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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ug 04. 2019

습작

일흔세번째

 이탈리아 유학 당시 종훈은 커피에 푹 빠져 지냈다. 하숙하던 건물 아래층에는 자그마한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낡고 초라한 외양과 달리 내부는 퍽 고즈넉했다. 종훈은 입맛이 없을 때마다 카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비스킷 몇 개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카페 주인은 안토니오라는 이름의 이탈리아인이었다. 서양인치곤 작은 키에 무성한 턱수염이 인상적인 남자였는데, 워낙 하얗게 샌 머리 때문에 이제 겨우 오십 줄에 접어든 사람이라곤 믿기 어려웠다. 원두를 갈거나 샷을 내릴 때가 아니면 테라스 자리에 앉아 신문이며 두꺼운 책을 펴놓고 읽는 모습이 전부였으며,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딸 루시가 아니었다면 주택가 골목 한 가운데 작게 나있는 그 카페는 도서관보다도 조용했을 터였다.


 루시는 붙임성이 좋고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열일곱살 소녀였다. 동글동글한 인상에 길게 자란 금발을 한 줄기로 땋고 다녔고, 웃을 때마다 빨개지는 보조개가 귀여웠다. 그런 루시와 함께 커피를 홀짝이며 대화하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종훈의 유학생활은 패배감과 함께 일찌감치 마무리됐을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루시의 권유로 지역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바리스타 클래스에 등록했던 것은 종훈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원래부터 흥미가 없었던 대학공부는 잠깐 접어놓고, 한동안 커피 공부에 매진한 결과 덜컥 자격증까지 취득해버린 것이다.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바리스타 경연대회에 나가 종합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사이 성인이 된 루시는 토리노의 한 단과대학에 진학했다. 종훈은 루시에게 마땅한 작별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자신에게 새로운 꿈이자 목표를 갖게 해준 그녀에게 감사의 편지를 남긴 뒤 귀국을 결정했다.     


-     


 도로를 둘러싼 노량진 학원가. 막 강의를 끝낸 수험생들이 골목골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비교적 한산했던 거리는 금세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학생들 대부분은 이른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이 모여 있는 상가 방향으로 걷고 있었는데, 그 길목 왼편의 어느 건물 일층에서 며칠째 제법 큰 공사가 이뤄지는 중이었다.


 “여기는 대체 공사가 언제 끝난대냐? 얼마전까지 시끄러워서 강의도 잘 안 들리더니” 공사현장 곁을 걸어 지나던 학생 한 명이 운을 뗐다. 


 “몰라, 씨발. 이거 그나마 저녁때 공사하는 게 어디야. 그전엔 나 진짜 고혈압으로 뒤지는 줄 알았다니까” 곁에서 나란히 걷던 학생이 말했다. “원장이 구청에다가 소음으로 민원 넣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대낮에 계속 했을걸? 아니, 상식적으로 노량진에 학원들 쫙 깔려있는 곳에다가 공사를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어떡하냐? 그것도 지들 덥다고 문도 활짝 열어놓고 공사 했다더만”


 “대체 뭐가 들어오는 거지? 새 학원은 아닌 거 같고. 인테리어 보니까 좀 신경 쓰는 거 같던데, 카페 같은 건가?”


 “여기가 카페자리는 아닌데”


 “모르지, 뭐”


 “걍 피씨방이나 생겼으면 좋겠다”


 “피씨방은 무슨…… 일 층에 무슨 피씨방이야?”


 “뭐? 인천에 일층 피씨방 개많은데? 너 존나 인천 무시하냐? 어?”


 “니 얘기만 들으면 인천 존나 이상한 도시라니까. 전에는 길에 뭐 말도 돌아다닌다며?”


 “그건 컨셉이었고” 학생이 말했다. “이번엔 진짜라니까”     


-     


 종훈은 거의 텅 비다시피 한 카페 내부를 눈으로 훑었다. 사람이 채워진 테이블은 단 한 곳뿐이었는데, 그마저 아침부터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 책을 펴놓고 버티는 학생으로 매출에 큰 도움은 못됐다. 


 ‘피렌체 정통 에스프레소의 향을 느껴보세요!’


 매장 한 켠에 세워진 엑스배너였다. 한 달째 장사가 시원찮아 매장 테라스 앞쪽에 세워놨던 것을 ‘좁은 길에 학생들 통행이 불편하니 조치해 달라’는 동사무소 직원의 언질이 있고 나선 가게 안쪽으로 옮겨놓았다.


 광고판을 멍하게 응시하던 종훈이 한숨을 쉬었다. 내다버릴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좀처럼 손이 가질 않았다. 당장은 한두푼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처음엔 안토니오처럼 여유롭게 책이라도 읽을까 했다. 그래서 <마시멜로 이야기>, <넛지>같은 자기계발서적 두세 권을 사두곤 틈틈이 읽기를 시도했지만, 심적인 여유가 없어선지 글자가 영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아무렴 책을 펴놓고 있어도 무리해서 장만한 고가의 커피머신이 더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종훈은 귀국하자마자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상가 보증금이며 인테리어 비용까지,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마련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을 조르고 싸운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간 한국에서는 구경도 못했을 커피를 내놓을 것이라고, 게다가 학원가에 있는 카페는 절대 망하는 법이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초기에는 손님이 너무 많을 것을 대비해 아르바이트도 세 명이나 구했지만, 학생들은 그저 텅 빈 유리벽 너머로 힐끔거리며 지나갈 뿐 가게로 들어오지 않았다.


