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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09. 2019

습작

쉰여덟번째

 “어…… 그러니까 학생 말은……” 강의실 앞쪽 모서리에 잠자코 앉아 있던 노교수가 말했다. “지금 F조에서 출석한 사람은 학생 한 명 뿐이라는 얘기죠?”     


 “아, 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내가 말했다. 동시에 강의실에 앉아있던 오십 명 정도의 학생들이 작게 킥킥거리는 소리가 번졌다.      


 “음…… 보통 중간발표 때부터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교수는 몹시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밀고 당겨지는 십수 개의 주름들로부터 느껴지는 당혹감, 어이없음, 그리고 홀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한 나라는 학생에 대한 동정심. 내게는 한 줌의 위안도 되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야 어떤 말이나 행동인들 위로가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학생은 준비해온 자료가 따로 있나요?” 교수가 재차 말했다.     


 “아, 아뇨. 오늘 오기로 했던 다른 세 명이 자료수집이나 발표자료 작성을 도맡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사흘 전부터 연락이 안 돼서……”     


 “그럼 그 전에는 연락이 됐나요?”     


 “네. 단톡방이 연결이 돼 있긴 했는데…… 제가 느끼기엔 그 세 명이 좀 아는 사이 같더라구요. 조금 소외되는 기분은 있었는데, 뭐 복학생이야 어딜 가든 비슷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 빼고 세 명이 한꺼번에 드랍을 할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앗, 아아……” 몇 명의 학생이 안타까움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소리를 냈다. 어지간히 쉰 걸 봐선 나랑 같은 복학생 신세인 것이 확실했다.     


 “참 딱하게 됐네요” 교수는 진심으로 가슴아파했다. 치욕스러웠다. “현대경제학 개론이 교양치곤 어렵긴 하니까요. 적응을 못한 타과학생들은 드랍하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한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학생은 개인과제도 잘해왔는데 말이에요”     


 “……”     


 “조는 적당한 곳에 인원을 추가하는 식으로 다시 배정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중간발표로 인한 점수는 어떻게 할까요?”     


 교수의 질문에 강의실의 어느 누구도 답변하지 않았다. 교수는 그대로 삼십 초 넘게 기다리다가 이어 말했다. 

    

 “……다른 학생들이 부당하다고 생각지 않는다면, 저는 교수 재량으로 이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싶네요. 이전에 해온 과제로 봤을 땐 게임이론의 기본개념이나 이해는 된 학생인 것 같고요. 그런데 추가 과제를 내기에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불이익을 받는 셈이고. 그래서 이건 내 생각인데, 지금 즉석으로 ‘실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넌 제로섬 게임, 윈-윈전략의 예시’를 짧게 발표할 수 있겠어요? 너무 느닷없기는 하지만, 추가과제를 하면서 뒤처지는 것 보단 여기서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아서요. 어때요? 학생의 의견은……”     


 “어, 저…… 그게……” 나는 바쁘게 통밥을 굴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수십 명의 눈빛이 내 표정 그리고 부끄러움에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응시하고 있었다. 난 이 자리에서 즉사해도 나쁘지 않은 인생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대답했다.     


 “여기서 발표하고 끝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앞으로 나와서” 교수가 대답했다.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교수가 앉아있는 강의실 앞쪽으로 걸어갔다. 인싸처럼 보이는 학생 몇 명이 오-, 오오-, 하고 호들갑떠는 소리를 냈다. 새내기들은 다른 모든 학번이 자신을 존나 패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새내기 때는 몰랐으니까.     


 “여기, 마이크……”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조교는 내 발걸음에 맞춰 일어나 마이크를 건넸다. 나는 왼손에 마이크를 거꾸로 집어든 채, 얼빠진 얼굴로 단상에 홀로 섰다.     


 “자, 시작하세요” 교수가 신호했다.      


 “어, 음……” 이젠 피할 방도가 없었다. 어떻게든 입을 털어야한다는 생각에, 나 자신의 생존본능에 모든 심신을 맡겨버리기로 했다. “저는…… 남고 출신입니다”     


 교수와 조교, 그리고 뒤에 앉은 수십 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입을 닥쳤다. 이럴 때만 빌어먹게 조용한 족속들이었다. 나는 차라리 죽고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실상 불가능한 일이므로 계속해서 입을 놀리기로 결심했다.     


