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ul 03. 2019

습작

쉰다섯번째

 “요컨대 거래관계라는 거야. 남녀관계라는 게” 형은 조금 벌개진 얼굴을 하고 말했다. 포차는 주말을 앞두고 시끌벅적했다.     


 “거래라고요?” 내가 물었다. 나는 스스로가 술에 만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럼, 거래지. 물물교환 같은 거야” 형은 소주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지금의 상황이 썩 유쾌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뭐랑 뭘 교환하는 데요?” 나는 적당히 맞춰줄 요량으로 잔을 마주 들어 살짝 부딪혔다. 형은 고개를 뒤로 왈칵 젖히며 술을 들이켰다. 나는 잔을 입술에 갖다 대곤 마시는 척만 하고 말았다.     


 “제기랄, 그걸 말로 해야 해?”     


 “말로 안 하면 제가 어떻게 알아요?”     


 “형한테 말대꾸하는 것 좀 봐. 어떻게 학교다닐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누가 들으면 졸업한지 십 년은 지난 줄 알겠는데요” 나는 짓궂은 얼굴로 이죽댔다.     


 “들어봐, 들어보라고. 너는 남자랑 여자가 연애를 한다고 치면, 서로 원하는 게 같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건 아니겠죠. 각자 다른 사람이니까”     


 “그럼, 물론이지. 당연한 거야. 기본적인 내용이지. 경제학원론에서 배우는 내용이라고. 무역도 서로 비교우위가 있는 나라들끼리나 하는 거지. 서로 원하는 게 똑같으면 아무 거래도 일어나지 않는 거거든. 어때?”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대학 나온 다음에 더 멍청해졌구만, 애가. 갑자기 전화해서 이상한 얘기나 하더니…… 잘 들어. 남녀관계에서 남자가 원하는 것과 여자가 원하는 건 완벽하게 달라. 어디 볼까? 여자는 남자랑 뭐 하려고 사귈까? 응?”     


 “글쎄요,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누구는 돈이 필요해서 만날 수도 있고, 누구는 사랑이 필요해서 만날 수도 있고……”     


 “오, 사랑! 아주 좋은 의견이야!” 형은 느닷없이 말허리를 잘랐다. “그런데 있지, 그게 니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라는 거야. 너는 사랑이라는 걸 믿어? 정말로?”     


 “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믿고 자시고…… 실제로 존재하고 눈에 보이는 거잖아요. 사랑이라는 게 없으면 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요?”     


 “이런, 이런 불우한 중생이 다 있군. 하기야…… 내가 아끼던 동생이니까 하는 말이야, 이건. 다른 사람이 지금 너 같은 뻘소리 하고 있으면, 나는 그냥 일어나서 나갔을 거라고. 야, 여자가 연애에서 원하는 건, 요약하자면 안정감이라는 거야. 심리적인 안정감, 경제적인 안정감, 외부로부터 오는 폭력으로부터 방어되는 물리적인 안정감…… 왜냐? 여자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존재거든!”     


 “방금 말은 좀 위험한데요. 다른 데선 이런 말 안 하죠?” 내가 물었다.     


 “당연히 안 하지. 너니까 하는 말이야. 어디 도청기없지? 하하…… 뭐, 나 같은 변호사는 괜찮아. 판검사놈들이야 따지면 공무원이니까 문제가 되겠지만”     


 “아니, 뭐 그런 문제가 아니라요. 도덕이나 윤리적인 소재 아닐까요, 이건……”     


 “아, 도덕, 윤리, 지긋지긋해. 아주 그냥, 그래서 내가 변호사를 한 거야. 변호사는 당위 같은 게 없거든. 합리적 계산과 판단이 있을 뿐이지. 그래, ‘내 판단으로 봤을 때’ 여자는 불안정해. 동시에 불완전하고. 세상 모든 통계가 그걸 말하고 있고. 당장 우리 업계만 해도 그래. 실적들 따져보라고. 여자 변호사가 맡아서 승소한 게 많은지, 패소한 게 많은지 말이야”     


 “아, 됐어요” 나는 더 이상 말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본론이 뭐에요? 그래서”     


 “아, 그래. 본론. 본론은 여자는 안정감을 원하고…… 남자는 연애로부터 뭘 원하겠어? 응? 당연히 섹스지! 두 말할 것 없어! 어떤 미친 새끼가 ‘나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부족해서 여자를 만나고 싶어’ 라고 말하냐고? 그냥 섹스를 하고 싶으니까 여자를 만나는 거야. 이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그냥 사실이지! 사실!”     


 “그래서 그게 거래라는 건가요? 안정감과 섹스……”     


 “맞아. 그렇지. 사실 안정감이라는 건 여자나 원하지 남자는 원하지 않는 거야. 왜? 스스로도 충분히 안정감이 있거든. 혼자 밥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여자가 곁에 있어봤자 문제 해결 같은 데에는 방해가 될 뿐이야. 그리고 섹스는? 물론 섹스에 미쳐가지고 남자나 쫓아다니는 족속들이 없지는 않지. 근데 대부분의 여자는 섹스를 필수적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솔직히 싫어하는 여자도 많지. 남자들은 그저 욕구 해소를 위해 섹스를 하고, 여자는 거기에 소비될 뿐이야. 물리적인 통증도 있고, 성병의 위험도 있고, 심리적으로도 박탈감이 들거니와 섹스를 많이 할수록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떨어진다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왜 남자랑 섹스 따위를 해주냐고? 남자가 그걸 원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자도 남자에게 원하는 ‘안정감’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그걸 ‘거래’이외의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형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저는……”     


 “아! 나라는 인간에 대해 윤리적인 실망을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나는 없는 말은 못하겠거든. 이게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라는 건 나도 알아. 근데 봐봐. 이런 문제를 인지조차 하지 않고, 세상에 진정한 사랑이라는 게 있다는 듯이, 서로 원하는 걸 숨겨가며 가식적인 웃음이나 지으면서 거짓된 관계를 이어가는 게 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 아냐? 야, 그럼 일반적인 연애의 경과를 그려보자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데이트를 하는 그런 연인을 상정해봤을 때. 주말을 앞두고 만났다, 그럼 남녀는 각자 뭘 하지?”     


