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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n 25. 2019

습작

쉰번째


이마트였는지 홈플러스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종류의 대형마트에는 작게 애완동물 코너를 만들어놓기 마련이다. 이 코너의 타겟은 이제 막 새로운 생물체에 대한 관심이 샘솟을 얼라들이었는데, 그래서 지나칠 때마다 ‘앵무새! 앵무새 사줘!’ ‘옆집 승환이도 강아지 있어. 나는 왜 없어?’ ‘싫어!! 든든이 없이는 집에 안 갈 거야!’ 같이 생떼 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지도 않은 고양이에게 벌써부터 든든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던 여자아이는 오 분쯤 지나서는 스코티쉬폴드 한 마리를 품에 안고 마트 입구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 주제에 그런 비싼 고양이나 강아지―또는 시끄럽기 짝이 없을 앵무새―를 사달라고 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난 가끔 소싯적의 내가 조금만 더 멍청했으면 얼마나 더 행복했을지 생각하곤 한다.


 그 수많은 동물 가운데 기니피그를 선택해 조른 것은 순전히 가격대 때문이었다. 햄스터도 귀엽긴 했지만 다 커봐야 손가락 두세 마디 정도의 크기라 쓰다듬는 맛이 없었다. 한편 원래대로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수십 대나 맞다가 죽을 운명이었던 실험용 쥐가, 하필 얼룩덜룩한 점박이로 태어나는 바람에 머나먼 지방 대형마트의 애완동물 코너에서 ‘기니피그’라는 이름을 달고 전시돼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모르모트라는 이름을 그대로 썼다면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모르모트는 원래 전체가 하얀색 아니야?’ 하고 중얼거리는 어른들만 잔뜩 있었을 게 뻔했을 테니 대형마트의 전략이란 예나 지금이나 소비자의 생각을 한참 앞서가는 것들뿐이다.


 이쯤에서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난 정말이지 그 기니피그에게 어떤 이름을 붙였는지…… 어떻게든 기억해내려고 이틀간 안간힘을 썼지만 도저히 떠오르질 않았다. 그야 십수 년이나 지나버린 일이니 어쩔 수 없다손 쳐도, 보통은 자기가 태어나 처음으로 키웠던 반려동물의 이름쯤은 기억하는 게 정상 아닌가? 이럴 때마다 나 자신의 비인간성에 대해 참 실망스러운 기분이 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이 오직 내게만 없다고 느껴질 때 말이다.


 그런고로, 나는 한 때 내가 키웠던 그 기니피그의 이름을 편의상 ‘쥐’라고 호칭하려 한다. 너무 편의만 신경 쓰는 것 아닌가 싶지만 쥐는 쥐니까. 쥐를 쥐라고 부르는 것이 문제가 될 순 없는 일 아닌가. 


 여하간 쥐가 케이지 값을 포함해 도합 이만팔천 원의 가격으로 우리 집 베란다에 들어오고 난 뒤, 난 열 살의 꼬맹이 치곤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하루 두 번씩 사료통에 밥을 채워주고, 밤에는 베란다에서 부는 바람에 추울까봐 담요를 둘러주고, 수시로 싸대는 수박씨 모양의 똥을 치우는가 하면, 내가 학교에 가있는 동안 외롭기라도 할까 쥐와 비슷한 크기의 인형도 넣어주고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다. 쥐처럼 하등한 생물이 외로움이나 고독 따위를 느낄 리도 없거니와, 설령 그렇다 해도 쥐의 주인인 내가 신경써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란 멍청하다고 할 만한 구석이 꽤 있다.


 어디보자,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겨울에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걸 왜 기억하고 있느냐면, 당시의 내가 대충 입고 학교에 갔다가 심한 감기에 걸려 돌아왔었기 때문이다. 난 열이 팔팔 끓어대는 와중에, 쥐도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래서 엄마가 잠든 시간에 몰래 베란다에 나가서, 내가 덮고 자던 담요를 케이지에 넣어줬던 것이다. 