 손님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는 한 명만 남긴 뒤 모두 잘라야했고, 일손이 부족하니 영업시간 볼륨을 줄여야 했다. 영업을 짧게 하자 그나마 있던 매출규모도 쪼그라들었다. 결국 매월 대출금 이자를 갚기에도 벅찰 지경이 돼버렸으니, 실로 완벽한 악순환이라 할 수 있었다.     


 “지훈아. 우리는 왜 장사가 안 될까?” 종훈은 갓 교대하러 출근한 아르바이트를 보고 말했다. 


 “아, 사장님. 또 똑같은 말씀하시네. 전에도 대답했었잖아요. 노량진에서 육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누가 마시겠냐고요” 지훈은 아르바이트용 앞치마를 두르면서 말했다. “어차피 커피 값은 내릴 생각도 없으시면서”


 “아메리카노가 너무 비싸면……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되지…… 에스프레소는 오천 원이잖아……” 종훈이 비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학생이 무슨 에스프레소를 마셔요? 안 그래도 여기 커피 취향 타는데 그걸 샷으로…… 말이 됩니까?” 지훈이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건 지훈이 니가 잘 몰라서 그래. 피렌체에서는……”


 “여긴 한국이에요, 피렌체가 아니라. 그 이탈리아 얘기는 다 외웠어요, 저. 여기서 달달 읊어볼까요? 거, 이태리 사람들은 아침마다 에스프레소를 밥처럼……”


 “아, 됐어. 누굴 놀리냐” 종훈은 지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허리를 끊었다. “답답해서 그래, 답답해서. 오죽하면 아르바이트한테 이런 걸 묻겠어, 내가”


 “음, 좀 컨셉을 다양화하는 건 어때요? 여긴 종류가 샷 베이스밖에 없잖아요. 다른 데선 생과일주스에 스무디까지 파는데. 좀 시대착오적이지 않나요? 뭐, 알바하기는 좋지만”


 “어떤 식으로의 다양화를 말하는 건데?”


 “저 길 건너편에 카페 있잖아요. 최근에 장사 잘 되는데”


 “큰 곳? 작은 곳?”


 “작은 곳이요” 지훈이 대답했다. 


 “아, 그래” 종훈이 멋쩍게 말했다. “왜 장사가 잘 되지? 별 거 없어 보이던데”


 “신메뉴를 냈거든요. 홍삼라떼라고”


 “뭐?” 종훈은 아연실색했다. “커피에 홍삼을 넣는다고…… 어째서?”


 “글쎄요. 스테미나 보충용 아닐까요? 여기 노량진 학생들 다 원기가 부족한 편이니까. 맛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고요. 좀 중독적인 뭔가가 있다고 해야 하나?” 


 “너도 마셨어?”


 “네, 마셨죠. 저도 학생인데”


 “제기랄, 그딴 걸 왜 마시는 거야? 심지어 그건 커피라고 할 수도 없잖아”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쯤 되면 커피의 재창조라고 봐야죠. 사람들은 늘 새로운 걸 원하잖아요. 우리도 그런 거 하면 되죠. 미원 사다 넣어서 다시다라떼 어떻습니까?”


 “미원 넣는데 왜 다시다라떼인데?”


 “그게 매력인 부분이죠” 지훈은 기묘하게 미소지었다.


 “난 그렇겐 못 하겠어. 바리스타로서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지……” 종훈은 못내 부들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좀 더 본질적인 대책으로다가 말이야”

 

“본질적인 대책 찾다가 다 죽어요. 아니면 그냥 엄청 예쁜 여자애라도 한 명 구해놓든가요”


 “그게 커피랑 뭔 상관인데?”


 “원래 잘 되는 카페는 커피랑 상관없이 잘 되는 법 아닐까요?” 지훈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건너편 큰 카페에 남학생들 엄청 들어차는 거 아시죠? 거기 오후 알바가 점장 딸이거든요. 걔가 이렇게 생겼어요” 


 “뭐야, 얘 무슨 모델이냐? 뭔데 이렇게 예뻐?” 종훈은 지훈이 불쑥 내민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이돌 연습생이라던데요? 실물로 보면 더 장난 아니에요. 그냥 다른 행성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얼굴도 엄청 작고……”


 “그 카페도 갔었어?”


 “네, 당연하죠. 저도 남자인데”


 “근로기준법만 없었어도 넌 나한테 맞아죽었어”


 “그건 형법인데요.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아야!” 지훈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와, 조인트까고 원두 갈러 가는 것 봐…… 사장님! 원두 안 갈아도 돼요! 다 팔리리면 한참 남았어요!”


 “닥쳐” 종훈이 말했다.     


