체가 구분되있는 듯 했다.
다행히 티켓박스 앞에는 기다리는 사람도 번호표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 밤 출발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야간열차 탑승권을 무탈히 확보할 수 있었다. 표값은 이천팔백삼 루블이었다.
슬슬 역에서 나가려고 출구를 찾고 있는데, 곳곳에 설치된 ATM기 행렬이 눈에 띄었다. 각양각색, 저마다 다른 은행사가 운영하는 현금인출기였다. 나는 ‘이렇게나 종류가 다양한데 한 곳 정도는 아직 인출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카드를 꽂아보았다. 첫 번째는 실패했고, 두 번째도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시도한 기계는 스베르Сбер은행의 것이었는데, 기계에 찍혀있는 효성HYOSUNG로고를 보니 아무래도 한국회사의 제품 같았다. 뭔가 느낌이 좋았다. 한국회사에서 만든 ATM이 한국카드를 외면할리가 없잖아!
나는 마침내 만오천루블을 추가로 인출할 수 있었다. 이게 ATM이 한국에서 나온 것이어선지, 아니면 스베르은행의 행정이 개판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정도만 챙겨놓으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도 현금이 부족해 곤경에 처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폐 세 장을 지갑에 챙겨넣을랬더니, 누군가 내 옷깃을 붙잡고 당기는 것이 아닌가.
웬 중키의 할아버지 한 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돈 안 된 옷 매무새에 얼마간 씻지 못한 듯 꾀죄죄한 모습을 보자하니 노숙자나 거지 혹은 그와 흡사한 처지에 놓인 사람인 게 분명했다.
그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무어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알아듣지를 못해서, ‘야 니 즈나유 루쉬끼(저는 러시아어를 못합니다)’ 하고 손을 저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주저하는 낌새도 없이, 내 손에 있던 오천루블짜리 지폐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손짓으로 ‘이걸 당신에게 주라고요?’ 하고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생전 그런 식의 구걸행위는 처음이었다. 그 할아버지의 표정과 태도를 보면, 자신은 구걸을 하는 것도 온정을 바라는 것도 아닌 나름대로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오백루블, 천 루블도 아니고 오천 루블 짜리 지폐를 달라니.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고 해도 너무 뻔뻔한 것이 아닌가.
…뭐 그건 그렇다쳐도, 같은 러시아인도 아닌 외국인이 돈을 뽑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미는 그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난색을 표하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역을 빠져나왔다. 젠장. 어떻게 사람이 자기 생각밖에 안 하고들 산담. 나도 겨우겨우 뽑은 현금이란 말야.
나는 건너편 카잔스키역 상가로 향했다. 그리고 MTC(러시아 통신사)대리점을 찾아 현금으로 데이터를 충전했다. 오백루블 어치면 일주일동안 마음껏 데이터를 써도 남는 정도였다. 겨우 이것 때문에 골치를 썩었었다니. 기분이 퍽 좋아져서 바로 근처에 있던 버거킹에 들어가 햄버거를 조지고 나왔다.
트레티야코프 신관으로 향하는 택시. 내부는 후덥지근했고 차는 주말오후 강변북로만큼이나 꽉 막힌 도로위에 있었다. 당초 택시 앱에서 예상한 도착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절반밖에 가지 못한 상황. 택시 운전사는 발을 구르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나는 좀 더 길어질 탑승시간을 생각해 외투를 하나씩 벗어 옆자리에 개어놓던 참이었다.
띵—! 하고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나는…
이 순간 느꼈던 감촉을 뭐라 묘사해야 있는 그대로 전달이 될지 모르겠다. 이것은 여정에 관해 나 좋을대로 써놓은 일지이지, 적당히 초자연적인 요소를 가미해 쓰는 판타지 소설은 아니니까. 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읽는 사람의 경험들, 제각기 살면서 한 번쯤 느껴보았을 신비주의적 감상을 언급하며 공감을 호소하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다.