 “우리 학교는 평범한 일반계 평준화 고등학교였는데요…… 굳이 특이한 게 있다고 하면 학교 부지가 상당히 넓었다는 점이겠습니다. 학교 안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옆에는 별채로 된 식당 건물이 길게 뻗어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사이에 좁은 골목 같은 게 있었거든요. 이게 구조를 좀 설명하기가 복잡한데…… 거기가 묘하게 바깥에선 잘 안 보이는 구도의 공간이었어요.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고, 찾아갈 일도 없는, 뭐 그런 곳이었죠.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 좀 나간다싶은 친구들은 다 거기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 순간 대부분의 학생의 표정에 웃음기가 번졌다. 오직 교수만이 엄격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 이 얘기가 왜 나왔냐면. 이게 좀 어이없는 얘기이긴 한데, 제가 인생에서 직접 경험하고 봐온 것들 가운데 가장 ‘상생’이라고 할만 한 일이 바로 거기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우리 학교…… 아니, 대부분의 평준화 고등학교가 그럴 겁니다. 학생이 세 부류로 나눠지죠. 공부를 엄청나게 잘 해서 어느 대학에 갈지 일찌감치 윤곽이 보이는 친구들이 있고, 반대로 무지하게 못 해서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졸업이 가능하긴 할까 싶은 친구들도 있는데, 가장 최악인 건 이도저도 아닌 놈들이죠. 진지하게 공부를 할 생각도 없지만, 아주 놀거나 선을 벗어날 용기는 없는 놈들 말예요. 그렇다고 뭐 뚜렷한 인생의 목표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그런 애매모호한 놈들이 있죠. 제가 그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그때쯤 해서 몇 학생들은 대놓고 웃어대고 있었다. 나는 신경끄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이학년이 끝날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우리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시고, 집도 좁은 곳으로 이사가고, 어머니가 매일 같이 울고…… 저한테도 엄청나게 우울한 시간이었습니다. 공부는 원래 생각도 없었는데, 그 상황이 되니까 뭐라도 하기가 싫더라구요. 집안에 도움이 될 생각은커녕, 오히려 엇나가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주말에는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슈퍼마켓에 가서 담배를 한 갑 샀어요. 물론 저는 미성년자였지만, 그때도 지금이랑 똑같이 생겼었기 때문에 아무 의심도 사지 않고 담배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 교수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웃음소리인지 한숨소리인지 묘하게 분간이 가지 않는 소리였다. 나는 자신감을 조금 잃을 뻔 했지만, 이제 와서 얘기를 멈추는 것도 못할 일이었다.      


 “그, 그래서…… 평일이 되자마자 저는 거기에 갔어요. 아까 말했던 그 담배 피는 골목에요. 마침 거기에는 좀 노는 애들이 이미 담배를 태우고 있었죠. 그때 솔직히 좀 쫄긴 했는데, 아무렴 남자는 자신감이다 싶어서 당당하게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때였어요. 뒤따라오던 우리 반 일진 한 명이 제 어깨를 잡아 돌리더니, 그대로 뺨을 후려갈기는 겁니다. 걔는 그냥 일진도 아니었고, 말하자면 우리학교 일짱 쯤 되는 친구였어요. 좀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즈음 나는 숨을 한 번 돌린 다음, 그대로 이어서 말했다. “어쨌건 전 그 때 정신이 확 돌아왔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겠죠. 인생에서 뺨을 맞아본 것 자체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쎄게 맞는 것도 참 드문 경험이긴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왜 맞았는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개길 생각은 못하고 멍청하게 서있었는데…… 그 일진이 제가 얼떨결에 떨어트린 담뱃갑을 집어 들고 저한테 말하는 거에요. ‘너 같은 찌질이 새끼가 어디 담배를 피려고 하냐, 들어가서 얌전히 공부나 해라. 한 번만 더 여기서 눈에 띄면 허리에 칼침을 놔주겠다’고요. 실제로 그 친구는 일 년 전에 근처 학교에 있는 학생한테 칼부림을 했다가 소년원에 다녀왔던 친구였습니다”     


 “하하! 그래서 결론이 뭐죠? 시간이 꽤 지났는데……” 교수가 짐짓 유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쁘지 않았던 걸까? 나는 얼굴에 조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결론은, 제가 그대로 교실로 기어들어가 수능특강을 펴서 풀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렇게 쳐맞고 나니까 공부를 안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안 하면 안 한다고 처맞을 것 아닙니까. 심지어 그 같은 반이었다는 일진은 금방 소년원에 갔다온 탓에 출석에 상당히 신경을 썼거든요. 또 하필이면 고삼때도 같은 반이 돼버려서…… 일 년 내내 학교에서 공부만 했습니다. 수업에 집중 안 하면 존나 맞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공부를 하다보니까 왠지 관성이 생겨버려서…… 결국 엄청나게 성적을 올려서 이렇게 인서울 사 년제 학교에 덜컥 입학해버렸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학생들은 제각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얼마나 박장대소를 하는지 되려 비웃음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는 그 소란가운데 교수의 날카로운 눈빛이 파고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런데” 교수는 안경코를 손가락 끝으로 올려 보이며 말했다. “학생이 그 친구 덕분에 성적이 올랐고……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는 건 훌륭한 결과라는 걸 알겠습니다. 근데 그걸 윈-윈이라고 하려면 그 일진이라는 친구도 얻는 게 있어야 할 텐데요. 아닌가요?”     


 “아, 그 친구가 얻은 건 명확합니다” 나는 가능한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담배 한 갑을 꽁으로 얻었잖아요. 제가 일주일 용돈을 털어서 산 담배를요. 심지어 한 대도 못 피웠는데……”     


 “아” 교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했고, 강의실에 즐거운 소음이 일었다. 나는 그 즉석발표에서 평균이상의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현대경제학 개론’에서 최종적으로 F를 받고 말았는데, 하필이면 기말시험 날에 거하게 늦잠을 자버린 탓이었으니 세상일이란 참 종잡기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이론과 실제>, 2019. 7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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