 “아” 그쯤해서 나는 이 대화에 진력이 났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만나서 밥 먹고, 공원가서 산책하고, 영화보고, 한강이나 펍같은데 가서 술이나 한 잔 하고, 그 다음에는, 모텔가서 섹스나 하겠죠, 뭐……”     

 

 “그래, 그거야. 근데 그 일반적인 데이트 과정이야 말로 완벽한 거래라는 거지. 막말로, 남자한테는 제일 마지막의 ‘모텔가서 섹스’만 있어도 상관없을 거야. 여자한테는 ‘모텔가서 섹스’라는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만 있어도 상관없을 거고. 여자랑 같이 좆도 재미없는 산책이나 하고, 커피나 마시고, 동네 밥집이랑 별반 차이도 없는 맛집 탐방이나 가고, 세상 즐거운 척 돌아다니면서 사진사 노릇이나 하면서, 여친 인스타를 더 화려하게 꾸며주는 데 기여하는 걸 진심으로 기뻐하는 남자가 어딨겠어? 솔직히 존나 피곤하지. 차라리 피씨방가서 하루 종일 게임이나 조지는 게 훨씬 재밌지 않겠어. 아니면 집에서 잠을 자든가. 근데 여친과의 이 피곤하고 짜증나는 시간을 버티는 이유는, 오직 섹스를 위해서인 거야. 내가 이쯤 참아줬으니 좀 대달라, 뭐 그런 거 아니겠어”     


 “이야, 방금 건 진짜 천박한데요” 나는 진심이었다.     


 “그래, 본디 인간이라는 게 천박하지” 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도 본능적으로 거래라는 걸 아는 거야. 그래서 별로 내키지 않아도, 피곤해도, 모텔에 가서 옷을 벗고 섹스에 임하는 거라고. 별 느낌도 없는데 괜한 소리를 내고, 흥분한 척 시늉을 하고, 오르가즘 흉내도 내고, 자궁 앞쪽이나 질 입구가 따갑고 아파도 꾸역꾸역 참아가면서……”     


 “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변호사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대강 알겠어요. 어떻게 하면 이정도로 인간에 대한 혐오가 생길 수 있을지…… 오늘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저는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저는, 형이 7년 넘게 원만한 연애를 해왔다는 거에 존경심까지 갖고 있었거든요. 누굴 만나든 일 년을 못 가는 저랑 다르게. 그래서 형이나 형수님한테는 뭔가 다른 게 있나, 진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존재하나, 그런 마음으로 물어본 거였다고요. 근데, 형이 말한 걸 미뤄보면, 저는 앞으로 연애라는 걸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정말 그게 남녀간에 이루어지는…… 섹스와 안정감의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면요. 그런 게 무슨 쓸모가 있어요?”     


 “그래! 잘 생각했어!” 진심으로 활짝 웃으며 말하는 형에 모습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형은 넋이 나간 채 서있던 내 손을 꽉 잡아당겼다. “세상에 니가 문란하게 살지 않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단 말이야! 넌 아직 젊고, 얼굴도 반반하고, 몸도 좋고, 명문대 출신에, 돈도 시간도 많아. 나 따위야, 니 말대로 7년 동안 무미건조한 거래를 해왔을 뿐이지. 그나마 우리 사이에는 아주 작은 교집합이라도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야. 나 역시 안정감이 조금은 필요했거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넌 그럴 필요가 없어! 가서 어떤 여자와도 만나봐. 혹시 모르지. 니가 느낀다는 그 공허감이라는 걸, 니가 가진 어떤 걸 받는 대가로 채워줄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안 그래? 하하……”     


 형은 쉬지 않고 말했다. 집에 걸어갈 힘조차 다 빼앗겨버린 나는 그 상태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말도 없이 술을 몇 병이나 더 들이부었다. 나는 그날 밤 정신을 잃고, 만취한 상태로 신사동 근처를 어기적거리며 배회했다.      


 가로수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 아파트가 있었다. 잠에서 깨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숙취가 밀려왔다. 머리가 으깨지는 느낌이었다. 화장실로 곧장 달려가 구토를 하고, 텁텁한 입을 가글로 헹궜다. 휴대폰을 찾으러 돌아온 방에는 모르는 여자 하나가 침대 위에서 벌거벗은 채 잠들어있었다.      


 그 여자와는 한 달이 조금 넘게 사귀다 헤어졌다. 그즈음 형은 ‘7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마침내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로 시작하는 장문의 청첩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메시지를 지워버렸다.     



<신자유주의>, 2019. 7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하단 링크에서 해당 글과 그림을 구매해주시면 작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 글과 그림 구매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