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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30. 2019

습작

일흔번째

"글은 잘 읽었어. 근데 결론이 뭐야?"    

 

"네?"     


편집자가 한숨을 쉬었다. 전화 너머로도 느껴졌다.     


"네 생각은 알겠는데, 정확히 어느 입장이냐고"   

 

"입장이랄 것도 없어요. 전..."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편집자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네가 그 문제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뭔데? 예를 들면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마음으로 응원하거나, 뭐 그런 게 있을 것 아니야"     


"슬픈 것 같아요"     


"뭐?"     


"그냥 그런 문제가 있어서 슬프고 마음이 아파요.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도요. 그건 그냥 슬픈 일이죠"     


"그래, 그러니"     


"네"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편집자가 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슬픔은 돈이 안돼. 분노와 혐오가 돈이 되지"     


"네"     


"이 글은 지면에 올릴 수 없어. 사람들은 이런 글을 보지도 않을 거고"     


"네"     


"보더라도 욕을 할거야. 그래서 결론이 뭐냐, 대체 어느 편이냐, 결국 양비론 아니냐 같은 걸로"     


"네"     


"미안하다. 나도 이게 슬픈 일이라 생각해"     


"..."     


편집자가 슬프다 말하는 것이 내가 글에서 다뤘던 것인지, 아니면 내 글이 지면에 오르지 못한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난 전화를 끊고 누웠다. 괜찮아요. 고료는 그대로 챙겨주겠다는 말에 대답이 뒤늦게 새나왔다. 고료를 받으면 가장 먼저 어디에 써야하나. 아. 고장난 샤워기 헤드부터 바꿔야겠다. 수압이 너무 약해, 수압이..  

   

<슬픈 것들>, 2018.7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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