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지 않는 아침이 낯설고 허전했다.
그 허전함은 계획형 인간을 무모하고 즉흥적으로 만들었다.
커리어 계획도 재정비도 다 제쳐두고
오랫동안 상상만 하던,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엉켜 있던 인연의 실타래 하나를 우연히 푼 듯한 기분.
그렇게 우리의 가족이 된 작고 하얗고 말랑한 아기고양이, 루나.
내게 넘치는 시간을 이 작고 여린 생명체가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분에 넘치도록 멋진 일인지.
그날 이후, 리노와 루나의 하루를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날아가는 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함께 바라보며
그들의 멋진 일과를 함께했다.
44번이나 노을을 바라보았다던 어린 왕자처럼,
흐린 날도 맑은 날도 비가 오는 날도 하늘을 참 많이도 올려다보았다.
이 행복한 털뭉치들도 아주 가끔은 발끝에 힘을 주고, 귀를 뒤로 젖히며 으르렁 거린다.
그 모습이 퍽 진지해서 웃음이 왠지 웃음이 났다.
고양이의 방식은 느긋하지만, 본질을 꿰뚫는다.
비워내고, 멈추고, 조용히 회복하는 삶의 태도.
정말이다. 자기만의 리듬을 가지고 살아가는 고양이는
소유를 고통으로 규정했던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닮았다.
그는 말년에 세상과 거리를 두며 고독 속에 살았고,
당대 철학자 중 드물게 동물의 감정과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철학은 인간 존재의 고통, 의지, 금욕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소유는 만족을 위함이 아니다.
소유는 의무의 시작이다.
행복한 고양이들을 잠시 불안하게 한 건, ‘새로운 장난감’이었다.
소유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긴장감과 이미 가진 것을 지켜야 한다는 어떤 집착.
꼭 소중해서가 아니라 이미 내 것 이기에 더 애쓰게 만드는 마음.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기 때문에 힘들어지는 순간들.
나의 답답함과 허무함도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얀 수염의 철학자들이 말해주는 시련을 딛고 다시 행복해지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더러움이 묻은 곳을 핥고 햇볕 아래 조용히 누워 있기.”
“그렇게 천천히 다시 털을 반짝반짝 말리고, 다음 순간을 힘차게 살아가기."
“완전히 깨끗해지지 않더라도 좌절금지."
고양이들에게 배운 느림 속에서 문득, 나는 호그와트 8층의 ‘필요의 방’을 떠올렸다.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 꼭 맞는 공간이 나타나는 마법의 방.
나에게도 그런 방이 있었다.
채우고 쌓고 잊어버린 것들로 가득한 ‘필요의 방’
시도조차 못한 계획, 미뤄둔 목표, 실패한 시도들.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라는 미련으로 쌓아 올린 성.
그 방은 너무 높고 깊어서
정작 지금 필요한 것은 손이 닿지 않는 저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그 방을 정리하려 한다.
천장까지 쌓인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모두 치우고
먼지를 털고, 낡은 커튼을 걷는다.
그러면 비로소, 창문 너머 달빛이 그 빈 공간을 환히 비출 것이다.
나는 나의 ‘필요의 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언제고 다시 그 문을 열었을 때
더는 달빛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가려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