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백아흔여덟번째

by 이묵돌


확실히 현석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불과 반년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조차 사흘밤낮을 울며 지새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떻게 오 년을 사귀고, 그중에 삼 년을 같이 살았던 연인과 헤어지고선 연차 한 번 안 쓸 수 있단 말인가. 가장 가까운 직장동료이자 친구로서 내막을 미리 엿듣지 않았더라면, 불과 열흘전 그가 인생에서 가장 큰 이별을 겪었다는 사실은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 그만큼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모든 부분에서 괜찮아보였으며, 되려 헤어지기 전보다도 활력있는 모습으로 사무실을 드나들고 있었다.


녀석이 나처럼 별 것도 아닌 이별에 온갖 호들갑이며 청승을 떨길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현석이 겪은 것은 나처럼 ‘별 것도 아닌’ 이별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물론 삼십대나 사십대나 돌아오지 않는 건 마찬가지지만—이십대 의 절반을 함께한 여자.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이 단풍을 보겠다고 다함께 인왕산을 오르면서, 죽고 못사는 커플들이 으레 그러듯이 현석과 사이좋게 투닥거렸던 여자. 그러고 나서 정상에서는 언제 그랬냐는듯, 서울 시내를 배경삼아 서로 부둥켜 안은 사진을 찍어달라던 바로 그 여자와의 이별이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이 언젠가 결혼하리라는 사실에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둘의 결혼식에서 멋지게 축가를 불러주는 상상을 하는 한편으로 내 목이 해가 갈수록 쉬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그런 내게는 그런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것부터가 적잖은 충격이거니와, 그러고 나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구는 현석의 태도는 더욱이 납득이 안 되는 판국이었다. 하다못해 밤늦게 친구를 불러 소주나 한 잔 하자는, 그런 보기좋은 청승이라도 떨어주었으면 했지만 그런 기미도 없었다. 참다못한 나는 오랜만에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현석을 불러서는, 자연스럽게 곱창에 소주가 말리는 가게로 유인해 말을 시켰다.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이 아닌 나인데도 이번에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 물었다. 나는 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아주 헤어진 게 맞기는 한 건지, 본인이 헤어진 사실을 인식하고는 있는 건지, 혹시 이별의 충격이 너무 커서 머리가 돌아버린 것은 아닌지, 어디 가서 상담을 받아볼 생각은 없는지, 등등.



그런데 이게 웬 걸, 현석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을 술술 늘어놓았다. 녀석의 말인즉 자신과 그녀는 완전히 헤어진 것이 맞고, 그 사람은 주말부로 아주 깔끔하게 짐을 빼서 돌아갔으며, 이별의 이유가 너무 명확하고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뒤끝이나 후회같은 것이 전혀 남지 않았다, 거기에 자신은 지금의 이별을 누구보다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자기 상태의 변화를 업무적 추진력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는, 고용주 입장에서는 엉덩이로 박수를 칠만큼 기특한 포부까지도 밝히고 들었다.


나는 그래도 그렇지, 만난 시간이 얼마만큼인데 그 빈자리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말을 약간의 비난을 담아 던졌다. 그러자 현석은 오히려 별 말을 다 듣겠다는 말투로, 옅은 웃음까지 흘려가며 대답하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 만났느냐가 무슨 의미가 있어? 서로 갈 길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그 관계에 몸이든 마음이든 매달려 있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그렇게 결혼하기가 싫은 거야? 지금은 몰라도 일 년 뒤, 삼 년 뒤에는……”


“아! 정말 지긋지긋하다. 너까지 그런 소리를 하다니.” 녀석이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혼이야 물론 하면 좋은 거지.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결혼이라는 걸 아무나 할 수가 있나?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되어있어도 될까 말까 한다는 판에. 걔나 나나 빚빼면 가진 게 뭐가 있다고 벌써부터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다는 건데? 우리 같은 월급쟁이가 달리 떼돈 벌 건덕지라도 있냐고. 적어도 오 년동안은 미친듯이 일을 해놓아야 가망이 보일까말까야. 그런데 이 미친 여자가 뭐라는 줄 알아. 일단 결혼하고 애부터 낳으면 안 되겠냐는 거야. 자기 나이가 이제 서른인데, 오 년 뒤에도 똑같이 애를 가질 수 있을지 무섭다고…… 진짜 미친 거지. 결혼 못한 여자가 서른이 돼서 조바심이 드는 건 이해한다 쳐도, 그 조바심 때문에 인생 엿바꿔먹자는 말을 툭 뱉는 거에서 나는 그냥 손 떼버렸어. 생각해보니까 그동안 그런 조짐이 얼마나 많았나 싶더라니까. 뻑하면 새 가방에, 새 옷에, 조금만 추워졌다 싶음 하루 온종일 집안 난방을 틀어대고…… 거기 뭐라고 말 좀 덧붙이면 그놈의 난방비 해봤자 얼마나 하느냐고 따지는 거야. 나는 겨울인데도 집안이 사우나같아서 등줄기에 땀이 한바가진데. 하여튼 이제는 그놈의 난방비 하고 싸울 일도 없어졌으니 정신건강에는 얼마나 더 좋겠느냐 이거야. 흥, 언젠가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그런 대책없는 여자와는 결혼 못하지. 그럼.”