다들 그런 적이 있지 않은가? 문을 열기도 전에 그 안에 누가 있는지를 알 수 있을 때나,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누가 어떤 용건으로 연락했는지 예상이 되는. 논리적 예측 또는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감적으로 ‘이건 뭔가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경우 말이다. 나는 이때 문자메시지가 도착하는 소리를 듣고, 휴대폰에 손끝을 갖다대는 순간 그걸 느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내게 몹시 좋지 않고, 불리하며, 도로 궁지에 몰아넣는 그런 내용이 도착해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정전기처럼 튀어 온몸에 흘러들었다. 다만 ‘띵’하는 소리는 문자가 아니라 메일이 도착하는 소리였다. 미리보기 화면으로 본 메일의 제목은 <Your Flights S7 1012, 2509 and…>였다. 이쯤되면 다음 내용은, 그냥 확인절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차창을 반정도 내리고 메일 본문을 확인했다.
<…5971 have been canceled>가 나머지 제목,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We apologise for the inconvenience this has casued’가 본문의 내용 전부였다.
역시 러시아에 온 건 큰 실수가 아니었나 하는 것부터. 아까 그 궁핍해보이는 할아버지에게 인색하게 군 것 때문에 벌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별별 생각이 우주를 한 바퀴 훑고 돌아오는 동안.
나는 가방에 있던 수첩을 꺼내 떠오르는 것들을 기계적으로 정리해 적기 시작했다.
첫째. 차가 너무 막힌다. 그림 볼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둘째. 몸의 온도 조절기능이 고장난 것 같다. 창문을 닫으면 땀이 나고, 열면 오한이 인다.
셋째. 비행기 탑승이 무산된 건 출발할 때부터 그랬다. 찾아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다른 항공편이 있을 것이다. 이만큼 좋은 조건은 아니겠지만—
—여기서 나는 수첩에 메모하기를 멈추고 ‘스카이스캐너’ 앱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한국으로 향하는 항공편 모두가 취소되거나… 최소 세 차례 이상의 경유를 거치며 수백만원의 비용을 내야하는 없느니만 못한 경로들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조차 며칠이 더 경과한 뒤에는 예약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당장에 그럴 돈도 없었던 나는 화면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도 시일이 꽤 지났다.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까지, 거의 모든 국가가 러시아를 향한 국제제재에 발을 맞추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도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러시아 영공을 거치는 모든 항공편을 차단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외교적인 관점에선 전적으로 합당한 조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세계에서 비난받고 있었을 뿐 아니라, 러시아 내에서도 지탄받을만큼 독단적인 행위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옳고 그르고를 넘어서… 나는 집에 어떻게 돌아가야할지를 고민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사태의 심각성이나 조치의 적절성 따위 와닿을리 없는 것이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올라간 내 일지를 보고, 어떤 사람은 ‘그러게 왜 이렇게 복잡한 시기에 러시아 같은 데를 가서 고생을 하고 있냐. 다 자진해서 하는 고생이니까 징징대지 마라’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야 내가 너무 징징대는 글을 쓰는 것도 맞고, 어느 정도는 자진해서 하는 고생인 것도 맞지만… 괜히 복잡한 시기에 러시아로 향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내가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를 탈 때만해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개막식도 안 한 상태였으며,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군사를 옮겼다는 소식도 없었을 때였다. 코로나에 대한 걱정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러시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해외여정에도 해당되는 염려였다. 불과 한 달만에 러시아가 이만큼 비호감 스택을 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복잡한 나라를 골라서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왔더니 나라가 복잡해진 것 뿐이다. 조금은 억울할만한 얘기 아닌가.
그동안 어제 만났던 한국인 일행에게서도 연락이 닿았다. 자신들도 오늘 항공편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아서, 곧바로 대사관에 문의를 했다는 것이었다.
“대사관에서 뭐라던가요?” 내가 물었다.
“조만간 인천으로 가는 직항 노선을 한 번 편성한대요. 그걸 타라고 하던데요…”
다시 찾아보니 원래 일정보다 사흘 늦은 날짜에 대한항공편 노선이 하나 있었다. 다만 가격이 취소된 항공편의 서너배나 되는 고가여서, 최저가 정렬을 해놓았던 내게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있기는 한데 이건 좀 비싼데요. 가격이…”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저희는 그걸 탈 거에요. 작가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러게. 나는 어떻게 하지? 한 번 생각을 해보자.
