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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01. 2019

습작

쉰네번째


나는 죽었다. 향년 스물아홉 살이었다. 사망 원인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듣는 얘기론 선천적으로 뇌 어딘가에 있던 작은 혹이 악성뇌종양으로 발전했다는 모양이었다. 뇌에 이상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은 더러 만나봤지만, 그게 나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뇌에서 종양 같은 게 생기는 걸까. 왜 하필이면 나같이 불쌍한 청년에게 나버린 걸까. 생각해봤자 이미 죽은 마당에야 별 의미는 없다. 그저 결혼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죽은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정말이지 너무도 불쌍한 인생이었다.

난 스무 살 때부터 화물차를 운전했다. 또 내 동생은 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디스플레이 공장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집안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건 아니다. 아닌 수준이 아니라 좋았다. 우리 아버지는 꽤 잘나가는 사업가였고, 우리 가족은 강남의 수십 평짜리 아파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나와 동생은 사립 국제학교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며, 중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미국에 유학을 가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한 달을 앞두고 있을 무렵이었다. 집에 돌아갔더니 현관이 열려있었다. 무슨 일이지?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엄마가 거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다.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나는 ‘엄마, 왜 울어?’같이 애타는 소리도 한 마디 꺼내지 못했다. 집안 곳곳에는 노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아침드라마에서 몰락을 앞둔 가정이 흔히 그렇듯이.

아버지는 안방에 들어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쯤 지나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사체는 한강변에서 수습됐다. 놀랍게도, 나는 아버지의 사체를 보고도 그리 슬프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침 여름으로 접어들 즈음이라 부패가 빠르게 진행돼 있었다. 영안실에 있던 그것은 수십 년 지난 어떤 잔해일지언정, 어떻게 보더라도 내 아버지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죽을 때까지 아버지가 그저 실종된 것으로 믿었다. 언젠가 멋진 정장차림으로 나타나서, 나와 동생의 처참한 인생을 송두리째 돌려놓아 주리라고 믿었다.

어머니는 장례식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어느 날에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뒷산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와 동생은 어머니의 실종신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산에 누가, 아니 뭐가 있든 간에 찾고 싶지 않았다. 그마저 찾게 된다면, 우리는 계속 살아갈 일말의 힘마저 모두 잃어버릴 것 같았으므로.

아버지의 회사가 어떤 경위로 망했는지, 나로선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 방법도 없었다. 부도가 뭔지, 적대적인수가 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당시의 나는 겨우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을 뿐이고, 호화로운 아파트에서의 생활에서 외할머니의 낡은 자택에서 밥과 나물을 먹는 삶으로 곤두박질 쳤을 뿐이다. 불과 세 달 만의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외할머니의 집은 오래된 목조주택이었다. 벌레가 많이 나왔고, 재래식 뒷간이 마당 건너편에 있었으며, 밤이면 사방에 있는 논밭에서 귀뚜라미며 개구리 우는 소리가 귀를 울리곤 했다. 난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나왔다. 검정고시도 보지 않았다. 열일곱 살의 내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혼잣말을 하거나, 이불에 잠겨 펑펑 울다 잠드는 것뿐이었다. 내가 보살펴야 했을 동생은 오히려 의연했다. 그런 체인지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울고 있던 나를 달래 밥상 앞으로 데려가곤 했다.

그 시절의 내게 좋았던 기억이라곤 기껏해야 하나뿐이다. 읍내에는 문 연지 수십 년 된 담배 가게가 한 곳 있었는데,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한 분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외할머니는 지독한 골초였다. 나는 최소한 밥값이라도 할 요량으로 걸어서 삼십 분이나 걸리는 읍내까지 담배심부름을 다녀오곤 했는데, 하루는 할아버지의 손녀딸이 대신 가게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할 일도 없었거니와, 그런 시골마을에서 또래 여자아이를 볼 기회 자체도 얼마 없었으므로 별 시덥잖은 주제를 꺼내며 대화를 시도했다. 숫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뭇 남자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 여자애도 어지간히 지루했는지, 뜬금없이 시작한 대화는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그 날 집에 돌아간 나는 할머니에게 두 가지 이유로 혼났다. 말 한 마디 없이 늦게 들어온 것, 그리고 그 먼 곳까지 가서 담배 사는 걸 깜빡 잊고 온 것.

예지의 키는 나보다 조금 컸다. 앉은키가 작아 나보다 작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도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으니 요즘 애들의 발육이란 늘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내가 작았던 것도 있겠지만.

그러나 나는 예지가 서울, 그것도 강남에서 왔다는 것에 가장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 나도 엄마 아빠가 둘 다 있을 땐 거기 살았었어” 하고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을 지경이었다. 예지는 내가 살던 아파트로부터 걸어서 오 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또 여름방학을 맞아 할아버지 댁에 놀라왔다는 것, 배다른 오빠가 두 명 있다는 것이며, 나만 괜찮다면 당장 결혼하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했다. 어?

“넌 미쳤어” 내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예지가 대꾸했다. “미친 건 오빠가 미쳤지”

“뭐? 내가 왜 미쳤어?”

“나처럼 어리고 예쁜 애가 당장 결혼하자는데, 대답도 안 하고”

예지의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로선 그 말이 치기어린 장난이든지,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이든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나이였다.

“나 진심이야. 서울로 다신 돌아가기 싫거든. 오빠랑 결혼해버리면 돌아와서 죽어라 공부하라고도,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이민가자는 말도 안 하겠지” 예지는 사뭇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웃기고 있네. 공부할 수 있는 걸로도 천만다행인줄 알아야지. 요즘 세상에 공부도 안 하면 뭐해서 먹고 살래?”