-     


 “가게 정리는 다 끝났니?” 어머니가 물었다. 


 “네. 뭐, 별로 정리할 것도 없었어요. 업체 쓰니까 사흘도 안 걸리던데요” 종훈은 길게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아유, 피곤해…… 근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아니 그냥…… 아쉬워서 그러지, 이제 막 잘돼가던 차였잖아. 커피숍 말이야. 그대로 있었으면 대박쳤을 것을 왜 정리했나 싶고……”


 “대박은 아니고 그냥 손익분기점이나 넘긴 거죠. 이번에 정리하면서 손해 안 본 게 어디에요. 그걸로 족해요, 저는”


 “종훈이 너는 기쁘지 않아? 꿈을 이뤘잖아” 어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엄마는 잘 모르겠어. 니가 왜 이탈리아에 다시 가는 지도…… 한국에서 뭔가 더 할 순 없는 거니?”


 “꿈 이룬 적 없어요. 카페 차려서 잘 되는 게 꿈이라고 하긴 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냥 카페가 잘 되는 건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럼?”


 “제가 노력해서 잘 되는 게 의미가 있는 거였죠. 근데 아니었으니까”


 “니가 노력을 안 했으면 어떻게 잘 됐겠어. 다 종훈이 니가 잘한 덕분이지. 그런 소리 하지마라” 


 “……” 종훈은 어머니의 타박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 절반쯤 싸놓은 짐을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떠나는 날의 인천공항은 평소에 비해 퍽 한산했다. 종훈은 탑승수속을 끝마친 다음 게이트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폰 또는 정면의 TV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연예계 뉴스가 보도되는 중이었다. 젊은 리포터가 여자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를 인터뷰하는 모양이었다. 좌측 상단에는 <특별 인터뷰 : ‘노량진 카페 여신’ 아르바이트에서 아이돌 경연 우승까지?> 라는 자막이 조그마하게 붙어있었다.     


 “그러니까, 방송에 나가고 나서 알바 하던 카페가 엄청 잘 됐었다구요”


 “아, 네. 하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방송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귀여운 인상의 소녀였다. 리포터의 질문에 부끄러운 듯 입을 가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자 손님이 많이 오긴 했었던 거 같아요”


 “혹시 사장님이 싫어하진 않았나요? 사람이 너무 몰려서 바빠 죽겠다든지”


 “아뇨, 좋아하셨어요. 원래는 장사가 잘 안 되던 카페였거든요. 그래서 사장님이 걱정도 많이 하셨었는데…… 제가 어떻게든 도움이 돼드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아하, 사장님이 좋아하셨구나. 그럼 혹시 사장님이 소혜씨를 의식하거나 하진 않았나요? 아무래도 그 때 아이돌 경연이 엄청 화제였잖아요. 유명세를 탄 뒤에 좀 더 잘해줬다거나, 시급을 올려줬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당연히 시급은 안 올려주셨구요……” 소혜가 대답했다. 이윽고 리포터를 비롯한 방송 출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손님이 많아지니까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시도하시긴 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신다든가 하는”


 “우와, 어떤 메뉴를 개발하셨는데요? 아무래도 노량진이니까, 컵밥을 팔기 시작했다든가…… 그건 아니죠? 하하” 리포터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네, 그건 아니고. 좀 이상하긴 한데, 인삼라떼라고……”


 “인삼라떼라구요?!” 화면은 휘둥그레진 리포터의 표정을 클로즈업했다. 동시에 모니터 하단에는 한껏 과장된 폰트로 <인삼라떼?!>라는 자막이 튀어나왔다. 


 “먹어보셨나요, 그거?”


 “네, 저는 꽤 맛있었던 것 같아요. 좀 중독적인 맛이었는데, 사장님이 되게 커피에 조예가 깊으셨거든요. 이탈리아에서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따신 분이라” 소혜가 대답했다.


 “와, 이탈리아에서 배워와서 인삼라떼를 만들다니…… 창의력이 대단하신 분이었네요” 리포터가 살갑게 맞장구쳤다. “그 인삼라떼는 지금 가도 마셔볼 수 있나요? 소혜씨가 맛있었다고 하니까 저도 먹어보고 싶은데. 지금 TV보시는 분들도 똑같을 것 같은데요”


 “아, 지금은 못 마셔요. 사장님이 가게를 정리하셨거든요”


 “아~ 정말 안타깝네요” 리포터는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설마 소혜씨가 나오고 나서 카페가 망한 건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마 아닐 것 같은데……”


 “그건 모르는 일이겠죠? 카페 사장님! 보고 계시면 소혜씨한테 전화한통 넣어주세요! 시급 올려줄 테니까 돌아오라고! 어서!”


 리포터가 호들갑을 떨었다. 소혜를 비롯한 화면 속 출연진들이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화면을 튀어나와 공항 게이트 앞까지 번져왔다. 그런 가운데 오직 종훈만이 무표정한 얼굴로, 왼쪽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륙까지는 아직 삼십분이 넘게 남아 있었다.           



<Bittersweet>, 2019. 8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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