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야말로 맥시멀리즘의 시대였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화려하게.
결핍은 가난 한 자의 언어였고,
비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질이 차고 넘쳤다.
그만큼, 부족한 점은 너무 쉽게 드러났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끊임없이 좌절했다.
엄마는 알까?
그 풍족함이 오히려 내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걸.
어쩌면 그것은 시대정신이었다.
물론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 해주는데 왜?”라는 말은 나에게 비수처럼 꽂혔다.
수많은 82년생 김지영 중 하나.
8090 세대의 전형적인 K-장녀.
그리고 부모의 세계관은 아이에게 깊은 그림자를 남겼다.
나는 점점,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다.
현실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했기에
거짓말을 하고, 도피했다.
항상 누군가를 질투하고 타인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늘 완벽하고 싶어 하는
불완전한 완벽주의자.
그렇게 만들어낸 '완벽한 나'를 나는 끝내 사랑하지 못했다.
나는 꽤 오랫동안 표류했다.
망망대해 위, 위태로운 돛단배처럼 그저 휩쓸려 갔다.
‘좋은 사람’, ‘괜찮은 딸’, ‘능력 있는 직장인’이라는 말이 스스로 선택한 삶처럼 느껴졌지만
실은, 바깥세상이 무서워 애써 붙잡아온 껍데기에 불과했다.
실직이라는 균열은 그 껍데기에 생긴 금이었다.
금이 번지고, 조각이 갈라지며, 나의 세계는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날의 나는 아직 껍질 속에 갇힌 채,
더 이상 숨 쉴 수 없는 익숙한 세계를 두드리고 있었다.
두려움과 망설임 속에서도
다음 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세계를 기꺼이 부수려 했다.
부서진 조각들 사이로 들어올,
새벽의 달빛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