“뭐해먹고 살긴? 오빠가 돈 벌어오면 요 앞 가게에서 쌀 사고, 계란 사고, 야채 사고, 가끔씩 고기 반 근 사서 밥 차려 먹고 살지. 나 정말 집안일 잘 할 수 있거든. 아니, 처음부터 엄청나게 잘 하진 못하겠지만”

“아, 진짜 미치겠네”

“왜? 내가 뭐 잘못 말했어?” 예지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투였다.

“뭐, 어디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일단 고등학교도 안 나왔고……”

“고등학교는 나도 안 나왔어”

“넌 아직 중학생이잖아”

“아, 그럼 중학교도 안 나온 거네. 흠. 오빠는 중졸이상이어야 결혼해주는 거야?” 예지는 이렇게 말하고 혼자 웃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옅은 홍조가 눈에 띄었다.

“그런 소리가 아니야. 난 미래가 없어. 공부도 일도 난 하기 싫어. 지금 내 상황을 봐! 부모님도 없이 할머니 집에 얹혀살면서…… 밖에 나오는 일이라곤 가끔 할머니 담배심부름 할 때가 전부야. 그런데 결혼을 하자고? 솔직히 놀리려는 걸로 밖에 안 느껴져. 너처럼 팔자 늘어진 애가 뭘 안다고……”

그렇게 내가 열변을 토하던 와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마 티비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 아니었을까? 예지의 입술은 몇 초 동안이나 내 입을 틀어막다 떨어져나갔다. 정말 그랬다.

“나, 처음이야” 예지가 말했다.

“……”

“왜 아무 말도 없어?”

“…… 무슨 말?” 나는 간신히 대꾸했다.

“오빠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난 원하는 거 없어”

내가 대답하자마자, 예지는 내게 다시 입맞춰왔다. 이번엔 혀까지 집어넣었다. 우리는 아무도 보지 않는 구멍가게 뒷방에서, 몇 분 동안이나 서로의 혀를 핥고 굴리고 섞었다.

“응…… 이제 필요한 게 있지? 그치?” 예지는 침으로 범벅이 된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진심이라고 했잖아. 이것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렇게 해서 오빠가 믿어준다면……”

“잠깐, 잠깐만”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기 바빴다. 일순간에 너무 많은 감각들이 뇌리에 들어와선지, 과부하라도 걸린 듯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난 어쩌면 이 때의 충격 때문에 종양이 생겼거나 더 커진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한 적이 있다.

“뭔데, 오빠 진짜 아무 것도 모르는 거야? 그 나이 되도록 야동도 본적 없는 거야? 시골이라고 인터넷도 안 되진 않을 텐데”

“제발! 좀 조용히 해줄래?” 내가 소리쳤다. “생각을 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잠시만……”

“아니, 시간 없어. 빨리 결정해야해”

“그건 또 무슨 소린데?”

“나 내일 떠나. 아빠한테 전화가 왔는데 생각보다 절차가 빨리 끝나서, 나보고 먼저 미국에 가있으래. 다니던 학교에 자퇴서도 이미 넣어놨다고…… 아빠는 항상 이런 식이거든! 내 의견은 묻지도 않지. 학교 친구들과 작별인사도 못해. 이제 나한테 남은 희망은 오빠뿐이야”

“너무 당혹스러운데” 내가 말했다.

“인생이라는 게, 기회라는 게 다 그래. 갑자기 들이닥치는 거라고. 날 믿어. 항상 그렇다니까!”

“참내, 몇 백 년은 살아본 것처럼 말하네. 중딩 주제에”

“그럼! 그쯤 살아보면 배우게 되는 거지. 어떨 거 같아? 가령……” 예지는 아까와 다른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조금 울먹이는 것 같기도 했고, 아예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완전히 불행한 삶을 살았던 거지. 그래서 한평생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거야. 그 때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그 때 아주 약간의 용기만 냈었더라면, 하고……”

“잠깐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런데 말이지” 예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후회와 불행으로 가득한 삶이 끝나고 죽기 직전의 상황이 된 거야. 딱 그 순간에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진짜, 딱 한 번만 시간을 되돌려서 그 때 그 상황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확히 그 때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이렇게 바보같이 살진 않았을 텐데, 하고 말이야…… 그렇게 눈을 감았다 뜨니까……”

“아……?” 그 순간 나는 꿈에서 막 깬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겨우 일어난…… 그런 기분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된 거지. 어때? 오빠. 다시 한 번 오빠에게 기회가 주어진 거야. 정말 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생긴 거라고. 다 바꿔놓자. 난 정말 괜찮아! 오빠가 평생 화물차운전 같은 일이나 해도, 너무 아파서 하루 종일 병상에 누워있어도, 난 오빠랑 같이 있으면 정말 행복할 수 있어. 그러니까 대답해줄래? 나랑……”

“아니” 나는 대답했다. “하나도 안 괜찮아. 난 너랑 같이 있기 싫어”

“아, 아……”

예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뒷걸음질을 하다가, 가게 문을 열어젖히고 뛰쳐나가서는 영영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죽을 때까지 예지를 만날 수 없었다. 다만 먼 소식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 정도를 알 수 있었을 뿐이다. 그길로 미국에 간 예지가 아이비리그 소속의 명문대학에 합격했다는 것, 법학을 전공해 전도유망한 변호사가 됐다는 것, 그리고 한 벤처기업의 부회장과 결혼해 슬하 1남 1녀를 뒀다는 것까지.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몇 번을 더 되돌아간들 똑같이 대답할 테니까. 예지와 결혼하는 일도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너무 비극적인 나머지, 도저히 나눠줄 수 없는 불행도 존재한다는 것을.

<트루 엔딩>, 2019. 6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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