…아무리 다른 선택지가 없다지만, 지구를 한 바퀴 더 돌아서 한국에 돌아가도 될만한 돈을 내 의지와는 다르게 쓰자니 내키지가 않는 게 사실이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 나는 누구보다도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사흘이나 늦게 한국에 돌아갔다가는 어마어마한 비극이 벌어질 판이었다. 만약 내가 모스크바에서 사흘동안 세월아네월아 시간만 때우고 있다가, 직항 노선으로 편안하게 한국에 돌아간다고 해도…
밀려있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면 모든 게 끝장나는 것이다. 기껏 한국에 돌아갔는데 카드값도 못 막고, 대출금도 못 갚으면, 생물학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금융정보상으로는 완전한 죽음이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해외로 도망쳐야할 텐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러시아에 남아 눈퍼다 나르는 일 같은 걸 구해 먹고 사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따라서 내겐 돌아가는 건 당연한 것이고, 원래 예정보다 늦지 않게 ‘제때’ 도착해 고용복지플러스 센터 접수처를 찾아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다들 집에 가냐 못가냐로 골치를 썩을 때. 나는 실업급여를 못받아 금전사정이 파탄날 것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정도면 한심한 걸 넘어 안쓰러울 정도다.
혼란의 극한에 다다른 상태에서도 택시는 제 갈길을 갔고, 어느덧 미술관 앞에 덩그러니 놓여 걷고있자니 헛웃음이 났다. 집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애매한 상황에, 화가들 그림이나 보겠다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꼴이란 표현그대로 희극적이었다. 미술관 표는 환불이 안되고, 호텔에선 체크아웃을 했으니 달리 갈데도 없었기 때문에, 하여간 나는 미술관에서 그림이나 보며 시간을 때울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는 수없이 미술관 입구로 들어갔는데, 가방 속 소지품을 검사하던 사람이 나를 멈춰세우고 ‘보드카는 반입이 안된다. 여기 맡겨놓고 가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술 생각이 간절한 시기였으므로 ‘그림이나 보는데 술도 못 마시게 하다니 너무 빡빡한 것 아닌가’하고 속으로 불평하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출입구 직원의 조치는 옳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보드카를 진탕 마시고 전시관을 활보하다가, 칸딘스키 그림을 주먹으로 때리거나 하는 등의 개짓거리로 경찰서 신세를 졌을지 모를 일이다.
집에 어떻게 돌아갈지도 모르고, 돌아가도 제대로 살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싶은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들은 4층 상설 전시관에 있었는데, 그 한 층을 다 둘러보는 데만 해도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상황이 복잡해서인지, 그 복잡한 그림들이 너무도 단순하게 느껴졌다면 단순한 지랄일까? 트레티야코프 구관이 전통적이면서도 정돈된 느낌을 주는 전시관이었다면, 신관은 보다 현대적인 세련미를 추구하는 공간 같았다.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로비에서 단색 대비가 두드러지는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루트. 그 가운데를 걸어 지나는 것 만으로도 거대한 공간예술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샤갈이라고 하면, 내게는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는 김춘수 시인의 첫 행으로 떠오르는 화가다. 다만 나는 샤갈이 러시아 태생인줄은 몰랐고, 달리 피카소와 함께 초현실주의와 입체파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 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필 이때 이 상황에서 샤갈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된 건, 단순한 우연일지 몰라도 퍽 의미있어보이는 우연이었다. 시의 제목처럼 샤갈이 눈내리는 마을을 직접 그렸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지만. 눈내리는 마을과 도시를 수도 없이 지나온 나는 3월의 어느 날 그 그림 앞에 섰다. 샤갈의 <마을 위에서Over the Town> 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부둥켜 춤을 추는, 또는 함께 뒤엉켜 누워있는 자세로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나무울타리 위를 유영하는 모습. 개체와 심상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나는 누구나 그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려보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처음 보는 그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그와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다는 기분이 들어 돌연 흠칫했다. 몽환적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은 곳에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칸딘스키의 그림도 훌륭했다.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악명과 다르게 서정적인 그림도 몇 폭 있었고, ‘구성 7 Composition VII’ 은 보다보니 정말 ‘구성이구만…’ 이라는 느낌이었다. 삶 가운데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회화로,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구현화해 이렇다할 질서없이 나타낸다면 대충 그런 형태일 것 같다. 추상적인 작품을 수긍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공상이 필요한 것 아닐지. 그 외의 ‘움직임 Motion’이라는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흥미로웠고. 다른 화가들의 절대주의Suprematism 작품들도 마음에 들었다.
