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사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사과가 곧 잘못의 인정이나 패배라고 생각해서일까? 내 관점으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과는 정말 강력하고 전략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사과는 개인 간의 인간관계에서도 아주 유용한 수단이다. 서구권,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I am sorry."가 일상화되어 있다. 불편하거나 어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럴 때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길 가다 부딪쳤을 때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서로 불쾌할 수 있으니 사과하는 것이다.
기업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한 후, 지체 없는 사과가 1순위다. 대부분의 문제는 사과로 인해 해결이 시작된다. 사과를 하지 않거나 미루면, 사건은 더 확대된다. 진심 어린 사과는 오히려 신뢰를 증진시키기도 한다.
1982년 미국에서는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가 혼입 되어 여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제조사의 잘못이 아님에도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크게 흔들었다. 존슨 앤 존슨은 신속하게 사과하고, 모든 타이레놀 제품을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회수하였다. 이후 이 회사는 외부에서 독극물을 주입할 수 없도록 캡슐을 정제로 바꾸고 포장을 3중으로 하는 방식을 개발하였다. 존슨 앤 존슨의 투명하고 신속한 대응은 기업의 책임감 있는 태도로 인식되며 브랜드 가치를 오히려 높였다.
2018년 중국에서 LG화학의 배터리(현, LG에너지솔루션)를 탑재한 전기차가 화재를 일으켰다. LG화학은 신속하게 사과했다. 이후 투명하게 소통하며 배터리 안전성 강화와 품질 개선에 힘썼다. 이 모든 과정은 시장과 고객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뉴스에서 아이 기가 죽는다며, 아이의 잘못을 덮으려 애쓰는 부모 이야기를 볼 때가 있다. 이 부모는 사과할 줄 모르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를 빼앗는 꼴이다.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지체 없이 말하라. 미안하다고, 괜찮냐고. 그러면 대부분은 상황이 좋아진다. 상대방이 자신 역시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서로에게 사과하는 순간, 신뢰와 따뜻한 인연이 싹틀 수 있다. 사과는 진정한 강함이다.