결혼에 관한 현석의 입장은 너무나도 확고했다.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대화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어투와 주장이 단호해지는 것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왔는 지를 짐작하게 해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사람마다 극명하게 의견이 다를 수는 있을지언정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할만한 소재가 아니었다. 차라리 그렇게 뚜렷한 표현으로 주장을 해오는 것을 보니 나는 얼마나 그에 대해 고찰해보았는지 반성해볼 지경까지 되었다. 어차피 내가 느낀 것이라고는 철저한 제삼자로서의 감정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속으로 ‘그동안 참 보기 좋았는데. 괜히 헤어지지 말고 다시 잘 만나면 안 되나’ 같은 얄팍한 바람이나 갖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날밤 나는 주변사람으로서 현석의 이별을, 한때는 꼼짝없이 결혼할 줄 알았던 그녀와의 작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노라 마음먹었다.


십일월 끝자락에 접어들자 가을공기가 새파랗게 질려 겨울의 냄새를 풍겼다. 얼어붙을듯이 차가운 비가 이틀걸러 하루 내내 내리고 나더니 이제는 누구도 계절을 변명할 수 없는 추위가 찾아왔다. 회사 건물 앞에 늘어선 은행나무들은 연일 이어진 비바람에 녹초가 된 듯 시들거렸고, 도로위에 오소소 쏟아진 노란 흔적들을 치우느라 환경미화원 여럿이 물웅덩이와 씨름하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미친듯이 일을 해치우던 현석이 부쩍 비실거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 쯤이었다. 그는 처음에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처럼 그저 스스로를 몰아붙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같은 부서 선배들에게 몸에 좋은 영양제며 수액을 추천받아 몸안에 밀어넣기도 했다. 가만히 있다가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이거 코로나 아니야? 하고 항원검사를 받아보았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러자 격무에 지친 선배들은 “코로나였으면 나도 좀 얻어 걸리는 건데”하고 볼멘소리를 늘어놓았고, 현석은 그런 와중에도 몸이 냉해 죽겠다며 날씨 탓을 했다. 회사 삼년 다니면서 이렇게 을씨년스러운 날씨는 처음이라면서, 집안에 제일 두꺼운 이불로 몸을 둘둘 말아도 잠들기 전까지 오한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나가는 말로 “집에 난방을 켜”하고 실없는 핀잔을 주었는데, 현석은 그 말에 눈을 번쩍 뜨면서 외치듯이 말했다.


“그거였어! 바로 그거였다고”


“뭐가?”


“난방때문이었어. 걔가 이맘때만 되면 난방을 미친듯이 틀어놨었다고. 얼마나 온도를 높게 설정해놨으면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하루종일 들렸다니까. 그땐 한겨울에도 집이 더워서 바깥에 산책을 나갔다 왔었는데.” 현석은 회색 코트 안쪽 겨드랑이에 팔짱을 끼듯이 손을 넣고 벌벌 떨면서 말했다. “내가 거기에 적응을 해버린 거야. 그래서 이 추위가 낯설었던 거지. 그래, 다시 난방을 틀면 될 문제였어.”


그래, 그럼 오늘은 집에 가서 난방 빵빵하게 틀어놓고 자라.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으로는 지금이 그렇게 추운가, 저 자식이 말하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오후 일과를 시작했다.


스크린샷_2024-11-26_오후_10.37.01.png <무제>, 마리안느 폰 베레프킨. 연도미상.



그날은 야근을 했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일이 끝에 가서 생각지 못한 잡무를 만들어내서, 다음 날까지 작업이 늘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 밤 열 시나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하루를 정리한 뒤 누웠더니 금세 자정이 넘었다.


그럴 때가 있다. 몸은 기력이 다 빠져 당장이라도 넋이 나갈 듯한데, 이상하게 미세한 정신줄 한 가닥이 끊어지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좀체 잠에 들지 못하는 밤. 나는 다음날 아침까지 잘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하면서, 끈질기게 베개와 씨름한 끝에 꿈나라로 갈 수 있었다. 그 잠은 일시적이었지만 무척이나 깊은 잠이었기 때문에, 나는 머리맡에서 세 번이나 울리는 전화벨소리까지도 꿈결의 일부인 줄 알았다.



마침내 잠에서 깬 내가 전화기를 집어들었을 때, 나는 액정에 표시된 현석의 이름과 새벽 세시 이십삼분이라고 표시된 시간을 번갈아 확인하며 혼란스러워했다. 전화를 받자 놈은 여보세요, 같은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씨근거리며 몇 초를 가만히 있었다. 견디다못한 내가 “야, 이 시간에 전화를 했으면 말이라도 해야할 거 아냐”하고 묻자 전화기 너머로 나지막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놈은 울고 있었다. 그리고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눈물이” 현석은 목구멍까지 눈물이 흘러들어 숨이 가쁜 것처럼 헉헉거렸다. “멈추질 않아.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


거봐라, 내가 뭐랬냐, 역시 괜찮을리가 없지, 그만 청승떨고 잠이나 자라, 같은 말들이 뇌리에서만 빙빙 맴돌다 자리를 떴다. 다 큰 남자가 그토록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무슨 말이라도 한들 놈에게 들리기나 할까. 어안이 벙벙해 부득불 잠자코 있는 동안에도 울고 있던 현석이 “대체 어디로 간거야. 이렇게 난방을 다 때워놓고.” 하고 중얼거렸다.





2024. 11.


<부재의 온도>







쓴 지 좀 된 단편들을 브런치에 아카이빙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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