뇌리에 남은 인상으로만 치자면 니크리틴Nikritin의 ‘인민의 재판장A People’s Court’, 콜쩨프Korzhev의 ‘유다Judas’도 기억에 남는다.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것도 좋지만. 알기 쉬운 상징 역시 그림에 열중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아무리 잘 만든 먹이트랩도, 척보기에 전혀 먹이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고양이의 관심을 끌 수 없을 테니까.
미술관에서 나와 걸으면서, 나는 샤갈과 칸딘스키의 세계를 함께 빠져나와 현실적인 고민 앞에 섰다. 어쨌거나 비행기편은 취소됐고, 상트페테르부르크 기차표는 아침에 끊어놓았고, 한국에 가되 더 늦게 갈 수는 없다… 이 현실적으로 비현실적인 상황에 그들의 그림이 어떤 영감을 준 것인지 몰라도, 나는 뜬금없이 구글지도앱을 켜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변 지리를 확인해보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에 있는 그 어떤 도시들보다 서유럽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모스크바보다 발트삼국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더 가까웠다.
나는 생각했다. 러시아 영공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육로로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면 되는 것 아닐까. 나는 아무 것도 되지 않았는데, 난데없는 희망의 불씨에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대안은 핀란드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서울과 부산 정도의 거리만큼 떨어져있는데, 워낙 가까운 나머지 ‘알레그로Allegro’라는 이름의 고속철도노선까지 마련돼있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인들은 물론 많은 외국인들이 알레그로를 타고 북유럽으로 이탈하고 있는 상황이라, 모든 열차가 매진돼 좌석예매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 잘 풀릴리가 없지’
다른 나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탄다. 뭐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늦게 생각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거야 어쩔 수 없다. 비행기가 취소됐다는 소식을 오늘 접했는데.
비행기도 기차도 안 된다면, 남은 건 배나 자동차 뿐이다. 나는 대충 식사를 때우고, 모스크바 레닌그라츠키 역으로 돌아와 몇 시간이나 인터넷을 뒤져댄 끝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헬싱키로 향하는 고속버스 탑승권을, 그리고 헬싱키에서 독일 뮌헨을 경유해 8일 오전 서울에 도착하는 루프트한자 비행기편을 예약하는데 성공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종착지가 아닌 경유지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비용상으로 보면 다 합쳐도 대한항공 특별노선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고, 8일 오전은 실업급여 신청 유예기간 한계인 14일 중 정확히 마지막 날이었다. 모든 것이 아슬아슬했고, 일단 탑승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우선은 방향을 정한 것만으로도 무척 안심이 됐다. 남은 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해 핀란드의 입국 절차가 그리 까다롭지 않길 기도하는 것, 출국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할 PCR 검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 열차탈 시간이 가까워왔다. 나는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 비슷한 것이 있는 걸 보고 덜컥 구매해버렸다. 물과 함께 와구와구 먹어치웠다. 맛은 생각보다 그럭저럭이었다. 참치마요도 매실장아찌도 없는 그냥 주먹밥이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나았다.
늦은 밤 모스크바역 플랫폼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십일번 기차칸 앞에 늘어선 줄에 뒤따라 서서, 시간에 맞춰 열차칸에 올라탔다. 2등석은 횡단열차와 마찬가지로 4인이 함께 쓰는 침대칸이었다. 뭐라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짐을 정리하기 무섭게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긴 야간열차인데다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고작 여덟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여정이다. 확실히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있을 때보다는 삭막한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물을 주는 관계들이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것들에 속했다. 한 학년 동안 같이 지내야 하는 낯선 반친구들이나,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며칠동안 좁아터진 방안에서 의식주를 공유해야하는 동승객들이 그렇다. 한편 고속열차 안에서의 네 시간이나 야간열차에서의 여덟 시간은, 타인과 친해질 마음이 생기기에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대충 잠만 잘 자도 휙 지나보낼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나는 십일번 객차의 이십번 침대 위에 누워 양을 헤아리고, 때때로 창밖의 가로등 불빛을 통해 작별인사를 건넸다. 안녕, 모스크바. 나는 마지막까지 떠날 생각으로 거기 머물렀구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