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ul 07. 2019

습작

쉰일곱번째

 “이 새끼 이거, 완전 서울사람 다 됐네!?”


 서울에서 오랜 친구를 만났다. 고향에서 일 때문에 잠깐 상경했다는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서울말 대신 사투리를 쓸 수 있었다. 우리는 강남역 인근의 야외테라스에 앉아 잠깐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역전에는 수백 명 넘는 사람들이 교차해 지나다녔다. 하늘은 조금 흐렸고, 건물 지하로 크게 나있는 주차장 입구 쪽에서 매연에 가까운 바람이 불어 닥치곤 했다. 나는 친구에게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역 주변에는 식사를 할 곳이 마땅찮았다. 끼니를 해결할 곳은 많았지만, 워낙 사람이 붐벼 한가로이 밥을 먹을 만한 곳은 거의 없었다. 간신히 커다란 유리건물 뒤꼍에 있는 골목에서 브런치며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사람은 우리를 포함해 열댓 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나는 큰 샌드위치 두 개와 스프 하나,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많이 변했구나” 친구가 말했다.     


 “그렇지, 뭐” 내가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할지’를 고민하다니. 기이한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어땠었지? 생각해보면 그 땐 재미없는 주제도 달리 없었다. 생각하는 어떤 말이든 아무렇게나 할 수 있었고, 그러다보면 어떻게든 즐거운 대화라는 것이 돼버리곤 했던 것이다.     


 대화라는 게 머리를 써가며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 그런 철없는 얘기들을 하기엔 우리가 너무 커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야구선수에 대한 얘기도, 매일같이 연습하는 게임에 대한 얘기도, 건넛 반의 누구가 어느 여고의 누구와 사귄다더라 하는 얘기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대신 여태 해온 것들과 앞으로 할 것들에 대한 걱정이나 각오 같은 것들, 그리고 서로를 향한 격려와 응원 같은 이야기들을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어른들은 왜 그렇게 재미없는 얘기들만 해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그런 주제들 말이다.     


 우리는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조만간 다시 보자, 하는 기약없는 약속을 한 뒤 헤어졌다. 나는 어른이 됐고, 친구도 어른이 됐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 있는 슬픔이라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친구라는 존재가,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 존재로부터 슬픔과 애달픔을 이해하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서울 사람’이 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모래먼지 날리던 운동장에서 친구와 함께 야구공을 주우러 다니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 나는 살이 조금 쪘고, 빚이 꽤 생겼고, 머리를 길렀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을 외따로 익혔고…… 슬픔을 감추는 법을 배웠다.     


 막 상경했단 스무 살 때의 나는 슬픔을 감추지 못해 많이 울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백발의 할머니가 리어카에 폐지와 재활용품을 끌고 다니는 모습에, 서울역 입구에서 때 묻은 등산복을 덕지덕지 걸친 채 술을 마시는 아저씨들의 모습에, 열차 안에서 복대, 나무로 된 안마기며 고무깔창 같은 물건을 팔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행상인과, 그 누가 떠들든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휴대폰 화면만 쳐다보던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대형 병원 앞에서 엉성한 피켓을 들고 주저앉아있는 여인의 모습에, 자기보다 훨씬 큰 남자들의 눈치를 보며 화장실을 청소하러 오는 아주머니와, 아랑곳도 비켜줄 생각도 하지 않는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아무 슬픔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서울은 나의 슬픔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사람들은 하나같이 슬프지 않은 것 같은 얼굴로 돌아다녔다. 어느 날 나는 그들과 똑같은 얼굴을 하곤 신림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연두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뭐가 슬펐던 건지, 어떤 것에 슬퍼하던 사람이었는지, 모두 잊어버린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사람이었다. 

     

<서울사람이 된다는 것>, 2019. 7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하단 링크에서 해당 글과 그림을 구매해주시면 작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 글과 그림 구매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