 다음 날 집안이 뒤집어진 건 말할 것도 없다. 집에 몇 있지도 않은 이불을 갖다 쥐새끼한테 주느냐고, 엄마는 똥냄새며 오줌지린내가 잔뜩 묻어 다시는 덮을 수 없게 된 담요를 들이밀면서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하며 싹싹 빌고 말았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때의 내게도 책임이라는 개념이 조금은 있었던 모양인지, 나는 쥐를 보호할 책임이 있고 누구도 그걸 방해할 수 없다, 는 식으로 좀 대들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밖으로 나가 소주를 사서 돌아왔다.


 엄마는 소주 한 병을 담배 다섯 개비를 안주삼아 마셨다. 그리고 내게 천 원짜리 두 장을 던져주면서, 자신은 취했으니 나가서 소주를 한 병 더 사오라고 했다. 난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래서 천 원짜리 두 장을 도로 던지면서―


 “엄마가 마실 술은 엄마가 사와!”


 하고 냅다 소리친 것이다. 얼마나 큰 소리를 질렀는지, 내 목에서 나온 소리에 내가 놀랄 지경이었다. 말할 것도 없었던 엄마는 벌떡 일어나더니, 그길로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선 케이지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케이지 안에는 쥐가 있었다. 쥐는 엄마가 케이지를 발로 찰 때마다, 찍, 찌익, 하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쥐의 비명이었다. 


 나는 엄마의 다리에 매달려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쥐는 건들지 말라고, 차라리 나를 차라고, 콧물 섞인 소리로 애원했다. 그러나 묵묵부답의 엄마는 날 손쉽게 뿌리친 다음, 다시금 아무렇지 않게 케이지를 발로 차댔다. 쥐는 어느 순간부터는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하드보드지를 이리저리 잘라 만들어준 텐트모양 집에 들어가서, 이미 죽은 양 숨어있을 뿐이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소주를 사왔다. 술과 담배 심부름은 일찍이 골백번을 넘게 했었다. 다만 그토록 미친 듯이 뛰어갔다 온 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엄마가 쥐를 죽여버릴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내가 돌아갈 때까지 쥐는 멀쩡했다. 그날 밤 나는, 술에 취해 깊이 잠들어있는 엄마 몰래 베란다에 나와 쥐에게 말을 걸었다.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널 지켜줄 수 없어서,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어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뒤로 엄마는 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케이지를 발로 찼다. 베란다에는 내 가장 큰 약점이 가장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있었다. 나는 차라리 죽이라고, 날 죽이든 쥐를 죽이든 어떻게든 하라고, 엄마는 그럴 용기도 없는 주제에 왜 이런 짓을 하냐고 퍼부었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두려워하고 있었고, 쥐는 아주 작은 기척 하나 없이 텐트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갖다버려라. 책임도 못 질 걸 왜 사달라고 해서”


 엄마는 정적을 깨고 최후통첩을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쥐를 살려서 보낼 기회는 이번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난 다리를 벌벌 떨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베란다에서 쥐가 든 케이지를 들어올렸다.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유난히 덜컹거렸지만, 쥐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쥐를 버렸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분리수거함이며 음식물쓰레기통과 사람들이 함부로 내다버린 박스 따위가 널브러져있는 그곳에 쥐를 놓아두고 돌아왔다. 베란다는 텅 비어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는 길에, 어젯밤 내가 버려놓은 쥐가 케이지 째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봤다. 쥐는 거기 있었다. 좁아터진 임대아파트의 베란다 구석이 아니라, 여느 버려진 물건이 그렇듯 덩그러니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난 그 모습을 일 분쯤 넘게 바라보다가 학교로 향했다. 일찍 저녁노을이 지고 내가 돌아올 즈음엔 쥐는 이미 없었다. 누가 가져갔는지, 쓰레기봉투 사이에 처넣은 채 태워버렸는지, 쥐 스스로 케이지 문을 열고 나와 어디론가 가버렸는지, 나는 전혀 알 도리가 없었고…… 그렇게 찍찍이에게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말았다. 미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책임에 관한 첫 번째 실험>, 2019. 6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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