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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31. 2019

습작

일흔한번째

“텍스트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어!”     


마주앉은 교수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기된 얼굴에서 알콜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교수님, 많이 취하셨어요”     


나는 조심스러운 투로 말했다. 교수는 사탕 뺏긴 아기처럼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이 놈이,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시는데, 취한 사람으로 취급을 해?”     


“지금도 봐요, 혀가 완전히 꼬였잖아요”     


내가 대꾸했다. 교수는 다시 한 번 양쪽 입꼬리를 내려 보이더니, 술잔을 들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오른편의 반 쯤 남은 소주병을 들어, 적당히 예의바른 자세로 술을 따랐다. 교수에게 술을 따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표면장력이 생길 때까지 잔을 꽉꽉 채워야하기 때문이다. 술이 한 방울이라도 흘러넘치면 호통이 이어졌다.     


“야 임마! 정신을 어디두고 따르는 거야? 술 아깝게시리……”     


교수가 왼쪽 검지로 바닥에 떨어진 술을 쓸어 먹었다. 난 아랑곳 않고 내가 앉은 구석자리 주위를 둘러봤다. 스무 명이 넘었던 학생들은 하나둘 빠져나가서 대여섯밖에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만취상태로 제각기 다른 얘기를 뇌까리고 있었다. 나 역시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정신만큼은 학기 중 어느 때보다 뚜렷했다. 원래 흐릿했던 모든 과정은 끝에 와서야 뚜렷해지곤 한다. 난 정신을 바짝 잡으려는 듯 얼굴을 몇 번씩 찡그려보였다. 얼굴근육이 뻑뻑했다.     


“그래서, 인턴 생활은 어땠냐?”     


교수가 술을 입에 갖다 대다 말고 묻고는, 말이 끝나자마자 술잔을 싹 비웠다. 그리고 다시 내 앞으로 잔을 내밀어오는 것이다. 이미 스무 번은 넘게 반복한 과정이었다.     


“어떻기는요, 다 아시면서. 보도자료 받아쓰고, 하루 종일 쓰고, 까이고, 기사 나가면 욕먹고…… 똑같죠, 뭐” 

    

나는 교수님의 잔에 술을 채우면서 말했다.     


“이 놈아, 그러니까 내가 가려면 방송이나 시나리오로 가라 그랬잖아, 영상물 시다바리나 하라고…… 요즘 어떤 사람이 글을 읽냐? 국문학과 교수도 안 읽는 대두!”     


“그건 교수님이 게을러서 그런 거구요”     


“이런…… 반 년 만에 제자를 만나서 이런 얘기나 듣고, 이거 서러워서 교수 하겠나?”     


교수가 빈정댔다. 그리곤 술을 마시고, 잔을 내밀고, 원망 가득한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교수님이니까 괜찮겠죠, 저는 미천한 학생이라 게으르면 굶어 죽는다구요”     


“야이…… 넌 교수가 참 편한 직업인줄 아는가봐?”     


“그게 편한 줄 알았으면 계속 글공부나 했을 거 에요, 삶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당장 돈 되는 거 쓰는 게 세상 편합니다”     


“허! 참내, 돈 되는 글이 세상에 어디 있어?”     


“제가 요즘 쓰고 있는 게 돈 되는 글이죠”     


“그게 글이라고 할 수 있냐? 그런 건 요즘 기계가 더 잘 써, 너보다 비문도 덜 쓰고 맞춤법도 잘 맞추지…… 네가 기계보다 나은 게 뭐가 있어?”     


교수가 일갈했다. 나는 잠자코 생각했다. 그동안 교수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스스로 술을 따라 마셨다.     


“나은 게 없네요. 아마 장기적으로는 교체가 되겠죠, 저도 교수님도 전부 기계로요”     


“그래 임마, 이제 알았냐? 우리 다 같은 처지라고. 하여간, 별 쓰잘데기도 없는 텍스트나 배워가지고서는, 너도 전과를 할 거면 영상으로 가야했어, 그게 아니면 코딩이라도 배웠어야 해, 내가 분명 경고했잖아?”     


“네, 경고하셨어요”     


“이제 굶어죽을 일밖에 남지 않은 거야. 나야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대학에서 녹 받아먹는 처지니까 죽을 때까지는 걱정이 없는데, 너는 이 자식아…… 정말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안 굶어죽으려고 발버둥이라도 치는 거죠, 뭐, 이제 와서 코딩이나 배울걸, 후회해봤자 어쩌겠어요?”     


“안타까워서 그래, 안타까워서…… 사람들은 이제 글을 안 읽는단 말야! 책도 영상으로 봐, 소설은 영화로 보지, 기사는 요약해서 보고 댓글이나 본다고,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거지, 네 까짓 놈이 쓰는 고리타분한 글은 아무도 안 봐, 아무도”     


“……아무도요”     


“그래, 아무도 남지 않을 거야. 글이라는 걸 읽으려는 사람은 지구에 한 명도 남지 않겠지. 모든 정보와 이야기들은 영상과 체험의 형태로 바뀔 거야, 우리가 죽을 때쯤이면 명백하게 그렇게 되겠지”     


교수는 웬일인지 가라앉은 투였다. 고개를 숙이고 코를 몇 번 훌쩍거리더니 다시 술을 들이켰다. 나는 멀뚱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데요, 교수님”     


“뭐, 임마?”     


교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교수와 눈을 맞췄다.     


“언젠가 세상에 글을 읽으려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잖아요?”     


“응, 꼭 그럴거야, 장담해”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은 계속 태어날 거 같아요, 적어도 제 생각에, 글 쓰는 사람들은 그냥 태어날 때부터 글을 쓰게끔 태어나거든요…… 잘 쓰든 못 쓰든 간에, 세상에서 더 많은 슬픔을 느끼도록 태어난 사람들은 결국 글을 쓰게 돼요. 누가 읽어주지 않더라도 계속 쓰겠죠. 설사 기계보다 못한 글이라도 계속 쓸 거 에요. 그 사람들은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픔을 달고 태어나니까요. 삼색 고양이가 꼬리를 달고 태어나 듯이요. 수요가 없어도 공급은 계속되는 거죠”     


말을 맺고 나서, 나는 비로소 만취했음을 깨달았다. 취하지 않고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교수는 날 계속해서 쳐다봤다.     


“그러게, 불쌍한 놈들이야. 차라리 고양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교수가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참, 그러게요……”     


나는 졸린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그 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다음 날 눈을 뜬 곳은 자취방 침대 위였다.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술 냄새가 진동했다. 위장은 똬리를 틀고 장기들을 괴롭혔다. 난 기름칠한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일어났다가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겨울 햇살은 창문으로 차갑게 스며들어서는 방 가운데 수직선을 긋고 있었다. 열린 창밖으로 봉고차가 지나가는 소리, 이름 모를 새가 부쩍 짹짹대는 소리가 겹쳐 들어왔다. 나는 불현듯 슬픈 기분이 들었다.     


<사과나무>, 2018. 11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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