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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n 28. 2019

습작

쉰세번째


1. 말하자면 정확히 날씨 같은 표정이었다 잔뜩 흐린 가운데 언제 비가 터져 내릴 것 같았고 네 손에는 삼십 분 만에 써 갈긴 내 이별의 편지가 한 통 그 편지에서도 난 네가 우는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밉다고 썼다      


2. 그 때문일까 넌 펑펑 눈물을 쏟는 대신 꿉꿉한 모습 안간힘을 쓰며 지키고 있었고 심지어 방긋 해맑게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웃으면 우리가 만나던 그 날로 돌아가기라도 한다는 듯이 태초의 설렘으로 돌아가 서로 얼싸안고 또다시 지겹게 사랑하려는 듯이      


3. 그런 네가 너무 미워서 난 차라리 뺨이라도 치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했었다 네가 나오는 영화는 너무 지겨워 스크린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필름을 영원히 태워버리겠다고 했다 웃는 낯에 마침내 눈물 한 방을 떨구는 너로부터 돌아 나오자 거기 비로소 세상이 있었더랬다     


4. 그 세상은 온종일 날 들들볶고 달구고 이슬 한 방울 핥아가도록 허락지 않아서 난 너처럼 날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사람 없이 떠돌아 다녔네 그때부터 비는 내리지 않는 오늘마다 난 밉게 울던 네 얼굴로 슬픔을 짓고―그 흔했던 마음 하나 영글지 않는 땅위로― 날카로이 가시를 싹 틔우고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더랬지     


<선인장>, 2019. 6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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